교육과학기술부가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자료를 16개 시도 및 230여개 시군구 단위로 공개하겠다고 밝혀 파장을 낳고 있다.
교과부가 공개하기로 한 수능 성적 자료는 지금까지 '극비'로 분류돼 외부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이번에 공개될 대상은 2005학년도부터 2009학년도까지 최근 5년 간의 수능성적 자료이지만 교과부가 공개 범위를 어느 선에서 끊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가 수준에서 치러지는 시험 가운데 최고의 공신력을 인정받는 수능 시험에는 매년 60만명 가까운 수험생이 응시한다. 성적 자료에는 개별 수험생의 과목별 표준점수, 등급, 백분위 등의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그동안 교육당국은 성적 정보가 공개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 철저히 비공개 원칙을 지켜왔다.
성적 정보가 공개되면 개인별, 학교별, 지역별 학력 수준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학교, 지역 간 과열경쟁과 서열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자칫 고교 평준화 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학교, 지역 간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평준화 체제를 확고히 지지했던 이전의 정부에서는 교육당국이 이 같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를 내놓거나 지역 간 학력차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이 때문에 그동안 수능성적 자료를 공개하라는 외부의 요구에 대해 교과부는 일절 '불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번에 교과부에 수능 성적 자료 공개를 요청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도 대학 교수 시절에 정부에 수능성적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고, 이 재판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이렇듯 철저히 비공개 원칙을 지켜왔던 교과부가 돌연 '공개'로 입장을 바꾼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기본적으로 '자율과 경쟁' 원리에 입각하고 있으며 성적 정보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지 않는 범위에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학교, 지역 간 학력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실질적인 지원도 가능하고 경쟁의 원리가 학교 현장에도 도입돼야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수능 성적과 마찬가지로 역시 비공개 대상이던 초ㆍ중ㆍ고교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최근 사상 처음으로 공개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수능 성적은 고교 평준화 체제와 직결되는 정보인데다 공신력 면에서도 학업성취도 평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아 성적공개에 따른 파장이 학업성취도 평가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과부도 수능성적 공개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에 한해 연구목적으로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공개 방식도 자료를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열람'만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이런 차원에서 조 의원 측이 성적 자료를 열람할 때 '학교와 지역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자료는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수험생 이름, 수험번호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와 학교명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번 공개로 학교ㆍ지역 간 서열화 논란이 촉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교과부는 설명했다.
자료 공개를 요구한 조 의원 측도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연구 목적으로만 자료를 사용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성적 자료가 한번 외부로 공개된 이상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학교, 지역 간 학력차를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와 관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호기심으로 열어본 판도라 상자는 결국 공교육 붕괴라는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연구목적으로만 공개한다고 하지만 자료를 가공, 분석하면 시군별 서열화는 물론 학교별 성적자료도 산출해 낼 수 있다"며 "교과부는 성적 공개 방침을 당장 철회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