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어딜 가나 인터넷과 컴퓨터 아닌 것이 없다. PC방이 줄지어 들어섰고, 학생들 뿐 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여가생활이 컴퓨터 채팅 등으로 변했다. 최근의 한 외국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터넷 이용 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들은 앞 다투어 사이버 강좌를 개설하고 있고, 이제 종이 연하장 대신에 전자연하장이 많이 늘었다는 보도도 있으며, 심지어 이메일의 보편화로 우편수입의 격감을 초래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컴퓨터가 어느덧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각 정부에서도 단계적 계획을 세워 학교에 더 많은 컴퓨터를 보급하는 등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불거진 자살, 폭탄사이트 등의 폐해는 "과연 컴퓨터가 우리 학생들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하게 한다. 컴퓨터의 위력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컴퓨터 없이는 행정기관, 회사, 금융기관 등 전 국가기관이 마비될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를 이용하면 학습효과는 과연 있는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컴퓨터에 의해 가능해 진 것은 사실이다. 장애 아동들에게 컴퓨터를 이용한 수업을 함으로써 도달하기 어려운 학습효과를 이끌어 내고, 산간 벽지에 있는 아동들에게도 도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정보 혜택이 가능해 진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수업에 활용하면 기존의 칠판수업에 비해 효과가 더 있느냐에 대해서는 그 해답이 단순하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해주고, 컴퓨터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하여 수업하면 학습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지만, 이러한 결과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만한 연구결과는 많지 않다. 컴퓨터를 활용한 수업이 기존의 수업에 비해 월등한 성적의 향상을 가져왔다는 보고는 시설이나 지원이 뛰어난 연구학교나 실험실 상황에서 가능하지 일반학교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결과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은 학교에 컴퓨터만 보급했다고 술술 풀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교사들이 컴퓨터 활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컴퓨터를 편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컴퓨터의 활용을 지원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컴퓨터라는 것은 고장이 잦고 끊임없이 관리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관리전문가가 상주해야 한다. 또, 컴퓨터를 활용해서 수업을 할 경우 자료를 개발하거나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 자료개발을 지원해 줄 인력은 보충해 주지 못할망정 가뜩이나 잡무가 많은 교사들에게 잡무가 하나 더 늘어나는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 한가지는, 컴퓨터의 활용은 주입식 교육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단순 반복적인 문제 풀이는 과외시간에 가능하고 어느 정도 효과를 약속할 수 있지만, 수업에서의 활용은 탐구학습이나 문제해결 학습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에 우리 교육방식에 큰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출신인 스탠포드 대학의 래리 큐반 교수는 1920년대부터 학교에 투입된 수많은 교육기자재를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새로운 기자재가 출시 될 때마다 당장 교육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 되곤 했는데, 정작 교사들은 이러한 기자재의 이용을 회피해 왔고 학습에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원인은 이러한 변화의 주체세력이 교사와는 무관한 외부에서 왔기 때문이다. 즉, 교사들은 아무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 행정가들의 탁상공론이 실행에 옮겨졌고, 결과적으로는 실효성도 없는 사업에 엄청난 자금만 낭비한 셈인 것이다. 하지만, 행정가들은 그 실패의 원인을 예산의 부족, 교사들의 비협조, 학교행정의 경직성으로 돌리고 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대목이지만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금 우리나라도 범정부 차원에서 정보화시대의 역군을 양산하려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비용을 들여 수행되고 있는 이 계획에 과연 주체가 되어야 할 교사는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패의 역사를 또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