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존경하는 선생님,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이 있듯이 교육과정에 있어서 오해로 빚어진 에피소드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 중 생각나는 게 백지장에 얽힌 이야기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인 걸로 기억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법한 속담 중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다. 물론 하얀 종이 한 장도 둘이서 마주 들면 도움이 되듯이 서로 협력하면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정도의 속담이다. 그런데 나는 그만 엉뚱한 상상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시골에서 백지장이란 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한 나는 아마도 그것은 간장, 된장, 고추장과 비슷한 종류의 醬일 것이라는 자의적 해석을 해 버렸었다. 평소 메주로 된장을 담그면 옹기 속에 오래도록 숙성시키는 것을 보아 왔기에 응당 시간이 경과하면 더욱 맛이 좋아지는 것으로 속단해 버린 것이다.
`그래, 백지장도 맛들면 낫지. 맛이 들면 당연히 더 좋은 걸 갖고 무슨 속담이 생겼을까?' 누구나 아는 것을 속담이라고 지었는지 조금은 의아했지만 본래의 뜻을 이해하도록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한 분도 없었다. 내가 우둔했을까. 성장하면서도 이따금 그 속담을 되뇌며 어딘가 있을 그 맛있는 `백지장'을 찾았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쉬운 것을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뇌리 속에서만 잠자던 그 속담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던가. 간장, 된장과 항렬이 같은 백지장을 백방으로 뒤졌으나 찾을 수 없어 궁리한 끝에 `하얀 백지 한 장'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 선생님께서는 학생을 가르칠 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주셔야 이해가 빠른 것이로구나. 도화지 한 장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 신문은커녕 화장실에서 짚으로 뒷일을 해결하던 시절인데 어찌 그토록 고급스런 백지장을 상상할 수 있었으랴. 만약 그 때, 선생님께서 백지 한 장을 들고 양손으로 잡으면서 설명해 주셨더라면 이런 엄청난 오해는 없었을 것 아닌가. `백지장도 맛들면 낫다'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어디 백지장 맛 유명한 곳 없나? <성병조·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