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드물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교육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드물다. 우리 사회보다 더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가 없지만, 우리 사회보다 더 교육을 무시하는 사회도 없다. 참으로 모순된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병폐가 바로 이 모순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그 병폐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처방도 바로 이 모순에서 찾아야 한다. 한 예로 우리 신문들을 보자. 입시철이면 수능시험에 대비한 전략, 주요 대학의 논술고사 모형을 싣고 수능시험의 점수대별 분포도와 입학 가능한 대학을 열거한다.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기사를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주요 일간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그 신문들이 대학입시, 사교육, 교육이민, 조기교육 등과 관련된 기획 특집을 철철이 내보낸다. 우리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으니 하루빨리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모순된 일이다.
다른 예로 우리 정치인, 경제인, 관료들을 보자. 그들은 입만 열면 교육을 국가경쟁력의 척도이자 자원이라 미화한다. 백년대계인 교육이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기업과 은행을 살리는 데 수십 조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그들이 학교와 교육을 살리는 일에는 단돈 일조도 아낀다. 교육계를 경쟁과 시장 논리로 몰아가면서 인성교육, 전인교육을 천연덕스럽게 걱정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교육은 도대체 무엇인가? 참으로 모순된 일이다. 다른 예로 가정과 가게와 거리의 사람들을 보자. 앞 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가족이기주의에 빠져 교육의 이름으로 비교육을 자행하는 부모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이게 아닌데' 하다가도 금방 '현실이 그런데'로 합리화하는 부모들은 그나마 나은 지도 모른다.
현란한 간판으로 뒤덮인 무질서한 거리와 상가는 미술교육, 예술교육, 정서교육을 해치는 주범이다. 대학 캠퍼스의 건물과 가로수 역시 행사를 홍보하고 투쟁을 선동하는 대자보, 플래카드, 깃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교육을 먼저 생각하고 교육을 먼저 실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나날이 더 어려워지 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입만 열면 교육을 성토한다. 참으로 모 순된 일이다. 다른 예로 학교를 보자. 안락해지고 민주화된 가정에 비해서 학교는 여전히 그 틀, 그 크기, 그 질서, 그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빠른 세상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학교는 느리고 답답한 곳이다. 대학입시가 하급학교 교육을 연쇄적으로 왜곡, 변질시키는 `현실' 역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지쳐가고 있다. 학교에 남아있자니 괴롭고 학교를 벗어나자니 그것도 쉽지 않은 참으로 안타까운 형국이다. 이 시점에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반성해 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그 문제와 그 해답을 알고 있다. 이 시대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는 우리 모두가 교육에 관심을 갖지 않고 교육을 무시해 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교육 그 자체에 대한 '가슴앓이'와 '상심(傷 心)'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각자 물어보자. 지금 나는 진정으로 교육을 걱정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과연 교육적인가? 혹시 지금 나는 교육의 이름으로 교육 아닌 다른 무엇을 엉뚱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교육인가? 교육을 바로 알고 교육을 바로 행하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 질문들을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진지하게 제기하는 데에 있다. 이 질문들을 성실하게 제기하고 답하다 보면 교육적 실천, 교육적 삶이 일상화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교육적인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질 것이고, 교육적인 문화와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급하다고 해서 정신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을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본래 가야할 길을 확고히 가야 한다. 조용환 (서울대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