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선생님! 4학년 때 어느 신문사 문예작품 공모에서의 2등 상 수상 소식을 알려 주시며 그 당시로는 잘 먹을 수 없었던 맛있는 단팥죽을 사 주시던 선생님.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난생 처음 대구까지 아버지와 함께 나들이를 했을 때 선생님의 속옷을 보고 깜짝 놀랐었지요. 대구 나들이에 입고 오신 선생님의 속옷이 누덕누덕 기운 흥부 옷 같았으니까요. 겨울마다 선생님께서는 군데군데 털이 빠지고 낡은 자주색 벨벳점퍼만 입으시고 늘 코를 훌쩍이셨지요. 단칸 셋방 선생님 댁에 심부름 갔을 때 식사 상에는 김치와 된장뿐이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대구에 다녀오실 때면 '암굴왕', '톰소여의 모험' 등의 동화를 사다주셨지요. 선생님께서 폐결핵으로 요양 차 산골짜기 조그만 이웃학교로 옮겨가실 때 저희들은 6학년이었습니다. 칠판 가득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써 놓고 선생님을 모셔왔을 때 칠판에 쓰인 글을 읽어보신 선생님은 돌아서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으셨고, 저희들은 모두 정말 많이 울었었지요. 우는 저희들을 애써 달래주시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 후 선생님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머니께서 한번 뵙게 되어 제가 교육대학에 진학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무척 쓸쓸하신 표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지요. 오후에 학교에 남아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너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셔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슬픈 표정으로 “선생만은 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만은'이라고 하신 그 말씀이 제 마음 속 깊이 아프게 박혀 있습니다. 선생님, 말리시던 교사가 되어 고향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유명을 달리 하시고 안 계셨습니다. 한번 찾아뵙지도 못한 채 쓸쓸한 마지막 길을 떠나시게 했다는 자책감이 내내 견딜 수 없게 합니다. 그 어려운 살림 중에도 철없는 제자들을 위해 애쓰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50대 중반의 교장이 된 제자가 선생님 영전에 마음을 다하여 큰절 올립니다. 김정옥 경북 경주 대본초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