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학교교육과 관련되는 많은 신화가 존재한다. 우리들이 학교교육의 실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 허상이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를 더욱 현혹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학교교육에 대한 신화 가운데 `하향평준화'를 예로 들 수 있다. 그것은 이제 너무나 보편화되어서 교육문제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논의에도 응용되기까지 한다.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시작된 1974년 이후 정말 수없이 반복되었던 `하향평준화'라는 신화는 아무도 반박하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반박할 만한 자료도 없이 그저 우리들의 상식적 수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전반적인 학력의 저하 현상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준화제도 때문이라는 주장을 공통적으로 갖게 되었다. 여기에는 언론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학력의 하향화를 막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평준화 제도의 근본 틀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평준화가 학력 하향화의 주범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준화를 깨고 경쟁입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도한 입시경쟁, 이로 인한 청소년들의 정서적 신체적 발달장애, 과도한 사교육비, 중학교의 파행적 교육과정 운영 등등 예상되는 폐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매우 편파적 주장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주장은 교육적 논리에 기초하지 않고 주로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평준화를 깨자는 주장은 공교육 영역에 시장경제의 논리를 적극 도입하여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어서 경쟁성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부정적 효과는 이러한 경쟁성이라는 순기능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좀더 의미 있게 진행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향평준화'라는 신화에 도전하고 정확한 실상을 탐구해 보아야 한다. 본인은 이 문제 대해서 약 5년 전부터 계속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해 보았는데 아직까지 평준화 실시로 학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객관적 자료도 얻지 못했다. 이러한 결론은 지난 3년 전부터 고등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변화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전국 10만 명의 고등학생들이 3년 동안 보인 성취도 변화 자료를 근거로 해 볼 때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오히려 전체 성적이 월등히 상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상위 2, 3%의 학생들의 경우 비평준화 지역이 평균적으로 2, 3점 더 상승했다. 적어도 평준화를 해제하자고 할 때 이러한 최상위층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97, 98%의 학생들은 10점 이상 상승하는데, 그 학생들은 이제 교육적으로 포기해도 된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평등성도 유지하면서 효율성도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평준화라는 골격을 유지하면서 특기·적성에 따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학교를 다양화시키고 자율학교를 늘리고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 나간다면 이러한 두 가지의 이념을 동시에 조화롭게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고등학교 취학률이 97%를 상회하는 현 시점에서 엘리트주의 이념을 주장한다는 것은 시대적 변화에 맞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의 발전을 거꾸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결정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평준화냐 아니냐에 따라 크게 변화되기보다는 가정배경, 개인의 능력과 노력, 부모의 지원, 사회적 환경과 교육정책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최근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평준화에 전적으로 기인한다는 주장은 틀림없이 잘못되었다. 이제 학력하향화의 주범이 평준화라는 단순논리를 접고 보다 진지하게 학생들의 학력저하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관한 신화 하나를 해독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과 관련된 수많은 시행착오는 바로 이러한 신화적 주장에 기초한 정책결정과 행위 때문이라는 점을 반성해 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