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자국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한국인들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한 책이 출간됐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저지하는 운동을 펴고 있는 우에스키 사토시, 기미지마 가즈히코, 고시다 다카시, 다카시마 노부요시 등 4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신(神)의 나라는 가라"(한길사)가 그 것. 이들이 분석한 새 교과서의 시각은 황국사관 그 자체다. 불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사실이 아닌 역사를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역사는 신화'라는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어제를 잊지 말고, 오늘에 충실하며, 내일을 준비하자.” 인도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는 옥중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딸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그가 어린 딸에게 쓴 이 편지글만큼 ‘역사의식’의 본질을 집약해 표현한 구절도 드물 것이다. 그가 딸에게 보낸 편지 묶음은 그대로 "세계사 편력" 이라는 걸출한 역사서로 거듭났다. 어제, 즉 과거를 잊지 않고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보아야 하는 기본적 입장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의 본질은 바로 그들이 어제를 잊어버리고 왜곡하려 한다는 데 있다. "신(神)의 나라는 가라"는 그에 대한 일본 내부 지식인들의 강도 높은 비판을 담은 책이다. “거짓말쟁이가 쓰고, 거짓말쟁이가 선전하여, 거짓말쟁이가 파는 교과서를 묵인할 정도로 일본 사회가 우매하지는 않다. 이와 같은 것을 차세대를 지고 나갈 젊은이들 앞에서 우리들은 행동으로써 증명해 보일 것이다.”(다카시마 노부요시ㆍ高嶋伸欣 류큐대 교수) 4명의 필자들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집필한 후소샤(扶桑社) 판 ‘역사’‘공민’ 두 종의 검정신청 교과서가 기본적으로 ‘황국사관’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 기미즈마 가즈히코(君島和彦) 도쿄가쿠에이대 교수는 새역모 회장 니시오 간지(西尾幹二)가 지은 "국민의 역사"(1999년 10월)에서 이러한 사관의 단초가 보인다고 지적한다. "국민의 역사"는 '모든 역사는 신화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새역모의 교과서는 머리말에서 같은 논법으로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라고 언명하며 “과거의 사실을 엄밀하고 정확히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적당 편의주의의 황당무계한 사관을 보여준다. 기미즈마 교수는 이러한 입장이야말로 '황국사관의 완전한 부활'이라고 비판한다. 새역모의 "역사" 교과서는 오늘날 일본의 혼돈과 몰락의 원인을 청소년들에게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전쟁의 책임을 반성하는 ‘자학의 역사’와 ‘사죄의 역사’를 가르쳐온 교육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새역모의 교과서는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의 피해만을 강조하며 타국의 나쁜 점만을 강조한 ‘타학사관(他虐史觀)’의 교과서라고 비판한다. 그는 전쟁을 긍정 찬미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하며 국가에 대한 헌신과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새역모 교과서의 파시즘적 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에스기 사토시(上杉聰)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사무국장은 ‘우익운동이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글에서 새역모 교과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배경을 추적하고 있어 흥미롭다. 지난 3월 회원 수 1만 명을 넘을 정도로 광범위한 계층까지 파고들어 일본의 우익운동을 확산해온 새역모의 구성부터, 유력 일간지 산케이(産經)신문이 이러한 정치적 입장의 선전지 이면서 사실상 전체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는 실상(교과서를 출판한 후쇼사는 산케이신문사와 후지TV의 출판부가 병합해서 만들어진 출판사이다)을 파헤친다. 그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검정 통과 과정을 ‘작전’이라 비판한다. 고시다 다카시(越田稜) 가쿠슈인대학 강사는 "공민" 교과서가 내보이고 있는 국가관은 마치 ‘환각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하다고까지 비판했다. 새역모의 한 인사가 했다는 말처럼 “일본의 유일한 잘못은 전쟁에 졌다는 것”일까. 일본 내 극우파 단체에 의해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검정통과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뜻 있는 일본 지식인들의 적나라한 탄언과 역사비판이 담긴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감정에 경도되어 이성을 잃고 있지는 않았던가. 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중국인이 일본군에게 목 잘리는 사진을 보고 의학의 길을 포기, 중국 혁명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루신. 그를 정작 분노케 한 것은 일본 군사가 아니라 처형되는 현장에 있던 넋 빠진 듯 멍청한 표정의 중국인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사진 속 중국인처럼 우리 역시 역사 앞에 목소리조차 없는 방관자인 것은 아닐까. /서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