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12경 중 하나인 태화강 상류의 선바위 언덕에 위치한 구영중학교(교장 허남술)는 2008년 개교한 신설학교다. 2년여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아이 함께 키우기 학부모 동아리’ 우수학교, 독서·논술교육 최우수학교로 선정됨은 물론 울산교육 업그레이드 경진대회에서 ‘뚜벅이’ 동아리 봉사활동이 우수상을 받는 등 구영중학교가 이룩한 업적은 남다르다. ‘학부모가 더 즐겁다’는 구영중학교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매주 학교를 방문하는 한지연 학부모의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여느 학부모와는 달리 가볍기만 하다. “처음에는 선생님도 어렵게 느껴지고 학교 가는 게 불편했어요. 하지만 매주 도서관에 나오고 한 달에 한 번 ‘책 생각나누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워졌답니다.”
느티나무 책 그늘지기- 도서관 당번이 기다려지는 학부모
구영중학교의 주인은 이렇듯 학생, 교사만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만큼 동등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학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학부모의 활동이 더 크다고 말하면, 교사와 학생이 서운하다고 할까. 구영중의 학부모들은 교육서비스를 제공받고 때론 만드는 프로슈머(Prosumer)로 학교 현장에서 발로 뛰며 교육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독서 프로그램이다. 우선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인 ‘느티나무 책 그늘지기’가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느티나무 책 그늘지기’는 학교 도서관의 별칭인 ‘느티나무 책 그늘’에서 따온 것으로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도서대출 업무와 이달의 추천도서 선정, 월1회 ‘책 생각나누기’ 참여, 학교 홈페이지 학생 독후감 댓글달기 등으로 구성되며 32명의 학부모가 활동하고 있다. ‘느티나무 책 그늘지기’의 일원인 한지연 학부모는 “당번인 날은 점심식사를 학교에서 같이 하는데 아이가 뭘 먹는 지 알 수 있어 믿음도 가고 좋다”며 “도서관 당번인 날이 즐겁다”고 말한다.
월1회 학부모와 교직원이 함께하는 독서토론 모임인 ‘책 생각나누기’도 개교 이래 현재까지 23회의 만남을 가졌다. 4회 모임에서는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국수봉에서 소설가 이외수 씨의 <‘하악하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19회 때는 <도박사의 천공법> 저자인 도임자 씨를 초청해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에 대한 강연회도 가졌다. 이 초청 강연 이후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인해 ‘천공법’(천천히 공부하는 법) 공부방이 개설되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20회까지의 활동을 엮은 문집 <느티나무 책 그늘 아래>도 발간했다.
학생들의 독서증진을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개설된 ‘독후감나누기’에는 학교장과 교사들이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한다. 하루에 평균 20~30건의 독후감이 올라올 정도로 독후감나누기의 인기는 대단하다. 지난 2년 간 축적된 독후감은 총 1만1000여 건에 달한다. 이외에도 연 2회 학부모, 학생, 교직원이 함께하는 ‘문학기행’을 통해 조지훈과 이문열의 생가, 이육사 문학관, 도산서원 등을 다녀왔다. 매년 10월 넷째 금요일에는 문학특강을 시작으로 밤새워 책을 읽는 행사인 ‘태화강 달빛 독서의 밤’도 진행하고 있다.
뚜벅이 동아리- 학부모와 봉사 함께하며 인성교육 실현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 오후면 구영중 학생, 학부모, 교직원은 자매결연한 중증 정신지체장애인 복지시설인 애리원으로 봉사활동을 나간다. ‘뚜벅이 동아리’로 불리는 이 모임을 통해 학생들은 장애우와 어울려 놀고, 학부모들은 노력봉사를 한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서희숙 학부모는 “작년 크리스마스의 장기자랑 축제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서 씨는 “애리원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허남술 교장선생님의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가 학부형들과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며 “아이들의 장기자랑과 어머니 합창단의 노래는 어눌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였다”고 회상했다.
‘사랑의 과일나누기’도 빼놓을 수 없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등교하는 첫날이면 전교생의 손에는 사과를 비롯한 과일이 하나씩 들려있다. 정성스레 모은 이 과일들은 애리원과 청소년쉼터, 양육원에 기탁한다. 김기화 교감은 “아이들에게 나누며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며 “봉사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즐겁고 전파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진로캠프- 아버지와 함께 찾는 직업탐색
미래 진로에 대한 방향과 직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다. 지난 5월12~14일 경주 코오롱 호텔에서 2박3일간 진행된 ‘진로캠프’에는 아버지들의 참여로 눈길을 끌었다.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알맞은 진로를 탐색하는 ‘Dream Up! 8시간의 기적’이라는 이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30여 명의 학부모가 일일 명예교사로 참석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비슷한 직업을 가진 학부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직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며 꿈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이 행사는 학생에 대한 이해와 일관성 있는 진로교육은 물론 학생들 스스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일일 명예교사로 참석했던 김기환 학부모는 “기업 CEO인 저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조언했다”며 “아이들 대부분이 아빠는 설득할 수 있는데 엄마는 다르다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그는 “엄마는 운동이나 게임, 이성교제 등 학업과 연관이 없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며 “아버지들도 학교교육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는 지름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부모는 교육의 소비자이자 생산자
학교 일에 참여하는 것에 학부모들은 움츠러들기 십상이다. 아이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내가 학교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들 때문이다. 하지만 구영중은 학부모들을 교육현장 전면에 내세우며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허남술 교장은 “앞으로 학부모가 프로슈머로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할 계획”이라며 “학부모 평생교육을 다양화해 배움의 장으로써 학교의 역할을 확대하고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을 개발해 학교도서관이 지역 문화센터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허 교장은 “우리 학교사례가 공교육의 신뢰와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며 “졸업 이후에도 학생에게는 꿈을, 교사에게는 보람을, 학부모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는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역사회 특히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 중에는 자녀를 우리 구영중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학교처럼 좋은 학교가 계속 늘어나면, 교육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학부모가 줄어들 거라고 봐요. 그럼 울산도 모범적 교육도시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김기환 학부모‧학교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