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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교사론> 변화하는 교육 - 시작점과 방향성

“교육은 반드시 시작의 기준점과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고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구성원들의 합의로 학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세밑이다. 하지만 사람들 손에 새 달력이 들리고, 지인과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으며, 동네 음반가게에서 캐럴이 들려오던 그러한 풍경은 더 이상 찾을 길 없다.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 최첨단 태블릿 PC의 등장으로 지하철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격하게(?) 학습 중이다. 동네 모퉁이 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마음을 덥혔던 기억은 이제 정말 아스라한 지난날의 추억이 되어가나 보다.

엊저녁의 뉴스 화면에는 명동 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와 함께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지역의 크리스마스트리가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우리 교육계가 대한민국의 팔레스타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한해 교육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교원능력개발 평가’ ‘체벌 금지’ ‘학생인권조례제정’ ‘무상급식’ 등 큰 틀의 사안만이 아니라 작은 사안 하나 하나가 도처에서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1학기말 연구부장 자격으로 받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의 자발적 결석자 처리방식에 대한, 완전히 상반되는 공문지시는 교육계의 극명한 혼란상을 시사해준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를 교과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의 단순 엇박자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구성원을 향한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관계의 금도(襟度)는 물론이요, 맹자가 말하던 ‘불인지심(不忍之心)’조차도 기대 난망이다. 쏟아지는 요구와 날카로운 지시만이 현장 교사들의 귀를 뚫고 있다. 공자가 말하던 ‘정도(正道)’는 사라지고 희한한 ‘권도(權道)’가 도처에 난무하고 있다. 교육계 수장은 경제학자요, 지배하고 지시하는 권력 또한 경제력이다. 그러기에 국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제논리가 현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연초 언론의 한 특집프로에서 다뤘던 사교육 학원계의 훈수는 나의 인내심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고야 말았다. 멀쩡한 지상파 공영방송에서 ‘사교육과 학교경쟁력(정확한 프로그램명은 기억나지 않는다)’이라는 제하에 EBS 강사를 하다 현재 스타강사로 통하노라는 전직 교사출신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그들은 수업을 위해 기울인 자신의 큰 노력으로 인해 강남 학원가에서 일타가 되었노라고 자뻑했다. 거기까진 참고 들어줄 만했다. 하지만 교사시절 동료들의 근거 없는 시샘에 시달렸다며, '교사들은 나만큼 경쟁력을 갖춰 학원 수강생도 감동할 만한 수업을 하라'는 어설픈 충고만큼은 묵과할 수 없었다.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그들을 조금은 안다. 일단 이들의 EBS 강사 활동은 혹여 학교에 도움이 될까 하는 학교 측의 배려와 호의에 크게 힘입었음을 부인치 못할게다. 그들은 유명세를 최대한 상품화해, 예정된 수순대로 학원가로 옮긴 위인들이다. 나는 안다. 그들이 학교 측의 선의와 배려를 어떻게 역동작의 업어치기로 활용하였는지를. 학교에서는 동료들에게 어떤 평판을 얻었는지를. 그리고 학원가에 진출해 어떤 모양새로 단련되었는지를. 나의 이러한 말들이 학원 강사 그룹이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폄훼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 하고자 하는 말의 기본적 말귀라도 알아들었으니까.

학원 강사가 언론에 나와 교사들을 조롱하듯이 질타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심상치 않다. 언론의 호들갑이 오히려 사교육 강사를 선전해주고 있는 역기능 정도를 한가롭게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 학교교육이 사교육의 상행위와 단순 비교되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 교사는 지식전달의 기능인으로 쉽사리 치부되고 말았다. 학원 강사가 언론에 나와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고 교사 전체를 싸잡아 질타해도 별반 어색하지 않게끔 세상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런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변화에 대해 깊게 그리고 통렬하게 분노한다.

세상이 변하니 학교도 변해야 한단다. 맞다. 학생들도 변했으니 학교의 전달 방식도 변해야 할게다. 학교와 교사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단다. 맞다. 교사들은 교과에 대해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여러 면에서 자기개발 노력을 기울여야 할게다. 여전히 문제교사가 현장에 있다고 한다. 맞다. 그들은 대오각성하고 정신 차려야 할게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변화의 시작점과 방향성이다. 교육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거쳐 더 큰 결과물을 창출하는 스티브 잡스식의 경영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러기에 교육은 반드시 시작의 기준점과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느려도 된다. 더불어 변화의 시작은 학교 밖에서 인위적으로 던져질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합의로 학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게 근본이다.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本立而道生)’고 공자는 말했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피해 갈 수 있다. 한 해가 간다. 우리 모두가 내년에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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