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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다

“선배 교사들은 수업에 온 진액을 쏟고는 거의 탈진 상태로 교무실에 들어오곤 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장엄했다. 그 모습은 이후 나태함에 몰리던 시절의 나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주곤 했다. 결국 현장 교사가 쓰러져야 할 자리는 다름 아닌 교단인 것이다”

다시 스승의 날이다. 부임 당시 80년대 후반의 시절들을 돌이켜본다. 상전벽해의 세월 앞에 격한 회포를 느낀다. 꽃을 들고 교무실 밖을 서성이던 그 소녀는 추억의 뒤안으로 사라졌으며, 진심이 담긴 학부모의 편지는 이미 희미한 옛 그림자가 되었다. 학교의 환경은 변했으며, 교사의 역할도 바뀌었다. 학부모도 달라졌으며, 오늘의 학생들은 새로 거듭났다.

2011년 5월 현재, 학교는 전자화 정보화의 큰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고, 조만간 교육 개방의 큰 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교사의 인격적 영향력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전문성과 기능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학부모는 교육 수요자로서 강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학생들은 인격권과 같은 권리 주장에 능동적으로 변해 있다.

하지만 교육의 환경이 특수하게 변화하더라도 교육의 보편 속성은 남는다. 아니 그대로 남아야 한다. 근본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의 자애와 공경, 인간 간의 예의, 약자에 대한 배려, 타인과의 소통 등은 시공간의 특수성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덕목이다. 교육 역시 반드시 그러하다. 누가 뭐래도 이 경우 교육의 주체이자 근본은 역시 교사이다.

교사는 학교 안에서 열린 관계의 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이때의 ‘열린’이라는 것은 선배 교사의 경륜에 대한 경의와 후배 교사의 개성에 대한 사랑이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노장 교사의 경험과 관록, 그리고 소장 교사의 열정과 개성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학교 관리자의 의견이 존중받고, 평교사들의 창의적 제안들이 수용될 수 있는 현장을 말한다.

교육 행위는 궁극적으로 수업 여건의 개선을 위해 집중화되어야 한다. 결국 교사들의 복지 향상, 노후화된 학교 시설의 설비 투자, 학교 교육의 경쟁력 강화 등 산적한 모든 현안들은 교실 수업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교사들이 산적한 행정적 잡무 처리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보직 교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가장 중시해야 할 학교 수업이 뒷전으로 밀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생겨난다. 서류와 공문에 치이는 데다, 시답잖은 명목으로 장학사라도 내교하는 날이면 수업은 일순 딴전이 된다. 기가 막힌 본말전도이다.

교육의 기초는 교실에서 만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이 점에서 교사는 무엇보다는 교실의 현장성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열두 가지 재주가 있다 해도, 수업 능력이 부실하면 일단 교사로서는 부적격이다. 그래야만 교육 관료, 교육 행정가, 교육학자와 구별되는 현장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이 될 수 있다.

사교육이나 공교육이나 할 것 없이, 수업 내용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의 정체성은 드러난다. 하지만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 사교육은 상업적 효율성을 높이려 그 교수의 방법이나 내용을 독점하는 ‘비법’을 강조한다. 하지만 공교육은 교수의 방법이나 내용을, 그리고 태도까지도 공유하는 ‘나눔’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공교육은 선후배 교사 간의 인격 관계를 통해 멘토로 삼고 배우며 닮아 가는 긍정적인 전염력이 있다. 이는 일종의 학교 학풍으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초임 시절의 목격담이다. 선배 교사들은 수업에 온 진액을 쏟고는 거의 탈진 상태로 교무실에 들어오곤 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장엄했다. 선배들은 혼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교실에서 연소하곤 했다. 그 모습은 이후 나태함에 몰리던 시절의 필자에게 큰 자극제이자 각성제가 되어주곤 했다. 개별 학교 평판의 거개는 이러한 ‘현장성’의 힘에서 나온다. 결국 현장 교사가 쓰러져야 할 자리는 다름 아닌 교단인 것이다.

공자는 “가르치는 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군자무본)”며 논어 전편에 걸쳐서 ‘무본(務本)’의 필요성을 수없이 강조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기본을 너무나 쉽사리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 정권이 교육 문제에 있어 더욱 귀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서 제기된다.

모란이 눈부신 5월, 다시 스승의 날이다. ‘오늘날 스승은 없다’는 사회의 질책이 참으로 뼈저리게 다가온다. 이제 돌이켜 보니, 참으로 스승은커녕 ‘선생 노릇’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다. 온통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가득 찼던 세월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흠결이 많아도 여튼 ‘나는 교사이다’ 이 말을 되뇌며 근본을 확립하기 위한 미래의 노력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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