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막으려면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사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교사들조차 자기 반에 `왕따'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4일 한국교총의 지난해 공모한 교육수기집에 따르면 `왕따' 문제를 직접 겪으면서 고민했던 교사들은 `왕따' 학생을 발견할 경우 쉬쉬하기보다 공론화하고 따돌림당하는 학생의 심정이 어떤지 고민해 볼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폭력학생 공개사과ㆍ스스로 벌칙 정하기 = 경기도의 S초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은 김모 교사는 반에서 우등생인 A군이 몇몇 남학생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A군 부모에게 듣고서야 알았다.
A군의 단짝이 자신의 부모에게 지나가듯 한 이야기가 A군 부모에게 전해졌고 A군 부모가 담임에게 상담을 신청하면서 김 교사가 이를 파악하게 된 것.
A군은 5학년 때부터 1년 넘게 B군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아침마다 먹을 것을 상납하도록 하고, 죽은 벌레를 억지로 먹으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물건을 건넬 때 공손하게 하라고 요구했으며 존댓말을 쓰라고 강요하고 지키지 않으면 마구 때렸다.
체육 시간에 공을 잘 다루거나 못 다룬다고 때리고 의자를 길게 빼서 앉으면 길을 막았다고 때리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면 잘난척한다고 때리고 복도와 교실에 창문이 17개 열려 있으면 17대를 때리는 등 '묻지마'식 폭력이 계속됐다.
그러나 김 교사가 우연히 A군이 엎드려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니"라고 물으면 얼굴을 들고 웃으면서 "우는 척한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아닌 척을 해서 김 교사가 감쪽같이 몰랐다.
3년차인 김 교사는 교무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교무부장은 이 학급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폭언에 대해 보고 들은 일을 모두 적어보라고 한 뒤 남학생들을 폭력적, 비폭력적인 두 그룹으로 나눠 폭력적인 남학생들에게 공개 사과를 시켰다.
또 이 교실에서 폭언ㆍ폭력을 금지하는 법을 다수결에 의해 통과시켰고 아이들과 함께 법을 어겼을 때 어떻게 할지 규칙을 정하고 아이들 지장이 찍힌 각서를 받았다.
벌칙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기, 반성문 쓰기, 교장ㆍ교감선생님과 면담하기, 부모님 모셔오기 등이며 두 차례 경고 이후 3번째 적발 시 벌칙을 적용했다.
김 교사는 "학급 운영 방향이 재설정된 뒤로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하진 않아도 반 전체가 폭력과 무질서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가 왕따라면?" 역지사지 경험 =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박모 교사도 5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왕따' 문제를 처음 맞닥뜨렸다.
박모 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은 여학생 A양이 더럽다며 전혀 말도 하지 않고 A양이 손댄 물건을 더럽다고 버렸다. 체육 시간에는 A양 옆에 서거나 앞뒤에 있는 것조차 꺼렸다.
A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늘 혼자 지내왔고 운동회 날에도 운동장 한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A양을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자괴감을 느끼며 고민하던 박 교사는 다른 아이들도 '왕따'의 심정을 알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학생들에게 왕따를 시킬 때 드는 심정과 자신이 만약 왕따를 당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써보게 하고 발표시켰다.
그러자 학생들은 왕따를 시킬 때 드는 감정에 대해 "미안하다", "재미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내가 왕따 안 당하려고 한다"고 표현했다.
자신이 왕따를 당하면 어떻게 할지 물었더니 "힘들어 자살한다", "전학간다", "왕따시킨 학생을 증오하고 복수한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나 생각해본다", "학교 오기 싫을 것이다" 등의 답을 했다.
이런 발표를 통해 학생들은 '왕따' 당하는 학생의 심정을 상상하면서 '왕따'가 나쁜 것이고 자신은 '왕따' 당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다음날 A양에게는 7명의 친구가 "미안하다", "나도 너랑 놀고 싶다"는 쪽지를 건넸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A양에게 말을 걸거나 노는 친구는 없었고 박 교사는 학생들이 용기가 없어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을 알고 2명의 `용기 도우미'를 뽑았다. 이때 한 남학생이 A양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면서 A양은 서서히 `왕따'를 벗어났다.
박 교사는 "학생과 학생 간의 일은 우리가 배운 교육이론이나 상식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며 "만약 아무 이유 없이 A양을 왕따시키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미워했다면 문제를 풀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반 친구들이 언젠가는 반성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며 "아동의 시각에서 학생을 이해해야 문제의 본질이 보이고 해결책도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