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서울에서 북경으로 가는 방법은 천진을 통해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북경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경은 저녁 7시만 되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급히 무엇을 사려고 해도 살 곳이 없을 정도였다.
20년이 지난 중국은 이제 천지개벽의 모습이다.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밤늦도록 상점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집값이나 물가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다. 이제 중국은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전 세계에 물건들을 공급하는 공장이 되었다.
수치상으로 봐도 중국은 현재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53개 기업이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돼 있다. 시가총액기준으로 국영석유회사인 시노덱은 3262억 불로 세계2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총 1382억 불의 2배에 달한다.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중국의 경제규모는 약 10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이나 유럽연합의 12조 달러와 규모가 비슷하다. 외환보유고도 3조2000억 달러를 넘어서 군계일학을 자랑하고 있다.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에 빗대어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세계에서 팍스 시니카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0, 6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은 무엇을 하려고 해도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는 무소작위(無所作爲)의 상태였다. 1957년도의 대약진운동과 1966년의 문화혁명과 같은 이념투쟁은 중국을 덩치만 큰 늙은 호랑이로 만들었다. 덩샤오핑 집권후 중국은 시장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강해지기 전까지는 힘이나 실력,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정신을 철저히 지켜왔다. 그러나 중국이 2000년대 들어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이 정신은 수정 및 폐기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 중국은 유소작위(有所作爲) 즉 할 말은 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중국의 국제사회 대응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화평굴기(和平掘起)로서 주변국과의 평화를 중시하면서 발전한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중국위협론을 잠재우면서 다른 나라와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중국을 보는 우려의 시각을 불식시키려는 목적이 다분히 깔려 있는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으로서 필요할 경우 기세가 등등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국력의 크기만큼 중국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그렇잖아도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서방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얼마 전 원자바오총리는 중국은 국강필패(國强必覇)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나라가 강해지면 패권을 쫓게 되는데 중국은 그 길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이해수준은 낮은 편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났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과거중국을 현대중국과 중첩시키면서 나타난 착시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중 국내 일각에서는 더 이상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한·중 관계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구동축이(求同縮異)라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나눈다는 구동존이의 자세를, 한국은 공통점을 추구하되 차이점은 줄여나간다는 구동축이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중 간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든 간에 현시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중국을 정확히 이해하고, 코앞에 있는 강대국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냉철히 판단하는 것이다.
■ 구자억의 중국의 민낯을 보라=‘중국은 무엇이며 중국인은 누구인가.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중국은 계속 번영할 것인가. 중국의 부상은 세계에 어떤 의미인가.’ 한중수교 20년. ‘중국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으나 우리는 아직도 중국을 제대로 모른다. 중국 전문가 구자억 박사의 칼럼을 통해 겉으로 들어난 것과는 또 다른 중국의 교육, 사회문화의 변화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