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선행학습금지법’을 통과시켰지만 사실상 학원은 제외하고 학교만 규제하는 내용이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는 20일 본회의를 열고 ‘선행학습금지법’으로 불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안’을 재석의원 206명 중 찬성 178표, 반대 28표로 가결 처리했다.
법안에 따르면 초·중·고교 정규 과정과 방과후학교 과정에서 선행교육이 금지되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평가도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초·중·고교의 ‘선행학습’을 금지할 뿐 더 근본적인 문제인 학원의 선행학습 금지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선행학습 규제 대상도 초·중·고교와 대학으로만 규정돼 있어 사실상 학원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학원 또는 교습소의 선행학습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지만 이마저도 처벌조항이 없다.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이 18일 열린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단속의 기준도 애매하고, 처벌규정도 없어 법률상 금지규정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지 않다”며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법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선행학습 여부를 가릴 교육과정심의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관련 공무원, 관련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 ,학부모단체 회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등 위원의 기준도 선행학습 기준만큼이나 모호하다. 15명 이내의 위원으로는 201개 4년제대학의 전형을 제대로 평가·심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법을 시행할 경우 긍정적 효과보다는 학교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심화학습을 선행학습으로 규정한 학생이나 학부모의 민원제기와 이로 인한 선의의 피해교사 양산, 교육과정 운영·평가 등 교사의 수업 자율권 제한 등으로 오히려 공교육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는 한 목소리로 학원에 대한 규제가 빠진 법안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 A중학교 B교사는 “학교 시험으로 선행학습이 조장된다는 국회의 인식 자체가 탁상공론”이라며 “대다수 학교는 교육과정에 맞춰 상중하 난이도를 적절하게 배분해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기도 한 고교생 학부모는 “선행학습을 하는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우리 애가 다른 애들보다 더 빨리 배우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며 “이런 법으로는 선행학습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학원장들도 법안 통과에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의 한 학원장은 “어디까지가 선행학습인지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법안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고 있다"며 ”학부모들도 별다른 문의 사항이 없다"고 학원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교총은 교문위에서 법안이 의결된 18일 논평을 통해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선언적 의미의 광고 금지조항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선행학습의 유발요소인 어려운 교육과정의 개편, 대입 및 사회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