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나라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춘천중학교 5학년(현 춘천고 2학년) 때였는데, 처음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무작정 포탄 나르고 심부름하고 그랬지."
경서호(82·사진) 대한민국학도의용군회 회장은 65년 전 6월 25일 17세의 나이로 처음 전장에 나섰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았고 무기도 훨씬 좋았어. 우리는 정식으로 국군이 만들어지기도 전이었지. 국군이 아니라 국방경비대라고 불렀다고. 그런데 북한이 그런 국방경비대가 다 외출 나가는 일요일을 노려서 쳐들어온 거야.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사흘을 막아냈어.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못 들어봤겠지만, 이 전투가 춘천대첩이야."
춘천대첩은 6·25한국전쟁 초기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북한군 중에서도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2군단이 쳐들어와 매우 열세인 상황이었으나, 민·관·군의 합심 대응으로 지연 작전에 성공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에 큰 타격을 입혔다.
경 회장은 전쟁이 터지기 전 당시 학교마다 조직돼 있던 학도호국단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 경험과 그때 파 놓았던 참호 덕에 적의 총탄을 피할 수 있었던 일,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위험을 무릅쓰고 공군의 폭격을 지원하기 위한 표식을 설치했던 일화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전쟁이 난 건지 어떻게 된 건지도 잘 몰랐지만, 다들 나라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 하나로 합심했기 때문에 지켜낼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이제는 상황이 역전돼 우리가 북한보다 훨씬 잘 살게 됐다"고 뿌듯해했다.
그러면서도 달라진 세태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점을 특히 걱정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자기 밖에 모르는 것 같아. 궂은일은 하지 않으려하고 말이야. 요즘 이슈가 되는 일자리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이런 태도 탓이 커. 번듯해 보이는 일자리가 부족한 거지 힘들 일은 사람이 부족해서 외국인들이 다 하고 있잖아."
그는 기성세대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 내외가 교사를 하고 있는데, 참 요즘 같아서는 아이들 가르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잘못한 것에 대해 조금만 뭐라고 해도 부모들이 먼저 나서 항의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겠어. 민주화도 좋고 개인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권위를 존중할 건 해야 한다고 봐."
정치권에 대해서는 비판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표 얻는 데 불리하더라도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은 해야 하는 데, 정치인들이 인기 밖에 생각하질 않아. 지도층이 이러니 점점 국민들도 이기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
경 회장은 우리사회에 타인에 대한 배려 정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젊은이들의 변화에 대한 바람을 강하게 피력했다.
"나라가 있어야 부모가 있고 부모가 있어야 내가 있을 수 있는 건데 너무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 젊은이들이 똑똑한 머리로 나라와 이웃을 좀 더 생각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