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릉중 29개 교실 뒤편에는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들이 참여해 직접 페인트칠하고 조립해 만든 사물함이 놓여 있다. 3월부터 5개월여에 걸쳐 만든 957개의 원목 사물함이다. 낡고 문짝이 떨어져 지저분했던 사물함 때문에 늘 칙칙했던 교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방학 동안 모두 교체된 사물함 덕에 개학을 맞아 교실에 들어선 아이들의 표정마저 환해졌다.
학교 사물함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김창수 교사의 수업에서 착안됐다. 지난해 김 교사는 기술 교과 시간에 학생들과 청소도구함 같은 간단한 도구를 만들고, 한 학급에서 사물함 만들기를 진행했다. 이를 본 임진수 교장이 학교 사물함 전체를 학생 손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임 교장은 “학생들이 직접 사물함을 제작하면서 물건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학교에 대한 애정과 주인의식도 키울 수 있어 학교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교사들까지 동참하면서 예산부족으로 엄두도 못냈던 환경 개선에 학교 구성원들이 나서게 됐다.
전관식 교사는 “예산이 나오기를 무작정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냐”며 “선생님들도 우리 아이들이 쓸 물건을 바꾸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며 “주말이나 방학 때도 나와 제작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가세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이같은 계획을 알리자 100여 명의 학부모들이 동참의 뜻을 밝혔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과 후나 주말에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2학년 자녀를 둔 김은숙 씨는 “비싼 인건비를 들이지 않고 학부모들의 힘으로 내 아이가 쓰는 학교 물품을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 굉장히 뿌듯하다”며 “선생님들과도 자연스럽게 학교나 아이들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선생님들한테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뜻에서 눈도장을 찍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니다. 1학년 자녀를 둔 국순혜 씨는 “매주 학교를 찾았지만 담임선생님은 한 번도 뵙지 못했다”며 “단지 학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는 생각에 참여했는데 목공예라는 새로운 경험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편까지 휴가를 내서 동참했고, 집에서도 간단한 작업은 직접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동 드라이버도 구입하게 됐다.
김 교사가 도면을 그려서 원목 제작업체에 의뢰, 재료를 구입해 오면 학생부터 교원, 학부모까지 나서 직접 사포질, 페인트칠을 하고 조립했다. 사물함에 쓰는 경첩은 기존에 쓰던 낡은 사물함에서 다시 재활용했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목공예 재미에 빠져 방과 후에 거의 매일 남아 작업을 도운 학생도 있었다. 3학년 정찬영 군은 “작년에 목공예를 처음 경험해보고 만드는 작업 자체가 재미있어 거의 매일 기술실을 찾고 있다”며 “이제 곧 졸업을 하면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아쉬울 정도”라고 말했다. 사물함 작업이 끝났는데도 정군은 개인적으로 쓸 작은 장롱 등을 만들며 목공예를 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 전체가 단합해 이룬 성과는 놀라웠다.
전 교사는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거란 생각에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해보자고 한 건데 학부모님들까지 참여해 짧은 기간에 완성할 수 있었다”며 “협소한 기술실, 열악한 여건에도 구성원 모두가 우리 학교를 위한 일에 기쁘게 동참했고 학생들도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고 의미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