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설립이 전국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집 값 하락 우려 등 님비(NIMBY)에 번번이 부딪히고 있어서다.
2015년 9월 기준 전국 특수학교는 총 168개교다. 2010년 교육부는 2014년까지 21개교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신설된 학교 수는 14개에 불과하다.
전국 교육청 담당자를 통해 특수학교 추가 건립 수요를 조사한 결과 총 26개 정도의 특수학교가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7개교로 가장 많았고 서울 4곳, 인천·강원·경남 3곳, 충남 2곳 등이었다.
이는 교육청이 재정여건과 학생 수 등을 고려해 산출한 수요인만큼 실제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학부모 입장에서는 부족할 가능성이 많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반학교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통합교육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지만, 장애가 심해 특수학교가 꼭 필요한 학생들도 많다”며 “인구가 약 8000만 명인 독일에 3000여교, 인구 약 1억3000만 명의 일본에 1000여교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에 특수학교가 얼마나 부족한 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현재 부지를 확보하고 교육부의 중앙투자심사를 완료해 설립이 구체화되고 있는 곳은 6개 밖에 안 된다. 이들 학교가 계획대로 2018까지 모두 개교하더라도 당초 2014년까지 계획된 21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특수학교 설립에 가장 큰 난관은 부지확보다. 도심지의 경우 높은 지가도 문제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를 뚫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매입은커녕 폐교 부지나 유류지 같은 곳이 있어도 엄두를 쉽게 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개발이 완료된 인구 밀집지일수록 극심해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02년 이후 13년째 단 한 개교도 설립하지 못했다. 현재도 강서구 가양동 공진초 폐교부지와 중랑구 신내동 공터부지에 설립을 시도하고 있지만 저항이 거세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미 장례식장이나 임대주택 등 비선호 시설이 들어와 있으므로 이중으로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잘 개발된 부촌에 짓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주장한다. 표면적 이유는 균형개발이지만 결국 부동산 문제라는 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께 특수학교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수차례 설명했지만 전혀 설득되지 않는다"며 "설립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동의 없이 일방 추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위치 변경도 고려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들 지역 외에도 한강 이남에는 지체장애 특수학교가 한 곳밖에 없어 신설이 필요한데, 부지는커녕 지역 선정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광주, 대전 등도 이런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인천시교육청은 각각 내년과 내후년 개교 예정인 남동구 동의학교와 남구 남희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제 서구 쪽에 (가칭)서희학교 한 곳만 더 설립하면 지역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희, 남희 두 학교 설립과정에서 정말 많은 진통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부지를 물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이천과 화성 두 곳 학교 신설은 큰 탈 없이 진행 중이지만, 용인시 수지구 성북동에 설립할 예정이던 특수학교는 주민반대에 결국 처인구 마평동으로 자리를 옮겨 추진되고 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진행 중인 학교 외에 5곳 정도가 더 필요하지만, 기존 주거지구는 설득이 너무 어려워 그린벨트 해제나 신규 택지개발지구 위주로 부지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광주시교육청은 2년 넘게 부지 확보에 애먹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서구에 신설부지를 알아보고 있지만 학교가 들어서면 학교정화구역으로 묶여 지역상권이 침체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돼 누구도 매물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경남도교육청은 아예 비밀 작전에 돌입했다. 도내 3개 권역에 각각 1개교의 특수학교 설립이 필요한 상태지만, 미리 정보가 새나가면 부지확보 시도조차 못할 것을 우려해 해당 지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가 지속됨에도 교육청들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교육감에겐 학교설립권만 있을 뿐, 지역 주민들이 조건으로 내거는 지역 시설 개선 등 민원을 처리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청 입장에선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계속 읍소하거나, 지자체장의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이들마저 반대편에 서는 일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 탓에 여러 교육청들은 주민 저항을 피할 수 있는 교외나 신규택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개발계획 권한이 중앙부처나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수동적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대전시교육청은 이미 수년전부터 미래창조과학부가 계획 중인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ㆍ둔곡지구에 특수학교를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최근에도 미래부에 다시 한 번 특수학교 용지를 요청했지만 ‘검토 예정’이라는 회신만 왔다”며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어 다른 부지도 함께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당국의 부실한 행정처리와 교육재정 악화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 충남도교육청의 경우 이례적인 주민들의 지지로 논산에 (가칭)나래학교 설립을 추진했지만, 교육부의 중앙심사투자 단계에서 좌절을 겪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이 학교를 유치해 고령화된 마을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적극 도와주셔서 당연히 될 것으로 봤지만 9월 중앙투자심사에서 보류돼 면목 없는 상황”이라며 “최근 교육재정이 어렵다보니 교육부가 학생 수가 적은 지역에 대한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특수학교 증설은 국가시책인만큼 최대한 지원하는 게 기본방침이지만 나래학교 신설 건은 학생 수요조차 제시되지 않아 보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