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고,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데 고향 생각하기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그래서 객지에 나간 대개의 사람들은 가슴 한쪽에 고향을 품은 채 생활한다.
고향의 산천과 옛 모습, 고향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예전에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객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명절은 가슴 설레는 날이다. 그 중에서도 먹을게 넘쳐나고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추석이 으뜸이다. 오죽하면 옛 선인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을까?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 꼽히는 추석(秋夕)이 지나갔다. 올 추석은 때 아닌 호우로 피해를 입었거나 각종 사고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안타깝다. 하지만 고향이나 친척을 찾는 차량들로 해마다 되풀이되던 교통대란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추석날 오후 고향을 찾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같이했다. 술잔을 주고받다 풍물놀이를 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작년 추석에는 집집을 돌며 마을기금도 많이 마련해줬는데 마침 우환이 있는 집이 있어 작은 마을인 우리 동네를 떠나 큰 동네에서만 판을 벌이기로 했다.
명절이 짧다보니 일찍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수확 시기에 비가 많이 내려 고향 사람들도 바빴다. 들판에 나가 일하고 있는 선배까지 불러들여 간신히 놀이 패를 구성했다. 급조된 놀이패였지만 몇 번 맞추니 제법 가락이 맞는다.
설상 가락이 맞지 않으면 어떤가? 모두 흥에 겨워 즐거워하며 어깨를 들썩이면 되는데... 가는 집마다 술상이 푸짐했고, 취지를 애기하며 사양해도 예전처럼 돈 봉투를 주려는 집도 있었다.
세월 탓이겠지만 모두들 술도 많이 줄었다. 술보다 진한 고향의 정에 취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웃들과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아가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간이었다. 고향은 그렇게 넓은 가슴으로 객지에서 온 사람들을 품었다.
이런 풍습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에게 고향은 어떤 존재일까? 먼 훗날까지 고향이라는 단어가 안식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내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정서순화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교육해야겠다. 뿌리교육도 철저히 해야겠다. 어느 곳에 살든 자기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애국할 수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