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고개를 훨씬 넘어, 스산한 가을바람에 아름답던 단풍도 퇴색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니, 흘러가는 세월의 강둑에 눈물이 적셔나는 때, 떠오르는 것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지난 토요일 밤, 모 방송국의 '00 카페'를 보고 텔레비전을 끄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기로 작정하고 그 프로그램이 끌날 때까지 시청하였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고, 느낀 점을 토로하고 싶다.
우선 토론의 방법과 기술의 부족을 들 수 있다. 토론의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이나 참가자들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학교에서 언제 제대로 된 토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한 번 되돌이켜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주입식 교육에다 대학 입시에 매달리는 교육을 하느라 올바른 교육 한 번 제대로 못 받았으니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00 카페'에 참석했던 대표성을 띄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못해보고, 시간에 쫓겨 결론이 없는 시간 때우기로 끝나는 것을 보고 정말 안타까웠다. 게다가 이 토론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이나 단체의 사리사욕이 이 나라의 교육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모르는 아전인수 격의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 참석했던 단체의 대표들이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문제부터 파고들어 심층 있는 토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태로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렇듯 교원평가제의 입장을 놓고 각 단체의 의견을 논의했을 때, 서로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교육의 이념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교원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는 교육환경의 개선이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지, 이와 같은 미비한 제도의 도입이 전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려는 교원평가제는 선진 국가에서 이미 실패했거나, 일부 지역만 시행해 보고 있는 인정받지 못한 제도라는 것이다. 교원평가제와 유사한 동료교원평가제를 실천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어느 학교의 대표자 말을 빌리면 더더욱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현재 서울의 모 학교에서는 자율적으로 교원평가제와 유사한 동료교원평가를 10년 전부터 실시하여 사례를 개발하고 있지만, 준비 단계와 교육여건의 개선이 없이는 실천 불가능하다고 평가의 어려움을 소상하게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 정책담당자의 소신은 부당하게도 저출산 대책이니, 전산보조, 행정보조 등의 배치로 행정업무와 교원의 업무 경감책을 마련하여 교육여건을 개선한다는 쪽으로 유도했다. 그 정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실효가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근무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도 일반 학교에 전산보조, 행정보조, 과학 보조, 특수아 보조 등의 담당자가 이미 배치되어 있어도 아무런 실효가 없지 않는가?
또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에서 실패한 제도를 왜 하필이면 토양이 제대로 안된 우리 나라에, 정책입안자의 차원에서 가지고 들어와 무리한 정책을 '억지 춘향'으로 밀어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정책의 부당함을 깊이 인식, 문제점을 분석하고 협의하는 것이 또 한 번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학교 현장의 교육여건과 수업 개선을 원한다면, 지금보다 많은 수업 장학요원을 대폭 임용하여, 수업 기술의 지도나 수업방법 개선 연구 등으로 현장의 수업 개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장학사들은 주된 고유의 업무 보다는 다른 잡무가 너무 많아 장학 지도의 손이 모자란다고 한다. 그 이유는 현재의 장학사 인원이 태부족에다가 여건상, 많은 일을 떠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정적인 문제부터 시급하게 개선함이 없이 일선 교원들에게 교원평가제라는 것으로 책임을 떠맡긴다는 것은 유야무야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굳이 7차 교육과정의 실패를 들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본다. 열린교육의 실패, 수행평가의 실패, 정년단축의 후유증으로 인한 학교의 공동화 현상, 기간제 교원 도입의 폐해, 중년 교원과의 괴리감 등의 실패한 정책들은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되나? 아니면 정책의 입안자들만 물러나면 이 나라 교육은 썩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제는 우리나라만이라도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또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
또 학부모단체의 대표자의 견해도 어불성설이다. 교원평가제를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어느 학부모 대표의 말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터무니없고 자기 입장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망발이 아닌가? 이렇듯 이 나라의 세상은 어디 곪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의식과 사고가 경제 발전에 따라오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텅텅 비어 있는 의식과 사고의 공간을 메워 줄 수 있는 이 나라의 교육전문가들은 다들 어디서 고개 숙이고 있다는 말인가? 한 번 길거리에 나와 크게 외쳐보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이 나라의 교육 전문가들만이라도 고개 숙인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부도 오로지 눈앞에만 보이는 정책입안이 중요한가? 아니면, 여론몰이를 통한 대외 정치용이 중요한가?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 공약 사업으로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이 이런 정책이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교육인적자원부나 교원들도 모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 온 모델을 참고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학부모, 단체 대표, 교육전문가, 정책입안자 등의 관계자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마련하고, 이 나라의 교육과 이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