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는 예정보다 하루 앞선 지난 12월 7일, 수시 전형의 합격자를 발표하여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일선 진로진학상담교사도 가늠하기 힘든 입시전형이 서울대학교의 입시전형이다. 이 날에도 예상대로 서울대학교는 상상 이상의 합격자를 발표했다. 합격자를 배출한 학교는 1080여개 교로 전국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1550개임을 볼 때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합격자를 배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수험생이나 진로진학담당자들은 이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합격자들의 분포도를 보면 우선 지역적인 안배, 학교급별 안배, 나아가 전국 고등학교의 학교 안배로 합격자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물론 수도 서울의 경우에는 두드러지게 많은 인원수를 배출한 학교도 있고 지방의 소위 명문고도 확연하게 합격자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도 보인다. 합격자들의 수를 잘 분석해보면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기 어려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 고등학교는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에 힘입어 학교의 종류에 따라 대거 합격자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숙사 300프로젝트에 입각하여 설치한 기숙형고교와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나아가 소위 특목고인 외국어고
“학생 무서움증” 요즘 교단이 앓고 있는 새로운 중병이다. 학생이 두렵고 무서워서 교단을 떠나려는 교사가 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수업 중에도 교사가 학생을 통제 할 수 없는 황폐화된 교육 현장의 모습은 사흘이 멀다하고 매스컴을 통해 보도 되고 있다. 이것은 수요자 중심 교육이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 등장 하면서, 교육현장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와 목소리만 높아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교사의 고유 권리인 학생 통제 기능을 약화시켜, 학생 무서움증과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이란 “의도적으로 행동을 인간답게 변화 시키는 과정” 이며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 할 수 없다”고 한다. 교육 주체자인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개정되는 승진 규정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육현장에서 학교 경영을 책임질 관리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우선, 우리 교육 현실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경륜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며, 교육과정 운영과 교과 지도에 우수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이어야 하고, 또한 문제 상황에 대한 판단과
오늘 아침 교무실 풍경은 웃음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풍경 그 자체였다. '서울대 수시 논술 고사'에서 최고점을 득점하여 합격한 본교 재학생에 대한 중앙 일간지의 기사로 만나는 선생님마다 이야기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평소 교과과정의 충실한 운영과 함께 다양한 특기 적성 교육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의 심성계발 교육에도 주력하여 사랑이 넘치는 학교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특히 학교교육 계획에 따라 모든 선생님들이 '아침 10분 독서운동‘, 방과후 독서' 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여 학생들에게 참신한 독서 논술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 죽음의 트라이 앵글이라는 학생들에게 '독서만이 살 길이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다양한 독서 논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제 동행 독서로 독서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매일 아침 8시 10분부터 8시 30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모든 학생과 교사들은 조용히 교실에서,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게 한다. 또 ‘방과후 독서' 시간(9교시?)에도 모든 학생들에게 독서를 하게 하여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독서 ․ 글쓰기 지도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학년별 필독도서와 권장,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학생들은 필독도서와 권장도서
요즈음 증권 시장가의 주요 종목이 논술 관련 종목이라는 이야기와 외국의 자본 투자가들이 한국의 논술시장으로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학원이나 교육 관련 업체들은 우수한 논술지도 강사들을 찾고 있으며 논술 교육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90년대 이전의 우리 교육을 되돌이켜 보면 암기 중심의 교육이었다. 암기하고 재생하는 능력이 뛰어나면 학교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시대였다. 기억의 맹목적 재생,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산물이 9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논술 중심의 교육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되었다. 민주화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지원자와 평가자의 폐쇄적 대응에서 자신의 창의적, 비판적 생각을 글과 말로 전달하는 능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지원자와 평가자의 개방적 대응 관계가 중요시되는 구술 중심의 시대에서 이제는 통합논술 중심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지원자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조성을 평가하는 시대이다. 통합교과형 논술을 통하여 같은 사물에서 다른 것을 찾고, 다른 사물에서 같은 것을 찾는 교과와 교과를 분절된 상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을 강조하는 지식관이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보문 호반위에 어린 단풍을 벗삼아 밤새워 토론한 여러 선생님들이 눈앞에 어립니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2박 3일동안의 연수를 받았습니다. 우선 정말로 열성적으로 강의를 해주신 모든 분과 이번 연수를 위해 애써주신 한국언론재단 관계되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2박 3일동안 경주 콩코드 호텔에서 같이 열심히 연수에 임하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고, 인간적인 면모나, 우리 나라의 교육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알찬 연수였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1,200시간의 연수를 받아 보았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어느 연수 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좁은 세상에서도 열심히 아름다운 삶을 엮어나가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알찬 연수였습니다. 이번 연수를 교훈삼아 앞으로 학교현장에서 더 나은 교육을 위하여 독서와 논술 교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이론적인 연수도 좋지만, 앞으로는 및 의 강의가 더욱 강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는 언론 미디어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지만, 휴대폰을 소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수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은 우선 수험생의 잘못이다. 수능날 하루를 위해 12년을 노력해 왔는데 재수할 기회까지 빼앗겨 너무 안타깝다. 이것은 작년 수능에서 일부 소수의 무지몽매한 이들로 인한 적극적인 부정행위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수험생의 안이한 태도는 말할 것 없고, 감독 교사의 적절하지 못한 지도도 한 몫은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수능의 '문제의 정답이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수능 출제와 관리를 맡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이 끝난 지난 23일부터 각 교과의 문제와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게시판에는 지난 11월 23일 실시된 2006학년도 수능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무려 250여 건이나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모두 250여 건의 의견이 접수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이번 수능의 문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들이 오랜 기간 출제하고, 검토하여 만들어진 문제이기는 하지만 문제에 대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
대구 사람들은 지하철을 싫어할까?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고 한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사고 악몽, 두 번째는 탁한 공기를 들고 있다. 3년 전 지하철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이후 한 번도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악몽을 떠올리기 싫어서. 막상 타려고 하니 아직은 두렵다"고 한다. 극단적인 애기일지 모르지만 대구시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지하철 사고의 악몽은 두려움뿐만 아니라, 대구의 아픔이다. "1995년 4월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2003년 2월 중앙로역 지하철 방화 대형 참사, 2005년 10월 달성터널 미사일 화재 사건 등 대형 참사는 앞으로도 지울 수 없는 대구의 아픔"이다. 대구지하철 2호선은 1997년 1월 첫 삽을 뜬 지 8년9개월만에, 지난 10월18일 전동차 3편성(18량)이 다사읍 문양역에서 수성구 사월역까지 26개 역을 거치는 총연장 29㎞. 2조3천33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어 지하철 2개 노선이 운행되게 되어, 대구는 서울과 부산에 이어 국내 세 번째로 지하철 시대를 맞게 되었다. 만성 교통체증 구간인 달구벌대로인 동서 방면을 완전히 관통할 지하철 2호선은, 매일 오전 5시30분부
마흔 고개를 훨씬 넘어, 스산한 가을바람에 아름답던 단풍도 퇴색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니, 흘러가는 세월의 강둑에 눈물이 적셔나는 때, 떠오르는 것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지난 토요일 밤, 모 방송국의 '00 카페'를 보고 텔레비전을 끄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기로 작정하고 그 프로그램이 끌날 때까지 시청하였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고, 느낀 점을 토로하고 싶다. 우선 토론의 방법과 기술의 부족을 들 수 있다. 토론의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이나 참가자들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학교에서 언제 제대로 된 토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한 번 되돌이켜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주입식 교육에다 대학 입시에 매달리는 교육을 하느라 올바른 교육 한 번 제대로 못 받았으니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00 카페'에 참석했던 대표성을 띄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못해보고, 시간에 쫓겨 결론이 없는 시간 때우기로 끝나는 것을 보고 정말 안타까웠다. 게다가 이 토론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이나 단체의 사리사욕이 이 나라의 교육을 얼마나 황폐화시키
현재 우리 나라의 교육환경에서는 교사의 능력이나 실적을 적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다. 교원평가제도의 도입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교원평가제도의 많은 문제점 중에서, 개략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은 학생의 성장, 발달을 보장하는 문화적 정신적 경영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릇 교육은 학생들의 인격 완성을 추구하고, 성장 발달을 보장하는 경영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문화적, 정신적 경영이고, 교육의 중요성 및 특수성을 형성하고 있다. 학교에 있어서 교직원은 수업이나, 생활 지도, 진로지도, 특별 활동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학생들과 서로 마주보고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전력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도 때로는 정체, 후퇴하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가는 중에 각각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특정 교원과의 관계나 특정 경험에 의해 산출될 뿐만 아니라, 경험의 통합에 있는 것이고, 또 항상 성장이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으로서의 필요성이 있다. 결국 교육에 있어서 성과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측정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교원평가제도를 시행, 평가하려고 한다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에 비중
교사의 능력이나 실적을 적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다. 교원평가제도의 도입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삼척동자도 안다. 교육에 있어서 교원에게 부과하는 책무가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 없다. 이 제도는 교원의 역량 향상을 커다란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교원 평가에 차이를 설정하는 것으로 개인의 역량이나 학교의 교육력이 향상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교육활동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성장 발달을 가져올까?” 생각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교재 연구를 하고, 생활지도나 학급구성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또 반성하는 일로 매일, 매년 반복의 연속이다. 근무시간외에 휴일을 반납하고 교육활동에 임하는 것도 헤아릴 수 없다. 급여나 처우에 반영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직무상의 책임감, 교육활동 속에 생기는 달성감, 학생들 간에 성립하는 신뢰관계, 동료와의 연대감,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리들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학생들이 성장한 모습이고, 학생 보호자부터의 감사의 말이고 동료로부터의 격려이다. 물론 때로는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엄격한 지적을 받기도 하고 동료로부터 비판을 받는 적도 있다.
시대의 흐름을 볼 때, 우리 사회의 교육 패러다임도 급변하는 사회에 맞추어 시대마다 아주 다르게 새로운 변화를 거듭해 왔다. Change는 Chance라고 했던가?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와중에, 교육계도 역시 그 바람을 피할 수 없어 야단법석이다. 우리 교육 가족들은 이 과도한 시대에 한 번은 헤쳐 나가야 할 성난 파도 앞의 돛단배의 운명에 놓여있다. 이쪽에선 밀어 붙이기, 저쪽에선 강력하게 대항하기식으로 팽팽한 대립의 칼로 서로가 서로를 겨누고 있는 딱한 현실이다. 인간의 유형에는 대체로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큰소리치며 앞장서는 형, 소리는 치지만 실천 못하는 형, 안 보이는 곳에서 늘 묵묵히 실천하는 형,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형, 항상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참신형 등이 있다고 한다. 위대한 철학자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기 때문인가? 교육계의 사람들은 과연 어느 유형에 속할까? 또한 사고의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의견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기때문에 사고의 대립도 생긴다. 예를 들면, 교원평가제, 교장공모제 도입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 수 있다. 급속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
“사랑할 시간은 짧다. 행복한 시간은 더더욱 빨리 지나간다. 이미 흘러 가버린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그 때 알았더라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 삶의 순간 순간을 감사와 보람으로 채워 가면 그것이 행복이다”라는 글귀가 문득 생각난다. 이번 교육 실습은 나에게 학생들을 마음껏 사랑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사랑한 시간이 행복했기에 너무나 짧게만 느껴지는 실습이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담임선생님일까? 어떤 교생선생님들과 같이 가르칠까?”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1학년에 배정된 것을 알고 기뻐했지만 먼저 걱정도 앞섰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학생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지만 실습을 하면서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물론 공부와 수업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앞서 교사와 학생간의 정신적 신뢰와 마음의 유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설 때, 학생들은 그 보다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준다는 것이다. 예쁜 미소와 수줍은 마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정성이 깃든 선물과 나에게 내민 작은 손길 들 이루 말할 수 없다. 학
기쁨은 나누면 배로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는 심장병, 백혈병 등 난치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실현을 위한 ‘사랑의 손잡기 운동’의 일환으로 의료비 지원, 인간애 고취 및 사랑 봉사 정신 함양 등을 2004년부터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본방침은 난치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소외 계층의 학생들에게, 의료비 지원 및 지속적인 관리와 “나누는 사랑, 큰 기쁨“을 공유하는 사회 구현을 위한, 범시민 운동으로 확산 정착, 유관기관과의 유대 강화 및 홍보로 기금 확보를 위한 자발적인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업주최는 대구광역시교육청이며, 사업주관은 대구광역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전개하는 바, 지원대상은 아직은 성금모금 실적이 적어 교육청 관내 각급 학교(유치원 포함) 및 평생교육 시설에 재학 중인 난치병 학생 및 원아에게만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난치병학생의 현황으로 초, 중, 고, 특수학교를 포함하여 270여명의 학생이, 심장병, 백혈병, 악성 종양, 근이영양증, 소아당뇨, 신부전증, 혈우병, 모야모야병, 재생 불량성 빈혈, 혈소판 감소증,
가을 햇살이 따가운 날, 동료 교사와 함께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의 이치를 우리도 닮으면 얼마나 좋을까? “따르릉...... 전화왔어요...” 오늘도 수많은 전화를 받는 소리 등으로 이른 아침부터 교무실은 요란하다. 공문 제출 지연에 따라 고개 떨군 000님의 목소리, 학교 운동장 사용에 따른 이웃 주민의 따가운 질책 소리, 학생들의 태도나 학교 행사 문제로 시비거는 전화, 심지어는 학생들의 정보를 묻는 전화, 소위 학교 부적응아의 문제로 학부모님과의 언성 높은 전화, 학생들의 생활지도하는 소리,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휴대폰 벨소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 잡상인의 교무실 미니 시장, 차량수리 직원, 보험사 직원들의 소리, 게다가 쌓이고 쌓인 학교 분진, 청소를 열심히 해도 돌아서면 버린 휴지 조각, 먹다 버린 과자 봉지 등은 오늘도 지친 나를 슬프게 한다. 어찌보면 살아있는 교육현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서 많은 교재연구에 쫓기고 있는 귀중한 시간, 매일같이 잡무에 시달리고 있는 시간,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인 학교 안이 분진이 가득하고, 요란한 삶의 현장이라 생각하니 더욱 나를
“아줌마, 누구세요?‘ 인사성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했지만, 이젠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그런 말을 거의 들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낸다. 이른 아침 등교로 시작하여 밤늦은 야간 자습까지 하루 종일 학교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24년간의 교단생활에서 내가 느낀 것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학생들의 언행, 예절, 실력, 교사에 대한 신뢰 등이 삶의 윤택에 반비례하여 한 해, 한 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무분별한 은어, 비어, 신조어의 사용, 왕따 문제나 영어 단어 Mountain은 알아도 뫼 山은 모르는 세대, 같은 한 울타리에 생활하면서도 만나도 먼 산을 쳐다보는 학생, 심지어는 본체 만체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가는 학생, 더 심한 경우는 같은 학교 선생님을 외부 손님으로 착각, “아줌마”라고 부르는 경우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주위 동료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수업시작 시간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니 정말 슬픈 현실이다. 어느 학교의 선생님들은 한결 같이 명찰을 달고 근무한다고 한다. 서로를 알게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