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날’은 경찰이, ‘근로자의 날’은 근로자들이, 하물며 군인들까지 ‘국군의 날’에는 하루를 쉬면서 위로받고 모두 함께 그 노고를 생각한다. 그러나 ‘스승의 날’은 어떤가.
학부모에게는 촌지와 선물에 대한 부담을 주는 날, 교사에게는 교육부와 언론이 싸잡아 사기를 꺾는 날, 학생들에게는 그저 일년에 한번 있는 그렇고 그런 날.......
금년도 스승의 날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휴업을 하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오죽했으면 학교 문을 닫겠느냐’는 교육현실에 대한 교단의 서글픔과 함께 사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론으로 분분하다. 이맘때만 되면 언론과 학부모단체가 앞 다퉈 촌지수수 등 교육부조리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등 오히려 교직사회의 사기를 꺾는 현상이 반복됨으로써 이래저래 스승의 날, 정작 우리는 피곤하고 괴롭기만 하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것을 도덕의 기본으로 삼았다. 심지어 자신의 족보에조차 부모 다음에 스승의 이름을 기록하여 대대손손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 했다.
옛날 학동들을 가르치던 서당에서는 배우던 책 한 권을 떼면 ‘책거리’ 또는 ‘책씻이’라 하여 학부모가 음식을 장만, 스승인 훈장을 위로하고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과 기쁨을 나누는 잔치를 베풀었다. 유월 유두일에는 회초리를 만들어 스승에게 기꺼이 바치며 매를 들어서라도 자녀들을 바로 가르쳐달라고 당부도 했다.
사실 스승의 날은 우리 교사를 비롯한 교단에서 주장하여 만든 날이 아니다. 1958년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 적십자단원들(RCY) 등 제자들이 병환 중에 있는 현직 선생님과 퇴임한 옛 선생님을 찾아뵙고 위문하는 봉사활동을 벌이면서 자발적으로 만든 기념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만든 기념일에 스승이 괴롬을 받는 날이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모 일간지에 소개된 미국 스승의 날 풍경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5월 첫째 주 또는 둘째 주 화요일인 미국의 스승의 날은 당일은 물론 한 주간 ‘스승에 대한 감사 주간(Teacher Appreciation Week)’으로 정하여 기념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매일 다른 ‘선물(surprise)’ 을 가져가도록 지도하고 교육청과 학부모-교사협의회(PTA)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생들이 준비할 선물 내용을 미리 알려준다.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즐겁게 꽃이나 감사카드 등 부담 없는 선물을 준비하고 교사들도 고맙게 받는다. 이렇게 부모가 앞장서서 자녀들의 스승 존경의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은 없고 ‘자식 둔 죄’라며 고민을 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고 자녀들 앞에서 스승을 헐뜯고 폄하하는 우리의 학부모들, 때맞춰 공무원행동강령을 빙자하여 교사들을 감시하는 교육청과는 사뭇 차원이 다르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우리학교는 이날 수학여행과 야영수련을 떠나고, 3학년은 소풍을 간다. 우리 역시 모두 학교를 떠나고 문을 닫는 것이다. 스승의 날 학교 문을 닫는 것은 유감이지만 이는 교사들이 떳떳하게 촌지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존심을 꺾어가면서까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 수밖에 없을까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