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학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일단 교장이나 교감은 평교사와는 달리 수업을 하지 않는다. 교감이 교무업무를 관장한다면 교장은 인사, 재정, 시설 등 학교운영에 따른 총괄적인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흔히 교장의 마인드에 따라 학교가 달라질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학생 교육은 주로 교사들이 하기 때문에 그 영향은 생각처럼 크지 않다.
교장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은 곧 학생들에게 흠모의 대상이다. 그래서 평소 수업시간에 자주 접하는 선생님들과는 달리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더 깊이 새기려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수십년 동안 산전수전 겪으며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랐으니 살아온 삶 그 자체가 배움인 것은 당연하다.
교원 평가제 도입으로 교단을 벌집 쑤셔놓은 듯 혼란과 갈등으로 내몰았던 교육부가 다시 교장 초빙공모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도 ‘교육 개혁’이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그렇다면 대다수 교사들의 반발을 무릎쓰면서까지 강행하려는 교육부의 속셈은 무엇인가? 아마도 연공서열 위주의 교장 승진 제도가 교육 발전에 저해된다는 논리를 앞세워 시장 경제의 원리를 학교 경영에 도입하려는 의도인 듯 싶다. 물론 교육부 내 소위 개혁을 자임하는 매파의 목소리가 반영되었음은 불문가지다.
교육부는 이미 올 2학기부터 농어촌 1군 1우수교 등 150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교장 초빙공모제를 시범 운용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도 기업 최고경영자(CEO)․교수출신 등 일반인들도 학운위 심사와 면접을 통하여 교장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공모교장제안을 5월 중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학교는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비교할 때 그 성격이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은 학력 이전에 사람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대학에서도 예비 교사를 양성할 때, 교과지도 못지않게 교사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품성 교육에 높은 비중을 둔다. 교사의 말 한마디에 학생들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이를 반증한다.
흔히 국방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군인이나 치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 그리고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들을 전문직이라 한다. 아무나 군을 통솔하고 경찰 조직을 이끌며 환자의 몸에 칼을 댈 수는 없듯이 교육도 마찬가지다. 비록 교육자들이 시장주의자들처럼 혁신적인 비전이나 추진력면에서 다소 미흡할지는 모르나 교육현장의 문제를 분석하고 원만하게 풀어가는 능력이야말로 고도의 기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흔히 비전문가 출신이 조직을 맡으면 그 충격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할 것이란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교장 공모제도 그와같은 차원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전문가를 존중하지 않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보충수업, 자율학습, 무시험전형 선발 등 각종 교육개혁으로 교단을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소위 이해찬식 교육정책의 결과를 보면 안다. 심각한 학력저하는 물론이고 생활지도에 따른 공백 등 갖가지 부작용을 유발하며 결국 원점으로 회귀하지 않았던가.
경제 관료로 잔뼈가 굵은 김진표 씨가 교육 수장(首長)으로 낙점받았을 때, 행여 경제적인 시각으로 교육을 재단하지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이번 교장 초빙공모제도 당시의 우려가 현실화된 사례라고 보면 지나친 억측일까. 학교를 이끌어가는 교장은 기업의 경영자와는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교육은 이익을 내는 영리 단체가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고 키우는 사회적 공기(公器)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요성 때문에 엄정한 선발과 치밀한 수련 과정을 통하여 국가가 직접 교장 자격증을 주지 않았던가. 만약 국가가 나서서 이를 파기한다면 교단은 또 한번 갈등과 좌절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