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26일) 아침 교실 분위기는 여는 때와 달리 조용하기까지 했다. 사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침에 출근을 하면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든 화제는 지난밤에 있었던 월드컵 이야기뿐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시합이 있는 날은 유별나게 교실은 들뜬 분위기로 자율학습과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에 실패를 한 탓일까? 가끔 몇 명의 아이들만이 모여 지난 토요일(24일) 새벽에 있었던 스위스전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 뿐 나머지 아이들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우리나라의 시합이 있을 때마다 뜬눈으로 응원한 아이들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아이들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7월초 기말고사를 앞둔 담임으로서 내심 아이들의 성적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16강 좌절은 애석한 일이지만 다시 학생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아이들이 모든 것을 잊고 공부에 전념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월요일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을 시작하려고 책을 펴는 순간 한 여학생이 볼멘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스위스와의 경기 보셨어요? 그리고 심판의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느닷없이 던진 그 아이의 질문에 갑자기 교실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하고픈 이야기를 술술 내뱉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공부에 전념하리라 생각했던 잠깐의 생각이 빗나갔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스위스와의 경기를 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위스와의 결과를 두고 애석해 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심판의 오심에 대해 분개하였다. 특히 질문을 한 그 여학생은 경기 중에 있었던 심판의 오심 내용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열을 내어 이야기하였다. 어떤 여학생은 시합을 보고 난 뒤 울었다며 그때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월드컵은 아이들 모두에게 잠시나마 꿈과 희망을 심어준 것이 분명한 듯싶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준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입시와 공부에 쌓인 모든 스트레스를 월드컵을 통해 훨훨 날려 보냈건만.
마음 아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무슨 말로 아이들을 위로해 주어야 할지를 몰라 한참을 서 있었다. 16강 좌절이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할 줄이랴. 이것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가슴앓이를 해야 할까? 그래도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자구나. 그리고 최고보다 최선을 다한 태극전사들에게 국민들이 찬사를 보내듯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너희들이 되기를 바란다. 알았지?"
아이들은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시끄러웠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 둘씩 책을 펴며 정면을 주시하였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이 오늘따라 더욱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이들의 목청껏 외친 6월의 함성은 영원히 울러 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