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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윤미의 하얀 일기장

윤미는 제가 햇병아리 교사시절 어느 산골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담임했던 소녀입니다 .
당시 3학년이었던 윤미는 자그마한 키에 깜잡잡한 얼굴로 크고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늘 말없이 앉아서 수업을 그저 구경만 하는 편이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지요.

학년초 가정방문을 통해서 안 일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머니는 서울에 남의 집 살이를 떠나 있었고 아버지는 날 품팔이로 전전하는 처지여서 할머니가 윤미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윤미는 한글 해득이 아직도 시원치 않아 읽고 쓰기가 아주 부진했고 따라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일기쓰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저는 교사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일기쓰기 지도에 열을 올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일기쓰기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부담스러워 하고 더구나 매일 빼먹지 않고 쓰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일기쓰기 지도에 역효과를 나타내기에 십상이지요. 그래서 저는 아무 때고 좋으니 꼭 쓰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만 써도 좋고 정이나 쓰기 싫은 아이에게는 쓰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문화실조의 환경 속에서 너무도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그들에게 이렇다 할 글감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번 씩 동화를 들려주고 느낀 점을 쓰게 한다던지 아니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동네 어디서 던지 보고 듣고 체험하고 느낀 특별한 일이 있거나 또는 자랑할 만한 일이 있으면 그걸 써도 좋은데 다만 검사는 써온 사람에 한해서 발표를 희망할 때 앞에 나와서 낭독하도록 지도를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차츰 급우들이 자랑삼아 발표를 하고 박수를 받는 것을 보고는 경쟁심이 유발되어 발표하는 아이가 조금씩 늘어나더군요.

그러던 어느 월요일 시업 전, 매주처럼 잠시 틈을 내어 일기를 발표하는 시간이 되어 오늘도 대여섯 아이들이 일기 발표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삼촌이 결혼식을 하였는데 읍내 예식장이 참 멋 지고 신부가 공주님 같이 예뻤다.”
“오늘 우리 옆집 아저씨네 어미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나았는데 송아지가 참 귀엽고 신기했다.”

이런 식의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던 발표하는 아이는 용기를 내어 발표하고 급우들은 늘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다섯 번째로 경덕(가명)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내 생일이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이렇게 네 식구가 읍내에 나갔다. 자장면을 맛있게 먹고 나서 아버지가 운동화랑 크레파스를 선물로 사주셨다. 최고 기분 좋은 날이다.”

바로 이때였습니다.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던 윤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제 일기장을 들고 교단에 올라서는 게 아닌가요. 그러더니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또박또박 일기를 읽기 시작하였지요.

“오늘 우리 엄마가 서울에서 오셨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엄마 품에 안겨 훌쩍훌쩍 울었다.”

저는 놀라움을 감추고 슬그머니 윤미의 등뒤로 돌아가 윤미가 들고 있는 일기장을 건너다 보았습니다. 아 놀라운 일이였습니다. 윤미의 일기장은 글씨 한 자 적히지 않은 하얀 백지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선물을 많이도 사오셨다. 예쁜 내 원피스, 빨간구두, 동화책, 헝겊으로 만든 필통과 색연필 그리고 또..., 나는 너무 좋아 선물을 안고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였다. 그리고 정말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엄마가 이제는 서울에 가지고 않고 우리 식구가 함께 살 거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이 제일 기쁜 날이다.”

글씨가 아주 서툴러 도저히 일기를 쓸 수도 없으려니와 지금까지 일기란 걸 써 본 적이 없는 윤미의 즉흥적 일기. 그것은 일기라기 보다도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윤미의 애절한 소망이었습니다.
방과 후 조용히 부른 윤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말 일체 하지 않고 일기를 어쩌면 그렇게 잘 썼느냐고 칭찬을 해 주었더니 윤미는 눈물 맺힌 얼굴을 숙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제가 엄마 꿈을 꾼 거예요”
“네 꿈은 꼭 이루어질 거야, 그리고 윤미는 진짜로 일기를 잘 쓸 수 있을거라고 선생님은 믿는다.”

그런 윤미에게 얼마후 엄마가 정말로 돌아왔으며 며칠 있다가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갔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진 후 지금까지 소식도 없이 삼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요.

윤미야! 지금쯤 윤미는 사십대의 중년 엄마가 되어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참 자녀는 몇이나 두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너의 아들 딸들은 다른 건 몰라도 일기를 아주 잘 쓰는 착하고 똑한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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