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섬마을 학교의 5학년 찬숙이를 제가 담임했을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날 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담임선생님들이 어린이들의 학교생활 상황을 가정에 전할 때 단지 업무의 간편주의라는 측면에서 간단명료한 기술(記述)만으로 처리하는 일을 지양하고 가능한 한 최대의 관심으로 세심하고 자상하게 현재의 수준과 권장할 점 노력할 점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가정지도 방법까지도 예시해서 학부모에게 전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히 갖게 합니다.
물론 요즈음에는 예전보다 통지표의 양식이나 그 내용의 서술방식도 많이 달라져서 아동 개인의 영역별 발달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제가 찬숙이를 담임했을 당시만 해도 통지표래야 기껏 「교과발달상황」은 '수, 우, 미, 양, 가' 「특별활동상황」은 '가, 나, 다'로 성적을 적고 “읽기는 잘하나 쓰기능력이 부족함” 등 두세 줄의 의견을 적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었지요.
찬숙이는 바닷가 외딴집에서 주로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랐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형편으로 아버지는 늘 뱃일로 바다에 나가있고 어머니는 가계를 돕겠다고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찬숙이는 깡마른 체구지만 훌쩍 큰 키에 성격이 명랑 쾌활하여 친구가 많고 또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 한테도 귀여움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1학기가 끝나 방학식과 동시에 통지표를 나누어 하교 시킨 후 2-3일이 지났을 무렵 저는 방학의 여유를 즐기려고 낚시대를 메고 바닷가로 나가는 길목에서 무척 반색을 하며 인사하시는 찬숙이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런디 선상님 증말루 고마워서 워쩐대유?” “할머님 저에게 무엇이 그리 고마우신가요?” “아 글쎄 우리 찬숙이가 공부를 다 잘해서 성적이 최고라니,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 아니것남유”
저는 좀 의아하면서도 어렴풋이 뭔가 짚히는 게 있어 “원 별 말씀을... 찬숙이가 워낙 씩씩하고 머리가 좋아서 그런거지요”하고 얼버무리며 인사를 마쳤습니다.
다음날 우연히도 찬숙이가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놀러왔기에 모두를 교실로 불러 숙제도 하고 이야기하며 놀도록 하였습니다.
“얘 찬숙아! 너 통지표 가져다 아버지 잘 보여드렸니?” “우리 아버지는요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할머니께 드렸어요” “그래? 그런데 할머님은 글을 모르시잖니?” “예, 그래서요 제가 자세히 설명을 해드렸지요”
이쯤이면 벌써 짐작이 가는 일이구나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과성적은요, 가․나․다중에서 제일 잘해서 [가], 특별활동은요 다 잘해서 [다]를 맞았다구 했더니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동네방네 자랑 하시던데요”
그러면 그렇지 찬숙이 유머와 순발력은 역시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 천연덕스러운 찬숙의 말에 친구들도 모두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데,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오면서도 저는 찬숙이를 나무라기는커녕 귀엽기 까지 하니 웬일이었을까요.
그 후 제가 그 학교를 떠나온 뒤에 찬숙이는 6학년이 되면서 정말 공부도 [다] 잘하고 전교반장이 되어 인기를 [다] 휩쓸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