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22 수 맑음
항공권이랑 여행보험 가입 증명서를 받았다. 여행사에서 꼼꼼히 챙겨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우연히 학교 방송실에 들렀다가 김현정 선생님이 99년도에 인도를 한 달 가까이 여행했다며 경험담을 들려주지 않는가. 학익여고 권교남 선생님과 함께 갔다 왔다고 한다.
한국 여성이 인도에서 인기 있다는 얘기, 델리에서 기온이 0도까지 내려가 고생했다는 얘기, 릭샤꾼들이 몰려들어 경쟁을 벌이던 얘기. 과잉친절은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 등 직접 겪은 얘기를 해 주었다.
권교남 선생님의 인도 여행기를 학익여고 신문 ‘학날애’지에서 본 기억이 난다. 대화중에 김선생님은 델리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아차 싶어서 잠시 내가 귀국 비행기를 캘커타에서 타기로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캘커타에서 델리까지 가면 델리에서 귀국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욕심을 부려 지나치게 많이 볼 것이 아니라 인도의 서부에 국한하더라도 구석구석을 보자는 생각에 그냥 캘커타에서 귀국하는 것으로 하자.
2004.12.23. 목 맑음
연말 정산 서류제출 끝. 학사업무 완료. 이제 인도 여행 최종 마무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배낭을 정하고 운동화 내복 두벌, 양말 두 켤레, 모자, 카메라(디카), 칫솔, 치약, 수건, 하모니카, 손톱깎이, 볼펜, 휴지, 공책 두 권, 안내 책, 여권, 항공권, 달라, 출입국 신고서, 보험증, 전대, 선글라스, 돋보기안경 등 하나하나 배낭에 챙겨야겠다. 캘커타 인근지역을 집중적으로 여행하는 스케줄을 짜야 한다. 광범위한 지역이 오히려 불편하고 여행의 질을 떨어트릴 우려도 있을 것 같다.
2004.12.28 화 맑음
어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일어난 진도 9.0의 강진으로 인한 해일로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북동쪽이기는 하지만 캘커타가 바닷가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여행사로 문의를 해보았지만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캘커타보다 더 북쪽인 방글라데시에서도 패해가 발생했다는 보도는 망설이게도 했다. 혹 내게 닥칠 위험 때문이 아니라 여행지의 침체된 분위기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이 혹시 반감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분도 들었다. 여행 일정이 잡힌 상태에서 다소 불안하긴 하지만 그대로 다녀오기로 했다.
2005. 1.4 화 맑음
새벽 4시 30분,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송내역 까지 가서 5시에 송내역에서 다시 공항버스를 탔다. 5시 30분 공항에 도착, 6시 30분 출국수속, 8시 40분에 32번 게이트에서 탑승했다. 아내에게 잘 다녀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인사를 건넬 때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청난 해일피해로 전 세계의 구호의 물결이 일고 있는 이때 피해국의 하나인 인도를 방문하면서 나는 조용히 여행지에서의 유의사항을 마음속으로 정리해본다.
-술을 삼가자
-경제적인 여행을 하자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보편적 인류애를 확인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싱가포르 행 기내에서(2005.1.4)>
오전 9시 35분 인천공항 출발, 중간에 두 번이나 시차가 생겼다. 싱가포르와는 한 시간의 시차인데 비행기가 경유하는 어느 지점에서는 한국과 두 시간의 시차를 보이기도 했다. 비행기가 우회해서 그런가보다. 싱가포르 날씨는 어떨까. 나는 가을 복장으로 기내에 있는데 싱가포르 날씨가 궁금하다. 인천공항에서는 같이 근무했던 수필가 한상렬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다고 했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2005.1월 4일 5:20 pm)
6시간 정도 날아 오후 3시 8분 싱가포르 공항 도착. 정확히는 5시간 33분 거리다. 공항청사에서 내다보는 싱가포르의 날씨는 한여름, 나는 그대로 긴 팔을 입기로 한다. 인도에 가서 갈아입자. 환승을 하기 위해 5시간 가까이 대기하는 동안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봉함엽서를 55센트에 구입해 아내에게 간단히 안부엽서를 썼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떠나기 전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꺼림직 했기 때문이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서야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했다. 캘커타 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청사를 구경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있어서 편리했다. 공항청사 밖의 풍경은 한여름의 날씨인 듯 나무들이 온통 푸르렀다.
청사내부에는 갖가지 피부색의 사람들이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누워 자기도 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혹은 사업차 외국을 드나들 것이다. 혹은 여행 차 혹은 친지 방문차 이 공항을 이용할 것이다. 아마 그들은 국경이라는 개념도 없이 세계를 넘나들며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들이 바로 세계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세계시민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까. 이제 두 번째 해외 여행길에 오른 내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얼마나 궁색한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을까. 한국의 중년으로서, 한 교사로서 또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어쩌면 아집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관습에 얽매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시야를 넓혀 아시아를 느껴보고 세계를 느껴보자.
싱가포르까지는 복도 쪽 좌석에 앉았는데 Kolkata까지는 창문 쪽 좌석이다. 비행시간 4시간 정도, 네 시간 후면 밤이 깊어지는 Kolkata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안내 책자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해가 진 이후엔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걸 삼가고 공항내의 Traveller`s lounge에 머무르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고.
그래 그럼 traveller`s lounge에 묵고 아침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여행자의 거리라는 Sudder st.로 가자.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마음속으로 정리해보았다. 기내엔 80%이상이 인도인들이었다. 간디를 닮은 사람들도 많다. 인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서로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외국인들이 보면 한결같이 서로 닮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인도인의 3분지 1은 영어에 능통하여 그것이 인도의 경쟁력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가봐야 알겠지만 300년 이상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면 상당부분 영국의 문화가 유입되었을 것이다. 인도 현지의 실정은 어떤지 모르지만 싱가포르의 국제공항에서 만나는 인도인들은 능통한 영어로 국제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국민의 국제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의 외국어 수준을 보아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수준이 아닐까. 국제화의 문제, 그것은 바로 영어해독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내 옆에는 지금 인도인 노부부가 앉아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나도 아내와 다정하게 여행을 다닐 때를 그려보기도 하면서 지성과 감성과 개성으로 이번 여행을 시작하자고 다짐해본다.
2005.1.4.화 맑음
인도 캘커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20분쯤이다. 우리나라보다 3시간 30분이 늦다. 지금쯤 우리나라는 5시 50분쯤 되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는 변호사를 했다는 인도의 노인과 계속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며 왔다. 처음에는 서로 얘기를 않다가 내가 먼저“ Where have you been to?`(어디에 다녀오는 길입니까?)라고 말을 건 것을 시작으로 많은 얘기를 했다.
싱가포르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신상에 관한 것, 여행일정, 인도의 역사 등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한 달 일정을 자세히 짜주는 친절을 보이기도 했다. 여행일정에 대해서 그의 충고대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는 동안에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했고 나는 체크아웃 전에 노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밖은 벌써 어두워졌고 캘커타 공항은 의외로 초라했다. 여러 번 외국의 공항을 다녀봤지만 공항건물이나 시설이나 규모가 이렇게 초라한 공항은 처음 접해본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시골의 기차 대합실 같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밤이어서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도 제한되어 있고 조명이 희미해서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날 거처온 인천공항이나 싱가포르 공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시설이 그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대로 그 시간에 시내로 나가 호텔을 잡기란 어렵다는 판단 아래 곧 바로 여행자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 우선 공항 환전소에서 100달러를 루피로 바꿨다. 1루피가 우리 돈 26원이다. 100달러는 4200루피 정도 되었다. (이때의 환전 영수증은 나중에 기차표를 예약할 때마다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잘 보관해야 한다.)
2층에 있는 lounge로 올라가니 1층에 가서 booking(예약)을 하고 오란다. 1층 접수처에 가서 숙박비로 450루피를 지불하고서야 열쇠를 얻어 입실 할 수 있었다. 우리 돈 12,000원 정도이니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30만원이면 한 달 생활이 충분하다는 정보를 들어온 터라 450루피를 지불하고는 과연 나의 예산 40만원으로 한 달의 경비가 가능할 지 새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여행자 숙소를 찾아가니 우리나라의 시골 여인숙 수준에 불과하다. 비누도 수건도 없이 낡은 세면대 하나가 고작이었다. 기후는 춥지도 덥지도 않다는 느낌으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쾌적한 상태였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때는 담요를 두 겹으로 덮어야 할 정도로 꽤 서늘함을 느꼈다. 방에는 두개의 침대가 놓여 있고 낡은 텔레비전이 한 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침대 위에는 베개와 담요가 한 장씩 놓여있었다.
잠깐 외출하고 돌아오니 미국에서 일하다가 휴가를 얻어 귀국한다는 한 인도인이 와 있었다. 그는 영어에 능숙했다. 우리는 의례적인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는 문제가 많은 경비를 축낼 것 같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지하철 DumDum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여행자거리인 Sudder St.까지 가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