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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인도여행10-임종의 집 봉사활동 첫째날


2005.1.13 목 맑음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럴까, 오늘은 햇빛이 제일 밝게 빛나는 날이다. 11시쯤 외출하여 길을 알아놓을 겸 Mother House까지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 두번 타야 하는 등 오히려 번거롭다. 걸어서 가는 것이 더 편하다. 내일부터 새벽마다 가야되는데 걸어다니기로 했다. Mother House에서 깔리가트 임종의 집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내일 아침 5시 30분까지 Mother Hose에 가 아침 미사에 참석하고 다시 임종의 집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신청해 놓은 상태. 모든 것이 처음이라 조금 걱정도 되었다. 봉사활동을 잘 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다시 Sudder St.에 와서 점심식사를 했다. 유명식당이 아니더라도 여행자거리 골목골목에는 간이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값도 저렴하여 일반 식당의 3분지 2수준인데 양도 맛도 손색이 없다. 경비를 아끼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Mixed noodle Soup은 짬뽕보다 더 잔맛이 있는 것 같았다. Chicken Soup도 맛이 있었다. 돼지고기 음식도 한번 맛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이 났던 여학생이 궁금했다. 몸이 나아 병원에서 나왔을까. 빨리 나아서 나머지 여행 일정을 잘 소화해야 할텐데. 학생들이 착해보이고 모범학생들 같았다.

이제 나의 관심사는 내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봉사활동. 다섯 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자명종 시계도 준비했으니 걱정 없겠지. 그 여학생들은 내일 봉사활동에 갈 수 있을까. 저녁 6시쯤 들렀더니 둘다 외출중. 다행이다. 몸은 다시 회복되었나보다.

2005. 1. 14. 금 맑음

어제 밤에는 잠을 자지 못했다. 8시에 잠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 뒤치락거리다가 시간을 보니 11시 30분쯤 되었다.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Oliver Twist를 두 시까지 읽다가 잠자리에 다시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침에 늦잠자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서 그런지 어제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서 그런지 모르겠다. 얼마쯤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든 사이 꿈을 꾸었다. 막내딸 승우가 어떤 시합에서 두 번을 우승하고 세 번째의 결과를 기다리는 꿈을 꾸다가 따르릉따르릉 자명종 울리는 소리가 울려 잠을 깼다.

4시 20분 쯤 되었다. 자명시계가 20분쯤 빨리 울린 것 같았다. 40분에 울리도록 맞춰놓았었다.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났는데도 시간은 5시도 안되었다. Oliver Twist를 조금 더 읽다가 5시 10분 쯤 Mother House를 향해 출발했다. 걸어가기로 했다. Kolkata의 새벽거리가 상쾌하다. 청소하는 사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식당이 벌써부터 분주하다. 여기저기 쭈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남자들도 발뒤굼치를 들고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본다.

사람들에게 Mother House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Mother House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Continental G.H에서 Algaus Hotel 쪽으로 걸어가다가 첫번째 만나는 왼쪽 길로 계속 걸어가면 바로 Mother House였다. 길을 확실히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가는 길에 담요 한 장을 뒤집어 쓰고 여기저기 길가에 잠자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 바깥공기가 차가운데 말이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Mother House에서 보살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착하니 나보다 조금 앞서 초로의 서양할머니와 젊은 동양인 남자가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5시 30분 쯤 되었다. 미사는 6시에 시작된다. 나는 낯설기만 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서성이는데 수녀님 한분이 뭐라고 묻기에 I came for Mass. (미사보러 왔는데요)했더니 2층으로 올라가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갔더니 성당 입구에서 왼쪽에 100여명의 수녀님들이 벌써 열을 맞춰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20여명의 volunteers(봉사자)들이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분 지나자 자원봉사자들이 100여명으로 늘었다. 그 중에 50여명 정도는 일제히 하얀 유니폼을 입은 호주의 봉사단이었다. 6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5명의 사제단이 입장하여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도 영성체를 모셨다. 미사가 끝나자 빵 한 쪽, 짜이 한잔, 바나나 하나씩이 아침 식사로 제공되었다.

그것을 먹고나서 깔리가트로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등록할 때 안내하던 한국 분이 있어 다시 물어봤더니 한국사람이 많이 있으니 같이 가라고 한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동양인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저쪽의 한국 남자분이 그곳으로 갈 것이니 같이 가라고 한다. 그분이 인솔자가 되어 호주사람들 포함 20여명은 길 건너편에서 204번 버스르 타고 바로 깔리가트 임종의 집으로 갔다. 교통편을 알고 나니 이제 혼자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인솔하던 분에게 봉사활동 한 지 오래 되었느냐고 물으니 가톨릭대학교 학생인데 가톨릭 대학교 학생들이 계속해서 릴레이 식으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나중에 간식시간에 그분이 신학생인 걸 알았다. 등록 때 안내를 하시던 분도 신학생이라고 했다. 몇 분 더 있는 것 같았다.

깔리가트 임종의 집에 도착하니 `Mother teresa`s Home for the Sick and Dying Destitutes`(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마더 테레사의 집)이라는 영문 글귀가 입구 위쪽에 쓰여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앞치마 같은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사물함에 짐을 두고 곧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봉사는 타올 담요 빨기, 환자복 베갯닛 빨기, 목욕시키기, 소변 받아내기, 식사나르기, 식사 시중들기, 약 타다 먹이기, 목욕 시키기, 설거지 하기, 빨래 널기. 마른 빨래 걷기, 목욕실에 더운물 나르기, 환자복을 일일이 점검하여 오물 묻은 빨래 가려내기, 욕창및 각종 상처 약바르고 거즈 붙이기 등 눈코 뜰 새가 없다.

약 처방하기와 욕창및 상처소독은 따로 맡아서 하는 분들이 있었다. 남자환자실엔 150여 분이 있었는데 임종의 집이라 해서 상태가 심한 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몇몇 욕창과 상처가 심한 분이 있을 뿐 당장 임종을 앞둔 것 같은 의식불명환자는없었다. 나는 약을 타다 먹이고, 밥을 나르고, 목욕을 시키고,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더운 물을 받아다 목욕실로 옮기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손짓하는 환자에게 가면 물을 달라, 옷을 갈아 입혀 달라, 오줌통을 갖다달라던지 짜이를 더 달라는 등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화장실로 데려가 달라고도 하고 목욕을 시켜달라고도 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11시쯤 간식을 먹고 다시 한 시간 쯤 더 활동을 하다보면 오전 봉사가 끝난다.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사물을 챙겨 임종의 집을 나왔다. 첫날의 일과가 끝난 것이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옷도 인도 사람처럼 차려 입고 세탁을 도맡아 하다시피 열심히 일을 했다. 간식시간에 대학생이냐고 하니까. 회사에 다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4개월째 인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머리를 짧게 깎아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33살이라고 했다. 작년에도 6개월 인도 여행을 했다며 남인도가 북인도보다 좋다며 경험담을 풀어놓기도 했다. 이제 네팔을 거쳐서 귀국할 거라고 한다. 남인도가 음식도 맛있고 도시간 이동도 단거리고 비용도 북인도의 절반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해변가엔 겨울철에도 피서 인파가 있겠다는 나의 말에 “ 이번 해일로 쑥대밭이 됐지요 뭐.”해서 머쓱해지기도 했다. 서양인들도 정말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임종의 집 벽에는 여러 곳에 수녀님의 사진과 함께 어록이 붙어있었다. 한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Let Every Action of Mine Be Something Beautiful for God
Mother 1948
(내 모든 행동이 하느님을 위해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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