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필리핀 ‘바기오’로 떠나오면서 제일 마음에 걸린 것은 고국 누님 집에 두고 온 어머니였다. 그래서 일까? 이곳에 도착하여 지금까지 어머니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함께 갈 것을 종용하였으나 어머니는 고국이 좋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일 년 뒤에 꼭 돌아오겠다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영원히 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떠나는 자식인 내 손을 놓지 않으시며 계속해서 눈시울만 붉히셨다. 어머니의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 또한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한편으로 자식으로서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신다.
“애비야, 언제 올 거여? 안 올거여?”
자식을 보고 싶어하는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접할 때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고희(古稀)가 훨씬 넘은 어머니에게는 하루가 삼 년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6시(한국시간 7시).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한국에서 누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순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를 들자 잠깐의 휴지가 있었다. 그 잠깐의 휴지가 내 마음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여보세요”를 계속해서 외쳤다. 그러자 힘없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행이었다.
“애비냐? 여기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 그곳은 괜찮냐? 눈길에 조심하거라. 알겠재.”
사실은 그랬다. 밤사이에 영동지방에 눈이 많이 와 내가 있는 이곳에도 눈이 많이 왔으리라 생각하시고 누님을 졸라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 필리핀은 눈이 오지 않는 나라라고 누님이 설명해도 어머니는 못 믿겠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극구 부인하며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머니는 한국의 날씨와 이곳에서의 날씨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상 기후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고국을 떠나 생활을 하는 자식 걱정을 먼저 하셨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만은 나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고 난 뒤,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자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이곳의 자연환경과 가족사진을 찍어 어머니에게 보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