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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직이 그렇게 인기있는 직종인가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 오고 있지만 원래 나의 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청소년 시절 여러 가지 꿈을 품어보며 장래를 그려보곤 했다.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전기를 읽으며 꿈과 연결시켜보곤 했다. 그 중에 페스탈로치도 하나였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길이나 마을의 공터를 다니며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휴지나 깨진 유리 등을 줍는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각인되어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내가 장차 교사가 되겠다는 꿈은 부차적이었다. 교사의 꿈을 갖질 않았다는 게 정확하다.

회사에 들어가 다니다가 어떤 계기가 있어서 교직에 들어왔던 것이다. 7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는 교직이 그다지 인기직종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부흥기이기도 했던 때라 이력서만 넣으면 여러 군데서 면접을 보러오라, 시험을 치러 오라는 답장이 쇄도했던 시기라 취직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히 남자들은 회사 진출을 선호하고 교직을 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교사를 선호했던 사립학교에서는 사람을 대학에 보내 남자교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학과장실에서 수도권 어디어디에서 남자교사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으니 지원하라는 전갈이 와도 우리는 대부분 시큰둥하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서울이라면 몰라도 하는 꼼수도 있었지만 교직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나도 교사를 지원하지 않고 모 제약회사에 입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회사라고 해서 다 적성에 맞고 장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내가 배치된 곳은 한 지방의 지사였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전공인 영어를 활용할 기회는 전혀 없는 직종이었던 것이다. 영업사원이다 보니 전공지식이 업무에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 구미를 잘 맞추고 없는 말 있는 말 너스레를 떨며 장사 수완을 보여야 실적을 올릴 수 있고 회사로 부터도 인정을 받는 직종이었다. 결국 회의가 생겨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중에 교직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관심이 있었지만 만학으로 인해서 연령제한에 걸렸던 것이다. 교직에 들어와서 첫 월급을 받아보니 13만 원 정도였다. 회사에선 19만 6천원을 받았었다. 교사 월급이 회사 월급의 삼분에 이 수준에 불과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회사에선 출장을 다니는 업무라 교통비와 숙박비, 식대가 따로 책정돼 나오고 실적을 초과 달성하면 상당한 인센티브가 추가로 주어졌다.

그러나 왜 그렇게 마음은 편했을까? 월급은 훨씬 적었지만 전공한 지식을 활용하는데서 오는 자신감은 충만했던 것이다. 어렴풋이 평생 직업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 그 후 나는 사립학교에 오래 근무하다가 다시 공립학교로 옮겨 29년째 교직에 몸담고 있다. 물론 한 번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때는 없었다. 그렇다고 불경기에 시달리거나 부도가 나 고생한 적은 없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적은 대로 절약하며 이제껏 지내온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승승장구하며 승진하는 친구들 앞에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친구들 앞에 오금을 펴지 못하고 지내왔는데 몇 해 전부터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은행 지점장을 하던 친구도 명예퇴직을 하고 대기업 부장을 하던 친구들도 하나씩 명퇴를 하더니만 어떤 친구는 부동산 중개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어떤 친구는 빌딩 보일러 관리원으로 새로 일자리를 얻어 지내고 있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 은근히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다. 물론 친구들 월수입이 전엔 나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퇴직 후의 대책은 미리 다 세워놓았을 것이다. 또 상당액의 명퇴수당을 지급받은 친구도 많을 것이다. 그러긴 해도 오십 전후에 몸담았던 직장을 내놓았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오히려 전보다 더 바쁘게 일하며 월수입도 더 많아 희색이 만면한 친구도 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친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예전의 수준엔 어림도 없다.

교직에 대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아마 IMF사태 이후부터일 것이다.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의 인기가 치솟아 상한가를 연일 갱신하지 않았던가. 그래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날로 높아져 요새는 사윗감이나 며느릿감으로 교사만 한 직종이 어디 있는가. 각종 여론 조사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사범대학에 들어가 교육자의 꿈을 불태우던 수재들이 교직 문전에서 좌절을 겪기도 하는 실정이다.

해마다 십오 대 일, 이십 대 일을 넘는 경쟁 때문에 학창시절 이름을 떨치던 수재들이 고전하는 모습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세태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지켜보는 선배교사로서도 안타깝다. Y대를 나와 S대에서 석사학위를 하고서야 올해 처음 도전했다는 딸도 낙방했다며 친구는 허탈한 심정을 전화로 알려왔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입학 배치고사에서 일등을 하고 외국어고등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한 재원이 교직의 문턱에서 좌절된 것이다.

교직이 과연 그렇게 인기 있는 직종인가. 나는 가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모든 직종이 다 그렇겠지만 교직도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적성을 고려치 않고 단지 안정성 때문에, 세속적 평판 때문에 많은 수재들이 너도나도 교직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반영하는 병리현상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사가 하는 일은 대동소이한데 요 근래 와서 상한가를 갱신하며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의 불안이 증폭됐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또 타 직종의 근무여건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물론 타 직종 경쟁률도 상당히 높다는 걸 감안해도 최상위권 학생들이 사범대를 지원하는 작금에 그 수재들이 벌이는 경쟁이 세태를 반영하는 듯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물론 우수한 교사 확보차원에서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예전의 경우와 비교하면 기현상으로 비치기도 하여 안타까운 것이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직에 입문했지만 새내기 교사의 고충은 또 산 넘어 산인 것이다. 국민 절대 다수, 아니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교육은 안팎으로 항상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요 근래 첨예하게 마찰을 빚고 있는 교원평가제 논란만 해도 그렇다. 이를 둘러싸고 학부모 단체와 교사 단체, 교육부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교직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 하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것 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다. 자잘한 일을 잡부처럼 떠맡아 처리해야 할 경우도 있고 가장 숭고한 사명을 제왕처럼 수행해야할 경우도 있다. 작금의 교직 선호 추세도 경계해야 할 일면도 있다고 본다. 교직의 사명과 업무는 도외시 한 체 교직이 단지 안정되고 보수가 좋으며 정년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인식만 팽배하다보면 그것은 문제다.

내막은 모르고 막연한 추측성 선망이라면 국민들이 교직을 오해할 소지도 있다.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고 철밥통을 차고 앉아 배부른 소리만 하고 있다는 반감의 소지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내막을 모르면 엉뚱한 유언비가 발 없이 순식간에 천리를 달려가기도 하지 않겠는가. 한때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이라며 인구 억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출산장려 하기 위해서 갖가지 묘책이 속출하고 있다.

교직도 언제 또 기피 직종으로 추락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교사 수급 정책을 신중하게 세워 혼란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단지 안정성에 안주하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좀 더 진취적이고 원대한 목표를 세워 미래를 조망해야 한다. 우수한 학생이 -물론 교과 성적이 수수한 학생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직을 선택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눈앞의 안정성만 보고 용이하게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성취의 길을 찾자는 것이다.

교직의 특성을 국민들이 바로 인식하고 학부모와 교사와 정부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걸핏하면 피켓을 들고 너도나도 거리로 나선다고 해답이 나올 것인가. 이 첨단 정보화 시대에 힘의 논리라는 게 꼭 그런 것이어야 하는가. 이 모든 현상이 어쩌면 현대 문명과 맞물려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명의 충돌, 욕구의 충돌일 수도 있다. 이런 대 격돌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개편이 이루어 질 것인가. 날로 발전할 첨단 정보화 사회에서 교육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나로서는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 국민 모두의 지혜를 모아 교육의 본질부터 논의의 대상으로 하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교육계 내부에서부터 정화의 불길이 일어나 쇄신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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