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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호루라기 부는 행복




 하루의 처음을 나는 학교 교문 앞에서 시작한다. 아침 8시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파란색과 빨간 색이 어우러진 RCY 지도교사 복장으로 연신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있다. 손짓으로 수신호를 하면서 복잡한도로에서 학생들의 등하굣길의 안전 지킴이로서 교통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학교 앞에서 10여 회 정도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 우리 학교 학생과 교직원이 교통사고로 인명 및 재산상의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무단 횡단에 따른 문제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학교 앞에 신호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생 치안에 분주한 경찰관이 매일 상주해서 대신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또 학부모들께 생업을 제쳐두고 학교에 나와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위한 교통지도 활동에 나와주십사하고 부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결국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오전과 오후 등하굣길에 도로 한 복판에 서서 교통지도를 하는 것도 낯설었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교통 순경도 아닌데 무얼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하느냐는 식이었다.  그저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상황만을 지켜만 볼뿐  달리 뾰족한 대책이나 방안이 없었다.  

 결국 봉사단체인 RCY(청소년 적십자)를 지도하는 교사로 내가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우선 1,400 여 명이 등하교하는 학교 횡단보도 앞에 교통 신호등이 없는 현실을 관계 요청에 알리고 더불어 경찰서와 시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더불어 학생복지부에서는 학생들의 안전한 등하교 지도를 위하여 책임지도 교사를 임명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교통 신호등이 설치되게 되었고 더불어 학생들의 교통법규 지키는 일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물론 인근의 다른 학교보다도 훨씬 뒤늦게 신호등이 늦게 설치되었다는 사실에 자못 씁쓸했다. 하지만 그것만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호루라기 선생님'으로 불린다. 도로 한 복판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수신호로 손짓을 하고 있다보면, 우리 학교 학생들도 만나고 졸업생 동문도 만나는가 하면, 학부모도 만나 정답게 인사를 하곤한다. 아울러 다른 선생님과도 물론이고 차량을 운행하는 버스 기사님과도 거수경례 혹은 손을 흔들면서 아침 인사를 정겹게 나누곤 한다.

 물론 좁은 일차선 도로에서 굉음을 내며 달리는 도로의 무법자 덤프트럭을 만나거나 일단 정지의 신호를 무시하고 저돌적으로 달리는 승용차, 학생들이 버스에서 하차하는 상황에서도 조금 일찍 가려고 정지한 버스를 마구 추월하는 무법 자동차 등을 만난다. 사실 위험천만한 일을 한 두 번 겪는 것은 아니다. 정말 온 몸에 땀이 흥건히 날 만큼 긴장의  연속이다. 나의 손짓 하나로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또한 하루 2시간 정도 교통 정리를 하다보면 매연 차량으로 탓인지 기관지가 컬컬하고 콧속이 시커멓게 된다. 더운 날은 내리쬐는 햇볕을 빨간 모자로 가리고 매섭게 추운 날은 두터운 잠바를 입고 교통을 정리를 했다.  

사실, 그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RCY 학생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주었고 다른 선생님들도 호응해 주셨다. 내겐 큰 힘이었다. 함께 횡단보도에서 안전 깃발을 들어 주는 RCY단원들이 있었기에 아침 저녁은 행복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은, 안전을 고려해서 도로 중앙에서 호루라기를 불 수 없었다.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눈 오는 날이면 미끄럼이 심한 도로를 빗자루로 눈을 쓸어 냈고 모래를 뿌려 차량의 안전운행을 돕기도 했다. 이제는 학교 앞을 지나는 모든 운전기사 아저씨들의 표정과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정답고 즐거운 아침 교통지도 활동이 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엔 마음 고생이 참 많았다. ‘왜 당신이 나서서 그 일을 하고 있느냐’, ‘당신이 교사지 교통순경이냐’ ,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 승진하려는 것이 아니냐’  ‘승진 가산점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냐’는 등 조소섞인 이야기을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들을 무시하고 RCY 교통봉사대를 조직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지도했다.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언젠가 내 본심을 알아주는 이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특별히 나의 이런 어려움을 처음으로 도와 준 학생이 있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김광복이란 학생이다. 언제나 나 홀로 지키고 있던 정문 앞에 어느날 듬직한 한 학생이 빨간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내 반대편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열심히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그가 참으로 고마웠다. 아침 일찍, 그것도 아침 8시부터 학교 정문에 나와서 교통지도를 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향하는 하굣길에 오후 늦게까지 남아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그 또래의 학생들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운 여름날이면, 시원한 음료를 사들고 "선생님 수고하세요"하면서 도로 한 켠에 두고 가는 학생도 있다. 추운 겨울 날이면, 교통지도를 마치고 교실로 향하고 있노라면 따뜻한 음료를 사들고 달려오는 학생도 만나곤 했다. 그때마다 왜 그렇게도 콧등이 시큰해 오는지,  눈물이 핑 돌곤 한다.

지금은 RCY 교통봉사대가 조직되어 3개조로 나누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교통지도 봉사활동하고 있다. 이제 우리 학교 정문 앞은 더 이상 교통사고 발생 지역이 아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룬 탓일까? 안전한 등하굣길이 되고 있다. 아울러 종종 반갑고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곤 했다. 단원 중에서 자원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봉사상 수상소식도 간간히 들려왔고 선생님이 가르쳐준 봉사활동 덕분에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얘기도 자주 들려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대부분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봉사활동이 계기가 되고 발판이 되어서 대학에서도 혹은 직장에서 연이어 봉사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곤 했다.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던가. 

  봉사한 보람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고 보람된 일이다. 지금도 사회 단체나 대학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러 졸업생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한결같이 밝은 모습으로 봉사하는 보람과 기쁨을 나누곤 한다. 사실 이처럼 행복한 가르침은 그리 많지 않다.
 
 어제였다. 나는 출퇴근길에 버스를 자주 애용한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차비는 1,100원이다. 버스 카드로 차비를 내는데 1,000원으로 표시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기사님께 여쭈어 보았다. 기사님은 껄껄껄 환하게 웃으시더니
“제가 선생님께 베풀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인 걸요? 선생님께는 차비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 학생들이 있으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구여”
“어이구~그럴 수가 있나요? 기사님의  그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100원의 사랑이지만, 내게 감동으로 다가온 행복이었다. 그 따뜻한 가슴을 잊을 수가 있다. 그로 인해 온종일 행복했다. 그 작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자신이 가지고 능력과 재능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그 행복만큼 보람도 큰 것이다. 어느 시인은 "사과하나 둘로 쪼개 나누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오늘도 나는 그 소박한 행복을 찾아 교문 앞에 빨간 모자 쓰고 힘차게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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