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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도 교포교사입니다"


며칠 전 존경하는 선생님이 내게 충고를 하셨습니다.

"장 선생님은 아직 10년 이상 남았으니 섬에 들어가셔서 점수를 따서 승진을 하시지 그래요? 충분히 잘 하실 텐데요."

“아닙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내 힘으로 도전한 전문직 시험에 떨어진 걸 보니 제가 갈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아이들이 덜 예뻐 보이거나 교실에 들어가는 게 행복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물러설 생각입니다. 아직도 저는 승진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뜻이 같은 선생님들과 작은 학교를 꾸미는 게 소원입니다.”

그 분은 세칭, '교포교사'이십니다. 강직한 성품에 원칙에 충실함은 물론 너무 반듯하셔서 융통성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하십니다. 딸보다 더 어린 신규 선생님들에게도 깍듯이 존칭을 쓰시고 수업이나 맡은 업무도 깔끔하게 잘 하시고 매사에 봉사적인 태도가 인품으로 다듬어져서 교사의 잣대로서 손색이 없으십니다. 어쩌면 27년 동안 만났던 모든 선생님 중에서 가장 교육자다운 성품을 지닌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듯언듯 보이는 교직에 대한 회한을 읽을 때마다 전해져 오는 서글픔을 감지하곤 합니다. 오랜 교직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차분하고 조용한 선비 같은 인품이 주는 안정감보다 눈에 보이게 숱이 작은 머릿결은 무명교사로 살아온 아름다운 훈장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든 교사로 홀대를 받거나 뒷전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하는 교단의 현실은 나를 한숨짓게 하는 근원입니다.

경쟁과 속도의 논리에 밀려 인격이나 성품, 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정성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겉치레 인사로 평가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험담하고 매도하는 모습은 세간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교직 사회의 숨겨진 단면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이제야 세상사는 이치를 터득하는 모양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승진의 대열에서 비껴선 선생님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교단에서 더욱 차갑지 않은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 역시 초임 시절부터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모든 소망을 걸었기에 승진 자체에 뜻을 두지 않고 20여 년을 지냈습니다. 오죽하면 승진 점수에 절대적이라는 1급 정교사 연수까지 거절하고(사실은 남매를 기르느라 방학이 너무 소중했던 시기였음) 4년 동안 공부하여 얻은 학사 학위로 1급 정교사 자격증을 획득하면서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어떤 계기로 후배 선생님에게 뒷통수를 맞아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무명교사로 살겠노라는 소신을 접고 지난 3년 동안 방학 때마다 전문직(장학사 시험) 도전으로 그 설움과 울분을 달랬습니다. 내가 걸어온 여정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승진의 기회가 없기에 그러나 나의 도전 의지가 순수하지 못했던지, 내 실력이 부족해서였던지 나는 삼진 아웃과 나이 제한에 걸려 이제는 도전해 볼 기회조차 없습니다.

교실에 들어가면 아직도 나는 1학년 20명의 작은 천사들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가르치는 즐거움과 앎의 눈을 떠가는 귀여운 아이들과 나누는 사랑의 언어에 취하여 살아갑니다. 50이 넘은 나에게 다가와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보아는 나 보고 자기 집에 와서 이야기하며 놀자고 합니다. 집에 가서도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하니 이렇게 행복한 고백을 듣는 설렘을 어디다 비길까요?

‘자기 생일에 초대하고 싶으니 꼭 오시라.’며 미주알고주알 편지를 써서 내밀며 행복한 웃음을 날리는 민지, 예쁜 공주 그림을 그려 놓고 그게 선생님이라며 내 이름까지 써 주는 은지를 보고 있으면 나는 다시 ‘젊어지는 샘물’을 마신 듯 아이들처럼 함박웃음을 날리곤 합니다.

나는 1학년 담임이지만 주당 25시간의 수업과 고학년을 위한 계발 활동 지도, 주당 3시간의 방과후학교 지도, 교육혁신 업무와 도서, 홍보 업무 등으로 근무 시간 안에 우리 반 아이들 보충지도 시간도 부족합니다. 아침 8시(사제독서 시간)부터 오후 5시까지 차 마시는 시간을 내기도 바쁠 정도입니다. 더구나 1학년 아이들이라 점심 시간마저 1시간씩 꼬박 식사 지도를 해야 하니 점심마저 편히 먹지 못합니다. 덕분에 20명 모두 날마다 책도 잘 읽고 점심밥도 다 잘 억지요.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께서 내게 진정으로 충고하시며 자신처럼 평교사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오만한 결정이었는지, 교단에서 받는 상처와 아픔을 이기기에는 참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잠을 못 이루는 시간도 많다는 토로를 하실 때, 나는 미어지는 가슴을 추스르기 힘들었습니다. 한 가족을 책임진 가장이니 섣불리 퇴직할 수도 없다는 말씀에는 인생의 비애마저 담겨져 있었습니다. 코흘리개 아이들과 살며 반 평생을 살아온 선배 선생님의 회한이 그분이 교직에서 얻은 보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사회가 지혜와 철학이 깃든 인생의 선배를, 소중한 경험들을 인정해 주는 아름다운 대물림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기를 빌어봅니다. 무한 경쟁과 속도에 밀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큰 나무를 지탱하게 하는 뿌리를 함부로 대하고 잘라내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배 선생님들의 지혜와 경륜이 후배 선생님들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 주는 도우미 역할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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