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6 (토)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제언·칼럼

영어 조기교육 확대, 약이 아니라 독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 부모들의 자녀의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제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한국인의 과도한 영어 열풍과 남한테는 질 수 없다는 치열한 경쟁심리가 앞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영어’와 ‘유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보장하는 공식처럼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실력이나 유학 그 자체가 글로벌 인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앤 클래퍼 한국외국인학교(KIS) 총 교장, 2007.07.11자  J일보 '독자칼럼' ,「영어가 ‘글로벌 인재’ 보장 못한다」의 일부) 

바야흐로 지금 우리나라는 영어 열풍으로 온 국민이 영문도 제대로 모르는 채 ‘영어’에 주눅이 들어 있다. 지난 달 11일에는 교육부가 초등 3학년부터 정규과목으로 편성한 영어교육을 1, 2학년까지 앞당겨 ‘확대’ 운영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초등학교 저학년 및 유치원 학부모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번 결정은 오랜 찬반논쟁 끝에 정책적으로 시행된 영어 조기교육이 당초의 우려대로 현재 초등 3학년부터의 교육은 사교육과 조기유학만 부추기는 등 사회적, 교육적 부작용이 팽배해 있는 와중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아마도 교육정책을 입안 추진하는 교육부 관료들은 다음의 몇 가지 판단 오류가 있는 듯 하다.

첫째, 우리나라가 초등 1학년부터 영어를 배워야 할 만큼 절박해졌다고 판단했거나 수학과 같은 과목처럼 학교에서 단순히 일찍 가르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초등 1학년은 아직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시기여서 어려운 공부보다는 정서와 흥미 위주로 학습하여 적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더욱이 영어는 언어이고, 언어는 공부해서 되기보다는 말과 생활을 통해서 천천히 습득되는 과목이다. 인간의 두뇌가 가지고 있는 언어처리능력은 상호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국어를 비롯한 언어 구사능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퍼붓고 강요해도 그 기량이 향상되지 않거나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초등 1,2학년 때는 충실한 우리 글 교육을 통한 어휘력과 종합적인 언어 감각을 익힌 뒤 3학년부터 외국어 교육을 도입해도 결코 늦지 않다. 한글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어도 결코 잘 할 수 없다.

둘째, 학교에서의 영어 조기교육이 ‘교육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조기교육 학령을 앞당기면 사교육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농어촌이나 도시 빈곤층 학생들의 기회 불균형으로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벌써부터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경우, 초등 저학년은 물론 미취학 어린이들에게 조차 고액의 영어 과외를 시키고, 하물며 태교를 영어로 하는 고액의 프로그램도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영어 조기교육 학령을 낮추는 만큼 사교육과 조기유학만 조장하고 앞당기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셋째, 조기유학이 증가하는 이유가 혹시 학교에서 영어공부를 일찍 시키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다. 어차피 학부모들은 영어든 수학이든 자식들이 질 좋은 공교육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 자식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은 어쩌면 대학 입시를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학교 현장의 영어 교사들마저도 학교의 영어교육이 듣고 말하기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를 ‘입시위주의 교육’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10년 동안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도 외국인만 만나면 당황하며 도망가기 바쁜 것은 우리의 영어교육이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대학입시나 취업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 조기교육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보다는 대학입시나 기업의 채용 시 무분별한 영어 과잉 의식을 전환하고, 현재의 학교 영어학습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초등 3학년 이상의 영어수업 시수를 늘리거나 학생들 수준에 맞는 적절한 교재개발 등 질적인 영어학습 여건 개선에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중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배치하거나 영어마을 등 영어생활 체험시설을 확대 운영하는 것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도 현행 초등 3학년 영어교육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인데 오히려 더 앞당겨 확대 시행하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공교육 내의 영어교육을 더욱더 부실하게 만들어 불신의 벽을 키울 것이며, 유치원과 유아교육에까지 영어 사교육 열풍만 조장함으로써 어린이를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크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한 채, 앞장서서 영어만능주의를 조장하고 사교육과 조기유학을 부채질하는 교육당국은 우리 교육현장의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