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광화문에 위치한 서점에 연구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적이 있다. 퇴근하는 무렵이라 차내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의 피곤함으로 여기저기에서 휴면을 취하고 있거나, 손에 든 손전화를 바라보면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적막했다. 더욱이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얼마전만해도 신문을 바라보거나 월간지를 읽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곤했는데 이젠 그 모습은 사라지고 나이드신 어른이나 젊은이나 한결같이 손전화 작동에 바쁜 모습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리도 상전벽해처럼 변해버린 것일까?
대학시절 옆구리에 시집 한 권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멋이었다. 시대를 읽는 소설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논하기도 하고 열변을 토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문학서적을 탐독하던 대학 캠퍼스의 지성인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지난 시절 지하철에는 시집이나 소설책을 펼쳐 보면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학생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하다못해 참고서라도 펼쳐서 공부하던 모습이 꽤나 아름다웠다. 그땐 문학을 꿈꾸는 소년 소녀들이 꽤나 많았었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다보니 세상이 변한 탓일까?
얼마 전 한 기업체에서 국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도서구입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얼마인가를 설문조사한 적이 있다. 직장인 1,066명을 대상으로 "책값과 술값"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직장인들이 한 달 도서구입비로 평균 4만2,000원을 지출하고, 술 값으로는 19만2,000원을 지출해 도서구입비용이 술 값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면 발표였다. 아울러 직장인들은 한 달에 평균적으로 2~3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술자리를 갖는 횟수는 6.1회로 독서량의 2.7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문을 닫는 출판사가 늘어나고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바뀌는 서점이 늘어 가고 있다. 불경기의 탓도 있겠지만,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영상매체에 시선을 빼앗기다보니 도서구입비 지출이 적어진 탓도 있다. 문화공연 및 운동경기 관람비 혹은 영화를 보는 비용 역시 도서 구입비용에 비해 6배나 더 많다.
물론 학교교육에서 독서교육 부재의 탓도 없지 않아 있다. 독서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책을 읽는 독서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학력신장에만 힘을 쏟을 뿐 제대로 독서토론을 나나누는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다행히 입시에 논술이 강조되면서 논술교육이 관심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제대로 된 독서교육, 논술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 논술교육은 독서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요즘 논술이 강조되면서 나타난 현상을 바라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담긴 글을 쓰기보다는 인터넷에서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쓰거나, 암기하여 쓰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논술을 지도하다보면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담긴 글은 가물에 콩 나듯이 찾기 힘들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으로 기가 막인 일이다.
얼마전에 수필집을 낸 적이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친지나 어른께 보살펴 주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서명하여 이웃 친지와 동료교사들에게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방학 중에 학교 교무실에 가보았더니 책의 서문도 읽지 않은 채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채 고스란히 놓여진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민망하고 안타까웠다. 아니 가슴이 아팠다고 해야 옳은 말일게다. 물론 책 출간을 축하하면서 격려하신 분도 있고, 바쁜 중에도 좋은 글을 썼다면서 칭찬해 주신 분도 많았다.
흔히 독서라고 하면 고전이나 명작 등의 책을 읽는 것만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분명 잘못이다. 고전이나 명작을 읽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끈기가 없다면 그 책을 읽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기에 내가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을 먼저 읽는 것이 바람직한 독서태도가 아닐까?
책을 읽는 것보다 글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최상의 독서 방법이다. 제법 부피가 나가는 두꺼운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의미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장편의 글을 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문에 짧은 글을 읽는 것이야말로 여유를 즐기며 쉽게 삶의 감동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는 짧은 글을 읽는 재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까이는 신문부터 읽는 습관을 길러보자. 그러다가 점점 더 독서양을 늘리다보면 독서의 시간도 늘어나게 되고 많은 분량의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뇌구조의 권위자인 일본의 도호쿠대 가와시마 류타 교수는 얼마전 그가 출간한 <뇌를 단련하는 신문 읽는 법>에서 신문을 잘 읽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말한다. 신문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기사들을 싣고 있어서 흥미가 있을뿐더러 수치와 도표 그림등이 다양해 두뇌 훈련에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장수의 노인이 기자 인터뷰에서 "뇌를 녹슬지 않게 하려면 신문을 읽는 것이 최고"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요즘 신문을 읽는 독자가 줄어들고 있다하니 문화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세계문학사상 명작인 '파우스트'를 80세가 지나서 완성했다. 미술의 대가인 피카소 역시 92세까지 살면서 말년에 그의 예술혼이 더욱 빛났다. 그 모두가 평생을 쉼없이 독서하고 창작활동에 매진한 덕분이리라. 이는 현대의학으로도 증명하는 사실이란다. 대뇌의 신경세포 중에는 나이가 들면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은 노화되지만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수상돌기는 지적 자극을 받으면 받을수록 증가한다는 것이다. 요즘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무서운 치매는 뇌에 대한 자극이 감소하면서 진행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꿔말하면 뇌의 활동성을 높이면 치매 예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뇌를 자극하는 데는 독서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 1시간 이상 독서를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위험이 훨씬 낮았다는 연구결과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독서의 능률을 올리려면 소리내서 읽는 음독이 좋다고 한다. 음독은 두뇌를 활성화시키면서 집중력과 기억력을 배가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글을 베껴쓴다든지 혹은 다양한 단어를 연상하면서 글을 자주 쓰면 기억력이 증진되는 것이다. 얼마전에 치매예방에 좋다면서 많은 어르신들이 곳곳에서 고스톱을 즐기는 모습을 목도 한 적이 있다. 각 노인정은 물론이고 가정마다 고스톱의 열풍이 불어닥치기도 했다.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근거없는 속설 때문이었다. 신문을 정독하면서 시사 교양도 높이고 이야기 거리를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좋겠는가.
책을 읽지 않으면 문화 후진국이 된다. 문화치매 현상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얕은 지식의 토양에서 훌륭한 정치가가 나올 수 없고 문화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경제대국으로 발전을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것이다. 국제화 시대는 이제 문화의 시대다. 그에 따른 문화의 척도는 독서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문화치매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랑스런 문화민족으로 부끄럽지 않는 국민이 되려면, 진정 글을 읽고 책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