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보았다
달팽이가 면도날 위로 기어가는 것을
이건 꿈이다 끔찍한 악몽
날카로운 칼날이라 아슬아슬했지만
달팽이는 살아남았다…
전율이 넘치는 단어들의 배열, 노랫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영화는 영화관에서 한번만 보면 끝인 줄 알았는데 비디오와 DVD가 나온 탓일까? 본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많아졌고 다시 보니 처음보다 더 재밌는 경우가 많다. 좋은 영화라면 볼수록 더욱 재밌다.
나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여러 번 보았지만 몇 번을 더 보아야 재미가 절정에 달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지옥을 묵시록’을 좋은 영화라고 추천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던 적도 있다. 옛날 소싯적 극장에서 비몽사몽간에 보아서인지 내용도 떠오르지 않고 말론 브랜도의 반짝거리는 대머리만 겨우 생각해 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번째 보았을 땐 첫 장면으로 등장하는 야자수 풍경이 눈에 쏘옥 들어왔다. 이 장면은 필리핀의 팍상한 폭포 건너편에서 촬영했다. 동료들과 필리핀의 팍상한 폭포 여행 중 그 야자수를 배경으로 커다란 사진을 몇 컷이나 찍었기에 그 장면만은 생생했다. 이렇게 아는 만큼 보일 뿐이었다.
다음으로 보았을 땐 헬기소리에 이어 나오는 기타 소리, 가벼이 이는 황토 먼지가 보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고 큰 먼지가 보였다. 시작에서 끝을 노래하는 소리도 들렸다. ‘This is The End'라며 노래한다. 참으로 감미롭다. 헬기소리에 챔벌린의 소리도 떨리면서 깔렸기에 더욱 슬프다. 그러한 느낌이다.
숲을 가득 채우는 네이팜탄의 화염과 선풍기 소리가 노래와 어떻게 연결되나? 그래서 찾아보았다. ‘도어스’의 노래 ‘The End’였다. 인터넷을 통해 몇 번이나 들어 보았다. 혼자 듣기가 너무 아까워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정성이 갸륵해서인지, 아님 정말 노래가 좋았음인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겨웠던 친구여, 잘 있게
하나뿐인 나의 친구여 잘 있게
그토록 잡고 싶었던 자유와의 투쟁과도 안녕
하지만 자네는 나를 따라오진 말게
온갖 비웃음과 음흉한 거짓의 세계여, 안녕
견디기 어려웠던 암흑의 땅이여, 안녕
이 절망스런 세상에서, 우둔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틀어쥐고 있던 무한한 자유가 눈앞에 보이는데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런 세상을
아름답던 친구여 안녕!
하나뿐인 친구여 안녕!
이제 우리의 기념적인 계획은 다 끝난 거야
완전히 끝나버린 거라고
놀랄 것도 안전할 것도 없는 끝이지
난 이제 너의 눈을 쳐다보지 않겠어!
다시는!
‘지옥의 묵시록’의 내용은 대부분 알겠기에 간략히 말하자면 이렇다. 미 특수부대 소속의 윌라드 대위(마틴 쉰)는 가정도 무너져 공허를 느끼고, 지리멸렬한 전쟁에도 회의를 느껴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전설적인 군인이자 명분 없는 전쟁에 회의를 느껴 부하들을 데리고 캄보디아 밀림으로 잠적하여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한 불가사의한 인물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을 미군당국은 윌라드 대위에게 제거하라는 비밀 명령을 내린다.
윌라드 대위는 전쟁을 잘 모르는 신참 네 명을 거느리고 커츠 대령을 찾아 험난한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는 여행의 여러 재미난 풍경과 더불어 전쟁의 광기어린 현장을 긴장감 있게 묘사하면서 마침내 커츠 대령의 왕국에 도착하여 그의 임무를 다한다는 이야기이다.
월남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코폴라 감독의 최대 문제작으로 1979년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료상을 수상하고 1980년 아카데미 상 2개 부문을 수상하여 한 시대의 미국과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런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종반전에 접어들자 나의 이해 능력은 한계에 부딪쳤다. 전쟁 영화의 논리로선 당연하지만 나의 이성적 논리와 감성적인 판단과의 결합에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커츠 대령의 왕국과 그가 내뱉는 호러(공포), 호러의 의미는 나를 설득시키기엔 뭔가 강요가 있다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의 이러한 마음이 감독에게 전해졌기 때문일까? 나 같은 이해력 부족자를 위하여 감독은 2001년도에 50여분을 추가한 리덕스 편을 펴냈다. 훨씬 재미있어지고 쉬워졌다. 전쟁을 조롱하듯 윌라드 대위는 서핑광인 킬고어 대령의 서핑보드를 훔치는 장면을 넣었다.
위문 공연이 끝난 뒤 돌아가던 윌라드 대위 일행이 연료가 떨어져서 플레이걸들과 물물교환을 하는 장면도 넣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 가족과의 만남이다. 프랑스 가족을 만난 윌라드 대위가 식민지 시대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그들과 식사를 하고, 자신을 유혹하는 록산느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도 넣었다.
난해한 커츠 대령을 이해시키기 위해 커츠 대령과 윌라드 대위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도 넣었다. 그는 윌라드에게 커츠 대령은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을 논한다. 충분히 이해는 되나 나는 아직 커츠 대령까지는 가질 못하고 킬고어 대령에만 머물고 있다.
감독은 커츠대령의 생각이 전쟁의 실체라고 나에게 주장하지만 나는 전쟁의 본질은 킬고어 대령이라는 생각한다. 헬기에 바그네의 음악 ‘말퀴레의 기행’를 확성기로 틀어놓고 베트콩을 무차별 공격하는 킬고어 대령의 행각이 전쟁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처참한 살육과 파괴로 얼룩진 인간의 20세기에 대한 반성은 몇 번을 더 봐야 나의 가슴에 와 닿을지 나도 아직 모른다. 이 영화는 아직도 나에겐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