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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대학 입시, 당사자 간 협의체를 구성하자

차기 정부의 대입 자율화 정책 기조에 따라 주요 대학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에 따라 교육부가 해체된다면 현재의 대입 정책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대학 입시를 일정하게 조율하던 기능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물론 대교협(‘대학교육협의회’의 준말)에 그 권한을 위임한다고는 하지만 교육부처럼 예산권이나 제재 수단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역할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2008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은 교육부의 제재 방침에도 불구하고 내신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통합논술을 비롯한 대학별 고사를 핵심 전형 요소로 삼았다. 일부 대학들은 내신이 공교육 활성화에 꼭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에 동조하는 척 흉내만 내고 실제로는 이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가 사라지고 자율이 주어진다면 이들 대학들이 내신을 어떻게 취급할 지는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그 결과를 뻔히 알 수 있다.

지난 9일에는 서울 지역의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이 대교협에 모여 회의를 열고, “대입 자율화의 핵심인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와 내신 반영비율 자율화를 인수위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공교육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입학처장들은 외국어와 수학 ․과학을 중심으로 한 가이드라인 폐지가 ‘본고사 부활’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외국어 지문 번역과 해석, 수학․ 과학의 풀이 과정을 묻는 문제가 본고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제는 입시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수요자라 할 수 있는 학부모와 공교육의 핵심인 현장 교사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일부 상위권 대학들은 지원하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학부모와 교사들의 의견까지 참고할 필요는 없다는 태도로 나올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입 자율화는 결국 대학의 일방적 의사 결정에 학부모와 일선 교사가 따라가는 형국이 될 전망이다.

대학교육협의회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입시 제도를 마련한다는 인수위의 취지는 그럴듯 해 보인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대학들이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낼 지는 미지수다. 특히 대학의 입장에서는 본고사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통합논술이 그나마 공교육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학도 잘 알고 있으나, 출제와 채점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보다 수월하고 분명한 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 귀결점은 본고사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가르칠 학생을 자율적으로 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입시 지옥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대학 내부에서조차도 입시 자율화는 곧 내신 무력화이고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는 본고사의 부활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입 업무를 맡게 될 대교협을 중심으로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대학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그 안에서 대입 전형 방법을 논의해볼 것을 제안한다. 대학도 우리 사회에서 입시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협의체를 통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다면 그것이 곧 대학 교육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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