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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초등학교 선생님이 쓰는 교실일기- 만남 7일째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 가필드(1831~1881)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너희들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고 물었을 때, 소년들은
"위대한 학자가 되겠다, 세계 갑부가 되겠다, 훌륭한 정치가가 되겠다, 용맹한 장군이 되겠다."
등 각자의 포부를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필드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
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높은 자리에서 큰일을 하고 명성을 세상에 떨쳤다고 해도 그 사람됨이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라면 개나 소와 같은 동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소원입니다."
하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큰 기대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들어선 새 정부를 맞이한 지 이제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정부를 끌고 갈 수장들의 면면들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말들이 많다. 글로 옮기기에는 부적절한 단어들이다. 배를 끌고 갈 선장들이니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人事가 萬事'라고 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됨'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분들이 이룩한 부와 명예, 지위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평범한 국민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내 자식들도, 내 이웃들도 저렇게 훌륭한 자리에 설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들이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나는 요즈음 '세종처럼'(박현모 지음)이라는 제법 두툼한 책을 읽는 중이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아침 독서하는 태도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이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교직의 어려움은 무엇이든지 몸으로 보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가르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기에 내가 실천할 수 없는 것은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종 임금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피상적인 상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도 있고 새로운 정부와 비교해 가면서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사이 사이에 담으면서 오늘날의 리더십과 정치 현실을 함께 엮어내는 묘미까지 맛볼 수 있어서 좋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식민지 사관에 길들여져 배운 것들로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많은 게 사실이다.

태종이 우여곡절 끝에 충녕을 세자로 세우면서 첫째로 부탁한 대목은 새 정부에도 통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세자로 세우느냐 하는것은 인심을 얻거나 잃는 관건이다. 따라서 원량(元良)을 가리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잡으려 할진대 오직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니 이는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 마음에 지극한 공정함이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사사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앉게 된다면 그 나라는 그 순간부터 혼란에 빠지고 국력은 쇠퇴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종은 충녕에게서 그의 '지극히 공정한 마음'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잣대는 비단 고위 공직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니리라. 이 나라의 모든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며 교실을 지키는 선생님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면 아이들을 편애할 것이고 심지어 성적조작이나 금품수수 등으로 물의를 빚기도 하니 그 폐해는 실로 막중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지닌 환경과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보되 마음 깊은 곳에 '지극히 공명정대한' 잣대를 드리우고 그 아이에게 맞는 격려와 칭찬, 배려와 다독임, 충고와 염려로 다가선다면 인간 관계의 가장 기본인 신뢰를 얻을 수 있으니 가르침의 초석을 든든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무엇이' 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어떻게' 되기를 더 중요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국민소득 2만불을 넘긴 그런대로 잘 사는 나라의 축에 들어간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시대보다 덜 행복해 보이는 것은 내 안경이 잘못된 것일까? 상대적 빈곤감이 더 큰 탓이라고 생각한다. 상생보다는 경쟁의 논리와 일등주의에 길들여져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아온 탓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쫗으면 다 좋다는 의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누르고 밟고 이겨도 좋다는 비윤리적인 문화를 은연중에 묵인하게 하였으니, 편법과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명예와 부를 누리고 지위를 차지하려는 온갖 비리와 샛길이 난무하는 형국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21세기에는 더 이상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통령 가필드처럼 '사람다운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사람다운 사람'에 있다. 국어, 수학을 공부하는 목적도 노래를 부르고 운동을 하는 것도 영어를 배우는 일도 결국은 '전인 교육'으로 귀결되니 풀어 쓰면 '사람다운 사람'이 아닌가.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의 세계를 어른들만큼 듣고 배운다. 어찌 보면 뉴스만큼은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되는 소식들로 넘친다. 이는 곧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될 소지가 참으로 많다. 착하고 바람직한 일들은 교과서 속에나 있으니, '사람다운 사람'을 보려면 감동뉴스만 보게 해야될 판이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나 연속극은 초등학생이 보아서는 안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누누히 말하고 당부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부모님과 같이 보기 때문이다.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나 엽기적인 소식들이 넘쳐나는 뉴스들을 아무런 거름장치도 없이 보고 듣는 요즈음 어린이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교실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저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생각을 해야지. 나쁜 것을 보고 자기도 따라 하면 그 사람만도 못하게 된다. 좋은 일인지 아닌 지 판단하려면 공부를 해서 좋은 생각을 키워야 하는 거란다.' 라고

좋은 일은 늘 노력을 해도 잘 안 되지만 좋지 않은 일은 노력하지 않아도 손쉽게 배우고 익숙해진다. 좋은 소식은 1%라면 바람직하지 않은 소식은 뉴스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아이들의 눈과 귀를 더럽힌다. 탑을 쌓기는 어렵지만 허물기는 쉽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게 하는 일도, 점심을 감사하게 깨끗하게 잘 먹게 하는 일도, 복도에서 조용히 다니게 하는 일도 하루만 거르면 금세 표가 난다.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기가 힘든 세상이다.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바라보고 배울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가까이에서 본이 되어야 할 부모님은 안 계시거나 너무 바쁘다. 모두 '경제'에 매달려 앞만 보고 달리기에 바쁘다. 아니, 그 달려갈 일자리조차 부족하다. 이제 겨우 우리 글을 일깨워 읽기 책을 또박또박 읽고 동화책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이지만 때로는 우리 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맥락을 잡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영어'를 배워야 산다고 몰아세우는 어른들이다.

어쩌다 교실영어라도 한마디 하면서 영어에 친숙하게 하려고 하면,
"선생님, 스트레스 받아요. 우리 말로 해요." 하는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사람이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아이들이 원하는 '선생님'이나 '경찰관'이 되기에 앞서 착하고 고운 심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나는 다시 '세종처럼'을 읽는다. 우리 반 아이 5명 중 3명의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니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본이 되는 교실.

세상의 어른들이 아이들과 자식들을 두려워 하는 세상이 되길 빌어본다. 그들이 보고 배울 멋진 사람들이 정치가가 되고 장관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 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본받는 인물로 삼아 인생의 지표로 삼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위인은 책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른들이 많은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의연한 저 월출산처럼 큰 바위 얼굴같은 아름다운 리더로 이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2008.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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