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 세상에, 혼자 공부하고 노력해서, 그것도 졸업과 동시에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했다며 주변 친지들 모아놓고 함께 밥을 먹으며 기쁨을 나누던 날 우리 모두는 자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지. 얼굴도 예쁘장하고 마음도 선한데다 효심 지극하여 부모님께 걱정 끼칠 일 한번 안 저질렀다는 우리 구애림 선생.
자네 아버지의 친구된 사람으로서 갖는 개인적 친근감을 밀쳐두고서라도, 구 선생 같은 좋은 사람이 우리 일선 교단에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지…. 어제는 자네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우연히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찌나 좋게 평하시던지 참으로 마음이 놓였네.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 자율학습을 지도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하고, 수업에 임해서는 복도를 지나가며 그 청랑한 목소리만 들어도 열정이 느껴질 정도이며 퇴근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학교에 남아 업무 처리하는 모습이, 학교의 보배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결코 인사치레나 지나가는 말 같지 않았네.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은 법이어서, 잘하는 사람은 누가 봐도 잘하게 보이고 잘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여삐 보려 해도 좋게 보이지 않는 법 아니던가.
요즘 일선 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늘 하는 말이, ‘학교경영이 너무 힘들다’인데 그 힘듦이 학교의 예산부족이나 시설노후, 허름한 교육기자재 때문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특히 일부 몇몇 교사들의 비뚤어진 인성과 사고방식 때문이라고들 하네. 내용인 즉,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은 법률적 지위를 떠나서 최소 삼십여 년 이상을 교직에 헌신한 교육원로로서, 아니면 한 직장의 상사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중 받을만하고 인간의 도리 상으로도 존중해야 마땅하거늘, 학교장이나 교감의 생각이 자기가 속한 교직단체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 해서 아무데서나 툴툴거리고, 직원전체 조회를 하는 공식석상에서까지 공격적 언사를 일삼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 일할 맛이 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임기나 채우고 떠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이래 가지고서야 학교가 어찌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걱정일 뿐이네.
구 선생. 말하지 않아도 오죽 잘할까마는, 어느 학교에 근무를 하든지 간에 교장 교감 선생님을 많이 도와 드리게. 돕는다는 뜻이 무조건 굽실굽실 아부하라는 뜻이 아니네. 그 분들은 나름대로 분명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고 소정의 자격을 얻기까지 성실한 교직생활을 해왔을 것임은 공인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 생각건대 그런 분들이 교육을 망칠 셈으로 일부러 나쁜 맘을 먹고 학교경영을 할 리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학교경영의 권한을 남용하여 사익을 챙기려 하지 않는 이상은, 경영자 내지는 관리자로서 그 분들이 제시한 방향, 시책, 그리고 충분한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된 학교의 과업들은 구성원 모두가 제 일처럼 돕고 지혜를 모을 때 비로소 그 학교가 발전하고 교육이 제대로 될 것일세.
벌써 삼십여 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지만, 나도 자네와 같은 초임교사 시절이 있었네. 지금 생각해도 교단생활 하루하루가 왜 그리 가슴이 뛰던고. 아이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일이 그냥 즐겁고, 형편이 어렵고 가정적으로 애로가 있는 학생 따로 불러내서, 열심히 살라며 다독여주다 보면 뭉클해지곤 하던 가슴. 좀 더 잘 가르쳐보려고 교재연구에 밤을 새우던 날 밤 시간은 왜 그리 빨리 흐르고 창밖으로 내다본 하늘의 별은 왜 그리 빛나 보이던고. 옆 자리 동료가 바쁜 일이 있거나 안타까운 가정사가 있다싶으면 한두 시간의 수업쯤 서로 자청하여 ‘제가 하겠습니다’하며 노고와 염려를 함께 나누던 동료애. 틈나는 대로 친목회를 열리면 누가 이기고 지냐의 운동경기의 승부 여부 보다 서로 권하는 술잔 속에서 삶의 애환을 주고받던 직장풍경.
초임교사 시절, 그 때 그 눈물어린 순수의 마음으로 가르치던 제자들이 아직도 ‘선생님’이라 부르며 멀리서 안부를 물어오고, 그 때 그 힘겹게 자라던 아이들이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고 어른 된 지금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 때 그 정 많던 동료들이 십 수 년이 지났지만 변함없는 우정으로 서로의 대소사를 챙겨줄 때, 우리는 선생님노릇 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다네.
희망과 기대로 꽉 찬 가슴. 이제 막 햇병아리 선생님으로 교단에 선 자네에게 이런 얘기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지만 지금 우리 교단은 어떤가. 왠지 식어 보이는, 가르침에 대한 열정, 메마른 인간관계, 사명감이나 소명을 들먹이는 자체가 구식 케케묵은 말장난이 되고 말았네. 그런 와중에서 아이들은 학교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에 보내는 신뢰를 썩 내켜하지 않고, 선생님들은 신바람 대신 무력감을 맛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는가.
정말 부탁이네. 지금 그 초심 부디 변하지 말게. 잠시 거쳐 가는 것이 아닌 평생직장으로서 교직을 택했고, 다른 어떤 일보다도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서 생의 의미와 보람을 찾겠다며 선생님 되기를 갈망하고 또 갈망했던 자네. 임용시험 면접 시험관 앞에서 약속하지 않았던가. 교단에 설 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헌신과 봉사의 자세로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나는 그 약속이, 단지 시험관에게 잘 보이려고 내뱉은 잠시 동안의 빈말이 아니라, 자네 자신과의 영원한 약속으로 가슴 깊이 새겨져 있길 바라네. 교단에 머무는 동안, 힘들고 흔들릴 때마다 그 약속 되새기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면 분명 후회 없는 삶,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