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한 지 20여일이 지나가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지만 작년에 1학년을 담임해서인지 2학년 아이들을 보니 몸도 마음도 부쩍 자란 것 같다. 그래도 장난치고 떠드는 일은 여전하니 어찌된 일일까?
아침에 아이들을 만나면 “안녕?”인사하며 반가운 얼굴로 시작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도 커지고 웃는 얼굴도 어느새 인상 쓰는 얼굴로 바뀌고 만다. 수업시간에는 그래도 집중해서 수업에 임하지만 쉬는 시간만 되면 천둥소리가 따로 없다. 화장실에서 떠들고 휴지를 풀어 물묻혀 벽에 던지기, 복도에서 소리치며 뛰고 미끄럼 타기, 친구들과 쌔쌔쌔 놀이하며 큰 소리로 떠들기, 교실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장난치기, 좁디좁은 교실공간을 찾아 뛰어다니기 등이다. 신학기가 되어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진 줄 알았는데 몇 아이들 빼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아이들은 새 선생님을 만나 기대를 많이 하였을 텐데 신학기 인지라 아이들을 훈계하면서 근엄한 얼굴로 대하니 다소 실망스러운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즉시 불러서 잘못한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하여 말하게 하거나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두 번, 세 번 받으니 장난끼 일선에 서 있는 아이들은 선생님 얼굴을 대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하루일과가 끝나면 학급홈페이지 새싹들의 방에 들러 아이들이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 서로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한다. 교사가 알지 못하는 일이 하루 동안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특히 교사에게 부탁하는 글이 올라온 것을 확인하면 즉시 답변글을 단다. 오늘도 게시판을 열었는데 평소에 말이 없던 지원이가 올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이란 제목의 글에, “선생님, 앞으로 1년 동안 잘 가르쳐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써 있는 것이 아닌가? 읽는 순간 그동안 아이들에게 보인 나의 부끄러운 행동이 떠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원이에게 답변글을 썼다. “그래, 지원이의 말대로 정말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이 될게. 학급 전체가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을 말할 때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할 때는 엄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지원이가 선생님에게 다가와서 이야기 할 때는 얼마든지 친절하게 대하는 선생님이란다. 아직 학교에서 지원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구나. 내일은 선생님! 하고 다가올 수 있겠니?”라고 썼다.
다음날 지원이가 올린 글이 또 게시판에 올라왔다. ‘예쁜 우리선생님’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는, “내가 선생님 반 2학년 3반 이 된 것이 자랑스럽네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공부를 내가 알기 쉽게 잘 가르쳐 주셔요. 나도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의 자랑할만한 지원이가 될게요.”
'지원이 때문에 살맛나네.'라는 제목으로 바로 답변글을 달았다.
“지원아 어디서 그렇게 예쁜 말이 나오니?
소리가 조금 작기는 했지만 오늘 휴일에 있었던 일도 잘 발표하고...
지원이가 착하고 너무나 예쁘구나! 선생님은 지원이를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해.
2학년 3반 어린이 모두와 지원이를 정말 사랑하는 선생님이 될게. ”
지난 2월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초등학생들은 어떤 선생님을 좋아할까?'라는 조사결과를 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신학기를 맞아 한 기관에서 의도적으로 올린 글인 것 같다. 10가지 정도 순위를 매겨 나와있는 글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 1위는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정말 그렇다. 아이들은 친절한 선생님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만큼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온 정성을 다하여 돌보고 열성껏 가르치며 틈이 날 때마다 교사가 먼저 다가가서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눈다면 아이들의 뇌리속에 친절한 선생님으로 언제나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