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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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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전교생 가을소풍 가던 날

초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10월 중순, 전교생이 함께 가을철 체험학습을 갔습니다. 조용하던 시골 학교 운동장에 아침 안개가 걷히며 통학차에서 내려 신나게 달려오던 아이들. 산뜻한 모자에 분홍색 옷차림, 청바지에 소풍 가방을 들고 내린 아이들의 표정은 해맑은 가을 하늘 같았습니다. 보통 때보다 발랄한 아이들 모습에 나도 들떴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소풍가는 날이지요?"
"아니야, 체험학습 가는 날이야."
"두 사람 다 맞아요."

전교생을 태운 버스는 영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벌써 추수를 끝낸 벼논엔 이른 봄처럼 파릇한 새순까지 돋았습니다. 가을 햇볕에 엉덩이를 익혀 붉게 익어가는 감들이 매달린 감나무들, 너울대는 억새들도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앞좌석에서 연신 쫑알대는 1학년 꼬마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으며 내 어린 날의 소풍을 떠올렸습니다.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아리랑 담배 두 갑을 사 주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만 잡수시던 귀한 달걀을 3개씩 싸 주시던 어머니. 시금치 무침과 멸치볶음이 든 네모난 도시락은 40년이 지났어도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게 생각났습니다. 가끔은 어머니가 소풍 간 곳까지 따라오셔서 즐거워했던 풍경이 그리워졌습니다.

교직에 몸담은 지 3년 차 햇병아리 선생 때에는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을 등에 업고 사진을 찍던 소풍날이 있었고 그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으니 시간을 공유한 그날들이 그리움으로 차창 밖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9월 새로 전학 온 문경이는 내내 말이 없더니 눈동자마저 풀려 있었습니다.
"문경아, 어디 아프니?"
"아니오, 잠이 와서 그래요."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니? 소풍 간다고 좋아서?"
"예, 선생님!"
“선생님도 어렸을 때에 그랬단다. 소풍 가는 날에 비가 올까 봐 밤늦게까지 몇 번이나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지.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면서 말이야."

세상은 이렇게 달려가도 동심은 그대로인 가 봅니다. 아이들은 자연을 닮았으니 우리 반 아이들 모습 속에서 내 어린 날의 모습을 찾아내며 즐거웠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문경이를 무릎에 눕히고 잠을 재우며 달리는 버스에서 이제는 다 커서 독립한 딸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몰려 왔습니다. 엄마가 선생이라는 이유로 운동회건 소풍이건 사진 한 장 남겨 주지 못한 아픔을 생각하며 잠자는 아이의 머리칼을 손을 빗어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잠자는 아이도 나도 지구라는 초록별에 잠시 여행을 떠나온 나그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풀을 베는 농부들, 뒷거름을 뿌렸는지 구린내 풍기는 시골길도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나와 함께 소풍을 갔던 그 많은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지금 쯤 일터로 달려가고 있는지,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리움을 묻혀 짧은 시를 스케치하며 타고 간 타이머신은 스치는 가로수보다 더 빨리 지나갔습니다.

-소풍길-
풀 이슬 바짓가랑이에 맺히던 논둑길 지나
친구 손잡고 재잘대며 나들이 가던 소풍 길
흰머리 희끗한 내 친구는
아직도 그리운 이름으로
소풍 가는 길에 서 있구나.
친구야! 생각나니?
바닷가 모래톱에 너의 이름 새기던
아프디 아픈 내 청춘의 그 날을.

20년 전 근무지였던 영광을 지나며 30대의 창창한 젊음을 자랑하며 씩씩하게 가르치던 6학년 제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그 아이들은 성년이 되어서 가정을 꾸리고 직장인이 되어 사회인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어른이 된 제자들의 얼굴이 무척 보고 싶어졌습니다. 나의 안뜰에서 유년을 보낸 아이들이 추수를 끝낸 알곡처럼 튼실하게 익어서 톡톡 여문 삶을 살고 있기를 빌었습니다.

이 가을 나의 뜨락엔 어떤 알곡들이 여물어가고 있는지, 지난 1년 동안 내가 지은 농사는 어땠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가르치는 일, 좋은 책을 읽게 하는 일, 글 쓰기 농사, 내 가정을 돌보는 일 등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추수를 끝낸 벼논의 시원함과 누렇게 물든 채 주인을 기다리는 황금 들녘은 내게 묻고 있었습니다. 제 할 일을 끝내고 자신 있게 농부의 손길을 맞이한 벼논의 시원스러움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가을 소풍 길. 내가 맡은 여섯 아이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튼실한 알곡으로 채워 쑥쑥 자라게 하는 시간이었는지 묻고 다그치다보니 어느덧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전시관을 구경하고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 동산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는 가마미 해수욕장의 모래톱을 달렸습니다. 철 지난 해수욕장의 시원스런 모래밭에서 성을 쌓는 아이들, 게를 쫓는 아이들, 공을 차는 아이들이 지금처럼 행복하기를 빌었습니다.

개펄을 달리며 짝 끼리 껴안고 풍선을 터뜨리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 하던 현민이의 환한 웃음 속에는 함께 살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픔도 잠시 달아나 있었습니다. 황혼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할머니 그늘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아이는 너무나 해맑아서 오히려 아팠습니다. 아홉 살짜리 2학년 아이가 짊어지고 일어서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버거운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에서 가장 밝고 잘 웃는 그 아이가 지금처럼 저렇게 좋아하는 짝꿍들과 함께 행복하게 풍선을 터뜨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소풍은 떠남을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언젠가는 이 초록별에서 다른 형태로 다음 생을 살아야 하는 연습입니다. 썰물 진 개펄에서 숨 막히게 달리는 아기 게처럼 산골 아이들이 바다를 보고 더 너른 세상을 꿈꾸며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무릎에서 잠든 문경이, 내 손에 꼭 들어오던 준희와 은지의 작은 손이 주던 따스함, 쉴 틈 없이 과자를 입에 물고 좋아하던 인재와 현민이,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있길 거부하던 1학년 꼬마들의 재잘거림이 행복한 자장가로 밀려오던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보다 더 빨리 지나갔습니다. 시골 아이들과 함께 떠난 가을 소풍 길은 일상의 탈출이었기에 더 아름다웠습니다. 가을은 `갈` 것을 생각하는 계절이어서 아이들보다 더 설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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