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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놀기 선수 막내 딸 3

막내가 공부를 소홀히 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로 진단 할 수 있다. 타고난 능력의 부족, 환경적 요인, 심리적 요인 등이다.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한번 적성검사와 지능검사를 해보려고 한다. 검사 결과가 기대 이하라면 기대도 낮춰야 한다. 물론 검사결과에 전적으로 의지하진 않는다.

환경적 문제는 가정과 학교 등 딸의 생활 영역이 된다. 교우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학교의 교육환경 등. 가정환경으로는 부모의 태도 가정의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옛날 어느 교육심리학 책을 보니까 할아버지 아버지가 쓰던 책상, 책 등도 훌륭한 교육환경이 된다는 내용을 본 일이 있다.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부모의 가치관, 자녀 학습에 대한 부모의 적절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학생은 공부를 하는 목적을 잘 인식해야 한다. 선생님께 꾸지람 듣지 않기 위해, 부모에게 칭찬 받기 위해 공부할 수도 있다. 공부하는 것이 친구들과 사귀는 방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 대학 입학,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기도 한다. 우수한 학생이라면 의사, 변호사, 국제 펀드매니저 등 더 큰 목표를 세우기도 할 것이다.

막내는 15살이다. 생일이 빨라 일곱 살에 입학했다. 위로는 13살 위인 쌍둥이 언니들이 있다. 아무래도 막내를 생각할 때는 언니들과 연관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막내는 언니들이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태어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엔 평화가 깨졌다. 그것은 아이들의 학업이 주원인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혹자는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연히 딸들이 공부를 잘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처음부터 신통하지 않던 성적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내가 교사인데, 아니 내가 등단한 문인인데?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건 문단의 모임에서건 자식 얘기라면 입을 닫아버렸다. 주위에서 누가 어느 학교 무슨 과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왜 그리 자주 들리는지?

그것은 스트레스가 되어 종종 아내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폭발하곤 했다. 이 난리를 막내는 옆에서 간접 체험했음이 분명하다. 조금씩 나이 들면서 언니들이 공부를 안 해서 아빠가 또 화났구나 하고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아마 막내의 공부 기피증은 거기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분발해서 더 열심히 한 게 아니라 언니들과 자신을 공동운명체로 생각하여 같이 보조를 맞춘 까닭이리라.

아무튼 그 후 별 탈 없이 큰딸은 영문학을 공부하고 둘째는 피아노를 전공해서 지금은 각자의 직장에 충실하고 있지만 막내의 마음속엔 아마 아빠에게 꾸지람 듣던 언니들의 모습이 또렷한 영상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분발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13살이나 위인 언니 둘을 제치고 혼자 공부하는 것이 가당찮은 일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막내가 공부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조짐이 뚜렷했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하다가 나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큰애하고 막내가 낮에 영화 ‘해운대’를 구경하러 가면서 막내가 그러더란다.
“아빠가 자상하고 참 좋은 아빠야, 그렇지 언니?”
밥상머리에서 큰애가 이 말을 하자 막내가 깜짝 놀라며 언제 그랬느냐고 큰애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내가 그동안 막내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무리 진심으로 딸들에게 했어도 딸들은 그렇게 받아드리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아니 큰애와 둘째는 이제 많이 나를 이해하게 됐을지 몰라도 막내는 여전히 언니들에게 화를 내던 아빠의 모습을 지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막내의 그 말은 요새 내가 막내에게 관심을 보이고 공부를 도와주며 학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 않은가. 막내는 분명히 내게서 어떤 새로운 것을 감지한 게 분명하다.

세상에! 나는 놀랬다. 나는 그 동안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학교 수업 교재 연구도 하면서 지내왔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에겐 아빠의 개인적인 일에 불과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딸들에게 좋은 영향, 따뜻한 교감으로 작용했다면 딸들도 열심히 책 읽고 공부했을 것이다. 딸들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부모는 그냥 부모가 아니고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해야 부모자격이 있나보다. 부모 노릇하기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아내는 가끔 서울 사는 처제네 조카들 공부시키는 모습을 내게 말하곤 했다. 그래도 나는 그냥 한쪽으로 흘려버렸다. 아이들 데리고 많은 곳을 견학시켜야 아이들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종종 했다. 그래도 나는 별 반응 없이 시큰둥했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즉석 제안을 했다.
“당신 막내 데리고 제주도 갔다 올 수 있어?”
“정말? 보내줄 거야?”
“그래, 내가 경비의 60% 댈게?” 나는 아주 기분 좋게 약속했다.
이것도 실은 막내딸 프로젝트의 일환이지만 딸에게 관심을 가지니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일이 성사되었다. 나는 아직 다리 수술 부위가 회복이 안 돼 여행은 못 한다.

아내와 막내는 신바람이 나서 며칠 후 2박3일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막내는 매우 설레는 모양이었다. 둘째 언니도 비행기 타봤느냐며
“그럼 우리 집 식구 다 비행기를 타봤네!”
하고 감탄문을 구사하며 설레는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내와 막내는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저녁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막내가 무척 좋아하며 해마다 오고 싶다고 하더란다. 남들은 제주도가 아니라 해외여행이니 어학연수니 하면서 외국엘 수시로 드나드는데 나는 중3이 된 딸에게 이제 고작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시켜준 것이다.

그동안 어디에 한눈을 팔고 있었던가? 따뜻한 배려와 관심보다는 좋은 결과만 기대하고 다그친 것이 아닌가? 진정한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 장래를 염려하기보다 내 체면 유지에 급급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아이들이 학업에 소홀히 한 책임이 전적으로 내게 있는지도 모른다. 딸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막내딸과 좀 더 많은 대화를 해서 신뢰를 쌓아야겠다.

한비야씨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요새 나는 한비야씨의 신작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있다. 여행기를 쓰는 여행 작가겠지 하는 선입견이 책을 읽으면서 싹 가셨다. 사고가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배울 점이 많은 작가였다. 책을 읽는 동안 아주 감동적인 내용이 자주 띄었는데 하나만 소개한다.

여고시절 성당 신부님이 하루 3가지씩 감사해야 할 일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줬단다. 처음에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난처하더니 6개월 동안 매주 숙제를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지난 30년 동안 잠자기 전엔 꼭 기도를 하면서 그날 감사했던 일을 하느님께 말씀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을 감사하는지 실례를 들어놨는데 아주 평범한 일상사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랜 신앙인으로써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갑자기 나도 오늘 감사해야 할 일 3가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무엇이 있을까? 작가로부터 방법을 터득해서 그럴까? 의외로 쉽게 감사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첫째, 엊그제 막내에게 영어문제 스무 개를 내줬는데 2개만 틀린 것, 비록 쉬운 문제이긴 하지만. 둘째 큰딸 작은 딸이 휴가 중 방에 방콕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친구들과 어울려 바닷가로, 물놀이 공원으로 여행을 떠난 것.

또 하나 뭐가 있을까? 그렇지. 다리 수술 한지 37일째 하루가 다르게 회복이 되고 있어 오늘은 소래습지생태공원에 가 한 시간이나 걸으며 다리 근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분명 감사해야할 일이다. 책을 다 읽고 감동 받아 나는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잠비아 어린이 하나를 후원하기로 했다.

나의 하루하루 생활에도 감사해야 할 일은 3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 스무 가지도 넘을 텐데, 우리는 불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하루 3가지씩 감사해야 할 일을 꼭 생각하고 소리 내어 말하자 다짐하지만 언제 또 다 까먹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와 막내는 제주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이제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길을 찾을 때까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전 과목이 아니라 한두 과목이라도 흥미와 성취감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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