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의문이 가는 것이 있다. 즉 똑같은 음운을 두고 호텔은 ‘Shilla(신라)’라고 하고, 주류 회사는 ‘Jinro(진로)’라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틀린 것일까?
답을 먼저 말하면 안타깝게도 둘 다 틀렸다. 답을 찾기 위해서 로마자 표기법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만이 사용하는 것이지 외국인은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기는 로마자이다. 따라서 한글을 대외적인 필요에 의해 국제적으로 많이 통용되는 로마자로 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제정한 것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다.
로마자 표기의 방법에는 전사법(轉寫法)과 전자법(轉字法)이 있다. 전사법은 발음을 로마자로 옮기는 방법이다. 반면 전자법은 철자를 로마자로 그대로 옮긴다. 이 중에 우리는 발음에 따른 표기를 하는 전사법을 택하고 있다.
그동안 이 법은 1984년 문교부에서 제정한 후 여러 가지가 혼용되어 문제점이 제기되다가 2000년 7월 문화관광부에서 새로 개정하여 시행하였다.
로마자 표기법은 발음에 따른 표기를 함으로써 국어의 철자를 복원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진다. 하지만 고친 로마자 표기법은 낯설고 까다롭게 여겨졌던 반달표(ŏ, ǔ)와 어깻점(k', t', p', ch')을 없애고 쉽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컴퓨터 등의 환경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개정했다는 점에서 정보화 시대의 추세에 맞춘 것이다. 또한 과거의 표기법에서 ‘ㄱ, ㄷ, ㅂ, ㅈ’과 ‘ㅋ, ㅌ, ㅍ, ㅊ’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아서 ‘동대문’을 ‘Tongdaemun’로 적는 등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이를 ‘Dongdaemun’으로 통일해 누구나 쉽게 표기하는 것은 물론 우리말의 발음이 올바로 전달되도록 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로마자 표기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로마자 표기법이 우리나라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있다. 로마자 표기법은 우리보다 외국인을 위한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말의 뜻은 몰라도 최소한 읽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표기법의 기본 원칙은 국어의 발음을 옮기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주변에서 보면 ‘종로’를 ‘Jongro’라고 철자에 따라 표기하는데, 이는 [종노]로 읽고 표기도 발음에 따라 ‘Jongno’라고 한다. 이는 로마자 표기법 제3장 제1항의 규정 ‘음운 변화가 일어날 때에는 변화의 결과에 따라 적는다.’에 근거한 것이다. 즉 우리는 전사법에 따라 발음을 로마자로 옮긴다. 예를 더 들어보면 ‘백마[뱅마] → Baengma/신문로[신문노]→ Sinmunno/신라[실라] → Silla’이다. 이 외에 ‘ㄴ, ㄹ’이 덧나는 경우(학여울[항녀울] → Hangnyeoul), 구개음화가 되는 경우(해돋이[해도지] → haedoji), ‘ㄱ, ㄷ, ㅂ, ㅈ’이 ‘ㅎ’과 합하여 거센소리로 소리 나는 경우(좋고[조코] → joko)도 모두 발음에 따라 표기를 한다. 다만, 체언에서 ‘ㄱ, ㄷ, ㅂ’ 뒤에 ‘ㅎ’이 따를 때에는 ‘묵호 → Mukho’처럼 ‘ㅎ’을 밝혀 적는다.
주의할 것은 된소리되기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압구정’을 표기할 때는 ‘Apgujeong’이라고 적는다. 또한 이름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도 표기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한복남 → Han Boknam(Han Bok-nam)’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로 볼 때, ‘신라’와 ‘진로’는 ‘Silla’와 ‘Jillo’가 바른 표기다. 일부는 고유명사라는 핑계로 잘못된 표기를 하는데 이도 올바르지 않은 태도다. 실제로 고유명사라고 해도 ‘신라대학교’는 ‘Silla University’라고 바르게 하고 있다.
로마자 표기법은 일차적으로는 국내에 방문 및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지만, 넓게는 대외 무역 및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최근 국제 정세는 세계화 및 정보화가 가속화되고 있어서 로마자 표기법의 통일은 절실하다.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될 당시 ‘이 표기법 시행 당시 종전의 표기법에 의하여 설치된 표지판(도로, 광고물, 문화재 등의 안내판)은 2005년 12월 31일까지 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는 부칙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있는 간판이나 광고물 등이 많이 있는데,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혹자는 이 법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전문가가 아니면 활용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이 법을 고시할 당시 해당 부서는 ‘로마자 표기 용례 사전’을 발행하고, 우리나라의 주요 지명과 문화재명 등 약 8,000여 항목을 로마자로 표기한 사례도 종전의 표기와 비교해서 같이 실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국립국어연구원이나 기타 국어 교육 관련 사이트에 가면 쉽게 열람할 수 있다. 이는 국어사전 등에도 부록으로 있어서 주변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 문서 적성 프로그램에도 로마자 표기법을 알 수 있다. 한글로 입력한 후 도구 메뉴(입력 도우미)로 이동하면 일반 표기법, 주소, 사람 이름 등으로 자동 변환이 된다. 따라서 조그만 관심을 가진다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