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랑이’와 ‘승강이’는 뜻이 다르다. 당연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동의어로 착각하고 사용한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실랑이’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 - 빚쟁이들한테 실랑이를 받는 어머니가 불쌍하였다.
‘승강이’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 - 접촉 사고로 운전자들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실랑이’는 본말이 ‘실랑이질’로 남을 못살게 굴어 시달리게 하는 짓이다. 상대방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꼴로 실랑이를 받는 처지는 괴롭다. 반면 ‘승강이’는 말 그대로 서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옥신각신하는 일을 말한다. 서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두 단어의 쓰임을 자세히 알기 위해 용례를 더 살펴보면,
1. 일하는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과의 실랑이로 몹시 피곤하다. 2. 택시 운전을 하다보면 실랑이하는 주정꾼을 자주 만나게 된다. 3. 어린 아이들은 사소한 일로 승강이를 하기도 한다. 4. 도로에서 접촉 사고 후 승강이를 벌이는 운전자를 자주 본다.
여기서 1과 2는 엄마와 택시 운전자가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다. 따라서 ‘실랑이’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반면 3과 4는 서로 대등한 관계에 시비를 가리고 있으므로 ‘승강이’를 벌이는 상황이다. 이렇게 쓰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승강이’를 써야 할 자리에 ‘실랑이’를 쓰는 경우가 많다.
○ 이들에 따르면 501함이 사고 해역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해군은 해경과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 인천시 남구와 옹진군이 건물 공사현장에서 나온 폐석회 방치에 대한 과태료 처분을 둘러싸고 6년째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위의 예문은 두 단체가 대립하고 있으니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는 모두 반목과 갈등으로 옥신각신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 적합하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는 ‘승강이’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 16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 대한 행정사무조사 발의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민주당 윤화섭 대표와 의원들이 진종설 의장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2009년 12월 16일). ○ 6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시작부터 여야 의원들 간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승강이가 벌어졌다(연합뉴스, 2009년 10월 6일). ○ 자신이 세 들어 사는 대구시 남구 한 빌라에서 이 건물주인 가족인 B씨(46)와 전세금 문제로 승강이를 벌이다……(뉴시스, 2009년 10월 1일).
‘승강이’와 비슷한 말로 ‘시애(撕捱)’라는 말이 있다. ‘서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여 문제를 끌면서 결정짓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옥신각신’도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다툼, 또는 그런 행위’를 이르니 비슷한 말이다. ‘실랑이’를 ‘실갱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 기내 수화물에 대한 x-ray 검사를 받고 일일이 짐 가방을 열어 보여주고 문제 삼는 품목에 대해서 실갱이를 벌이다 보면 지치고 기분도 상하고 대부분 화가 나게 마련입니다(세계일보, 2010년 3월 16일). ○ 사보이는 영사관 직원에게 안으로 들여보내 줄 것을 요구하며 실갱이를 벌이다 결국 문 앞에서 일본 경찰에 연행됐다(아시아투데이, 2009년 10월 13일). ○ 김은경이 종료 1분27초 전 수비 과정에서 김수연과 실갱이를 벌이다 반칙 판정을 받자 갑자기 팔을 휘두르며 주먹을 쥔 손의 바닥으로 김수연의 얼굴을 가격했다(한국경제, 2008년 2월 2일).
‘실랑이’를 ‘실갱이’라고 쓰는 경우는 잘못된 언어 습관이다. 일부는 사투리로 알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상식이다. 참고로 경남 지역에서는 ‘살쾡이’를 ‘실갱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