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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꼴찌만세

“윤정엽, 자 책을 한번 읽어보아라.”

선생님의 지명에 나는 비실비실 일어서며, 선생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아직도 책을 자신 있게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 25쪽을 읽어보아라.”

“우리 도 동네...,사라암드을은, 모두 항께,......”

“그래 됐어. 그 다음 이 두리 읽어보아라.”

맨 앞에 앉은 두리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어울리는 이름을 가져서 쉽게 친해지는 친구였습니다. 영순이는 곧 자기도 읽어야 할 차례이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는 것에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함께 논으로 나가서 모내기를 합니다.”

“그만, 아주 잘 읽는군. 그 다음엔 영순이.”

영순이는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논에는 모를 날라다 펴놓은, 노은 .... 것들이 주욱 늘어서 있습니다.”

“됐어. 그럼 그 다음.......”

영순이는 어쩌다 쉬운 부분을 틀리게 읽었지만 선생님이 자기에게 잘 읽었다고 얘기해 주신 것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고, 나이는 아홉 살, 5학년짜리 언니와 그 위로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오빠가 한 분 있어서, 우리 집의 막내이자 귀염둥이입니다.우리 식구들은 모두 나를 귀엽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끔 딴 동네에서 온 사람들에게만 “참 예쁘고 귀엽게 생겼구나” 하는 소리를 듣는걸 보면 나는 별로 예쁘거나 귀엽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인사로 그냥 그렇게 말해주는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학교에 오는 길에 우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어제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발령을 받으신 선생님이신데, 아주 무섭게 보인다고 아이들이 모두 울상을 하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나도 무서운 선생님은 싫은데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선생님을 만났을 때에도 꾸벅 인사만 하고 그냥 달아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응, 가만있자, 이름이 정엽이었던가?”하고,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내 손을 꼬옥 쥐어 주시더니, 손을 붙잡고 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다른 친구들이 모두 나를 부러워 할 것 같아서 운동장에 있는 친구들을 휘둘러보았습니다. 우리 반의 승자, 영순이, 상희들이 운동장에서 고무줄을 하다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나는 속으로 ‘우리 선생님은 참 무섭게 생기셨다고 생각을 했더니, 아주 친절하시고 우리들을 아주 잘 가르쳐 주실 것 같구나’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제 나도 2학년이 되었으니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지’하는 각오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첫 국어시간에 책읽기를 잘 못해서 선생님이 내 이름을 적으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눈물이 날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1학년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니는 이 학교가 생기기까지 학교가 있는 새터 마을과 우리 동네 어른들은 서로 자기 동네 앞에다가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싸움을 하였습니다. 결국 이곳 새터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말았는데, 그것이 분해서 우리 동네에서는 이 학교로 보내지 않겠다고 본래 다니던 면사무소 옆의 본교로 우리를 다니게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우리가 이 학교로 가야 한다고 우리 마을 아이들을 내쫓고 교실에 들여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학교에 가서도 눈물을 흘리며 교실에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이제 겨우 글씨를 익히기 시작하던 5월에 우리는 교실에서 쫓겨나서 여름방학이 되도록 학교에서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어른들이 학교에 쫓아와서 항의를 하고 사정도 하였지만, 교장선생님은 “보십시오. 그 분실(학교가 생기기 전에 우선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허가 된 교실)로 가게 된 아이들을 빼고서 학급을 짰기 때문에 교실에 그 아이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벌써 그 아이들이 앉아서 공부할 책상과 의자가 거기로 다 가버리지 않았습니까? 좀 섭섭하시더라도 거기로 학교를 보내십시오. 새 학교가 앞으로 더 잘 되는 좋은 학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로선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상부에서 지시도 그렇고 우리가 어쩌는 방법이 없습니다”이렇게 딱 잘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실에를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바보가 되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오빠와 언니가 글을 가르쳐 주었지만 막내라고 딴청이나 부리고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도리어 언니에게 “나도 다 읽을 줄 안단 말야!”하고서, 그림만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놓고서 언니가 “그게 어디 있니?”하고, 물으면 나는 아무데나 짚으면서 “여기 있지 않아.....”하고는 책을 팽개치고 밖으로 달아나곤 하였습니다. 농사일이 바쁜 엄마는 내가 이렇게 말을 안 듣고 언니 속을 썩인다는 것을 아셨지만 엄마가 집에, 오셨을 때는 나는 벌써 잠이 들거나 밖에서 늦게야 들어가서 금방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기 때문에 꾸중을 할 틈도 없습니다. 아빠는 목수 일을 하시니까 밖에 나가서 며칠 만에 돌아오시곤 하셨기 때문에 나를 꾸지람하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1학년을 보내고 이제 2학년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학교를 다니게 된 우리들이지만 아직 우리는 글을 제대로 읽는 아이가 몇 명이 안 될 정도입니다. 올 봄에 이 학교는 분교로 첫 개교를 하였고, 우리는 이 학교의 학생이 되었습니다. 학교라고 하지만 교실 네 칸만이 덩실하게 지어졌고, 운동장은 벼 포기가 아직도 뚜렷하게 보이는 논바닥입니다. 화장실도 땅을 파고 그 위에 말뚝을 박아 외를 엮고 벽을 발라서 칸만 막아 놓은 간이 변소입니다. 우리는 이런 학교에 다니기가 싫었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날은 우리 반 67명이 하나하나 책을 읽어서 읽기 시험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책을 잘 읽었으면 금방 끝이 났을 것인데, 시키면 뭉기적거리는 아이, 소리가 모기 소리만큼 하여 안 들리는 아이, 아예 읽으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만 오전 내내 읽기 시험을 보고 끝났습니다.




이튿날은 산수시험을 보았습니다. 나는 산수도 별로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래서 며칠이 지나고부터 우리는 날마다 나머지 공부를 하여야 했습니다. 날마다 책을 몇 쪽씩 읽고 또 산수 덧셈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후에 남은 아이들 중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읽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산수도 그까짓 것 문제도 없습니다. 날마다 선생님이 제일 먼저 마친 나를 귀여워하시며,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 주라고 하셨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도 정엽이가 제일 먼저 읽고, 집에서 공부를 많이 해왔구나. 이제부터 정엽이에게 먼저 검사를 받고 선생님한테 오너라.”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 나는 꼬마선생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읽혀보고 가르쳐도 주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집에 가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야기합니다. 이제 우리 집에서 수다쟁이라고 놀림을 받습니다. 선생님이 어찌나 좋은지 가끔은 선생님의 글씨도 흉내 내고, 선생님이 우리에게 지켜야 한다고 일러주신 것은 꼭 지켰습니다.

3월도 반이 훌쩍 지났을 때,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집에 가서 여러분의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여러분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의논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면 여러분이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도와서 집안 청소는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 선생님이 우리 동네부터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 우선 책보자기를 방에다 던져두고서 마당을 쓸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집은 닭을 기르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집안이 깨끗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오시는데 이렇게 더러운 집을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의 이런 속도 모르고 엄마는 나에게 “배고프다. 어서 밥 먹어라. 먼지 난다. 마당은 아침에 쓸어야 먼지가 안 나는 것이야. 놔두고 어서 밥이나 먹어”하고, 독촉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마당을 쓸었습니다. 어머니가 재차 독촉을 하십니다.

“어서 밥 먹으라니깐....먼지가 나서 밥도 못 먹겠구나.”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고 했어요. 마당이 더러우면 안 된다고, 우리들이 마당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정엽이가 마당 청소를 하는구나,”

어느새, 선생님이 집 앞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습니다. 나는 마당을 다 쓸지 못하고 들켜서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서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엽이가 아주 제 말을 잘 따르고 있어요. 틀림없이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에 우등생이 될 것 같아요. 요즘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지금도 보세요. 제가 학교에서 청소를 깨끗이 하라고 했더니 제 손으로 청소를 하는군요.”

나는 속으로 꾸중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다가 마음이 놓였습니다.

“잠시만 이리 올라앉으십시오. 이런 시골이라 무어 대접해 드릴 것도 없고, 계란이라도, 하나 드십시오”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몇 번이고 사양을 하시다가 선생님이 마루로 올라 앉으셨습니다.

나는 그때야 부엌에서 나가서 어머니의 곁에 붙어 서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살짝 엎드려서 선생님의 신발을 돌려서 놓았습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시던 선생님이 일어서 신발을 신으려다가 “어엉, 이거 정엽이가 또 한번 선생님을 놀라게 하는구나, 어느새 신발은 돌려놓았어. 학교에서 가르친 대로 빠뜨리지 않고 잘 하는구나”하시면서, 아주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말 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시 우리 선생님이 제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또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도와 드리는 것이 재밌어졌습니다. 처음에 무섭게만 생각했던 우리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고 잘 가르쳐 주시는 고마우신 선생님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저절로 공부하는 것이 신바람이 났고, 별로 애쓰지 않아도 공부는 쏙쏙 머릿속으로 잘도 들어갔습니다. 나는 이제는 오후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남아서 아이들을 가르쳐 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나는 이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속에 끼이게 되었습니다. 칠판에 나가서 내가 풀고 설명도 똑똑하게 잘하게 되었고, 책도 잘 읽게 되었습니다. 이제 무엇이든지 나서서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난 통지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습니다. 책을 못 읽어서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내가 얻은 성적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네 과목이 수이고, 나머지 전 과목이 우이었습니다. 거의 우등상을 받을 수 있는 성적입니다.

“정엽이가 아주 성적이 좋아졌구나. 처음에는 글을 못 읽어서 나머지 공부를 했는데,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 것은 그동안 날마다 남아서 나머지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동안에 정엽이가 아주 공부를 잘 하게 되었나 보다. 축하한다.”

이렇게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좋은 성적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가슴에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처음 선생님이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지금도 나머지 공부를 하는 뒤떨어진 아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나의 손을 잡아주어서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좋으니까 공부가 저절로 잘 되어서 날마다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이 처음 잡아주시던 그 따뜻한 느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좀더 열심히 하여서 3 학년이 될 때는 반드시 우등상을 받고 말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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