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안이든 점심 때가 되면 한 집안의 며느리는 분주하다. 부엌에서 지아비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점심 끼니를 준비해야 한다. 또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물을 조절하고, 가족을 위한 각종 찬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들에 나가 땀을 흘리고 있는 지아비와 가족들을 위한 정성을 다한 손놀림,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만큼 분주하다. 집안일은 사실 며느리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의 모든 구성이 내 일 네 일을 가리지 않고 함께 협력하면 그만큼 행복한 가정은 없다. 거기에다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면 그 가정은 큰 문제없는 행복한 가정인 것이다.
시어머니 혹은 시누이 사이에서 며느리로 인해 불협화음이라도 일어난다면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맑고 청명한 날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내리치기도 하면, 며느리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며느리의 일손은 더욱 바빠진다. 앞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를 걷어야 하고, 맛깔 좋게 잘 익으라고 햇볕에 열어놓은 장독대의 간장, 고추장 항아리 뚜껑을 가지런히 덮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넌방에서 새근새근 곤히 잠자던 아이가 천둥 번개에 그만 놀라 울기라도 하는 날엔 손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형편이다. 정말 열 손 이 있어도 힘든 상황이다. 며느리는 이리 뛰고 저리 뛴들, 혼자서는 이 사태를 다 추스를 수 없다. 더욱이 아궁이의 불이 꺼지기도 하는 날이면 아녀자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집안에는 욕되게 하는 일일 것이요, 밥 뜸을 들이다 때를 놓치기라도 하면 설익은 밥을 들어야 한다. 그때 가족들의 눈총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더군다나 비 맞은 빨래며 빗물이 든 간장 고추장은 고사하고, 우는 아이 달랠 일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이때 며느리의 어려운 처지를 가족이 조금이라도 헤아려 준다면 오죽 좋으련만….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 듯싶다.
사실 훌륭한 시어머니는 이런 며느리의 심정을 헤아려 주는 것이리라. ‘척하면 삼천리,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어머니가 한 가지 일이라도 거들어 준다면 며느리로서는 정말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이 감사한 일이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이해와 사랑에 감동할 것이고 모든 어려움도 감내할 만큼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다면, 아마도 부엌에선 요란한 불협화음이 크게 날 것이다. 이는 가족의 도움을 요청하는 첫 번째 신호인 셈이다. 그래도 반응이 전혀 없을 때가 문제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며느리는 또 다시 다른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비 오는 날, 밖에서 비를 흠뻑 맞은 누렁이가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부엌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온다. 한기(寒氣)를 느낀 탓인지 힘껏 몸을 좌우로 요동치면서 빗물을 휙휙 털고는 아궁이 앞에 넓죽 엎드린다. 그리고는 흠뻑 젖은 몸을 아궁이 앞에 바짝 엎드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 순간 며느리는 가족에게 마지막 구원의 신호를 다시 보낸다. 오수(午睡)를 즐기려는 누렁이의 엉덩짝을 부지깽이로 힘껏 내리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깨갱, 깨~갱 깨~애~갱”
애꿎은 누룽이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며느리의 어려운 처지를 알리는 마지막 구조신호인 셈이다. 부지깽이 세례를 받은 누렁이는 날벼락을 받은 듯 깜짝 놀라면서 비명을 지르듯 밖으로 내달린다. 이 지경에 이르면 며느리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것은 뻔한 일이요, 다른 가족에 대한 원망과 서러움으로 가득해 질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구원의 신호! 이 구조 요청을 헤아릴 줄 아는 진정한 시어머니가 그리울 뿐이다. 가정의 화목이란 것은 바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다. 따스한 말 한마디에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주고받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통계가 있다. 함께 살아가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는 얘기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물론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말에서 혹은 행동으로 서로간의 오해의 골이 깊어 결국에는 극단에 이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말 건강한 사회가 될 텐데…. 하지만 이 소원이 너무 요원(遼遠)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해 주는 사회, 바로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화목한 사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오늘도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내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필요하다. 가족의 생각과 마음을 배려하는 가정,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아량과 위해 줌이 있는 사회,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금 꿈꾼다.
내겐 며느리로 비견(比肩)되는 맑은 눈을 가진 서른 아홉 명의 학생들이 있다. 훌륭한 시어머니처럼 혹은 시아버지처럼 정말 그들을 이해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나에게도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릴지 모르는 일이다. 언제나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그들을 진정 돕는 좋은 시어머니처럼….
올 여름은 무척 덥고 제법 많은 비가 내릴 것이란 일기 예보가 있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며느리(?)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만의 아픔, 그들만의 고민이 무엇인지 열림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서려 한다. 그리고 느껴보려고 한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우산을 들고 힘차게 달려가겠다는 결심으로 오늘 하루를 다시금 시작한다. 좋은 시어머니처럼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위해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