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5 (금)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선생님 피!

“선생님, 혜경이가 피를 토했어요.”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에서 갑작스런 외침에 선생님은 웬일일까 하여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이들이 혜경이의 책상을 향해 모여들면서 교실 안은 어느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요.”
선생님은 차분하게 얘기를 했지만, 머릿속이 어지럽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신이 아뜩하였다. 선생님은 혜경이에게로 다가선다. 혜경이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데 책상 위에는 흥건히 고인 피가 교실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혜경이는 친구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피가 묻은 채 책상 바닥에 얼굴을 대고 얼굴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야, 우선 이것 좀 닦아야 하지 않겠니? 종해, 네가 좀 닦아 줘라.”
선생님은 우선 좀 닦아주게 해놓고서 옆 교실의 이 고장 선배선생님께 여쭤보기 위해서 재빨리 교실을 나선다.

“정 선생님, 아이가 벌겋게 피를 토하였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5학년 담임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정 선생님은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놀라지 마십시오.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하고 담임선생님을 앞서서 5학년 교실로 다가갔다.

정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서 책상에 엎드린 혜경에게로 다가가서는 “이런, 호동 00이 딸 이로구만, 아니 약이라도 좀 먹지 않고 이렇게 심해졌었구나”하시고 밖으로 나가더니 학교 일을 보는 영길군에게 “야 ! 영길이 어서 집에 가서 소금 한 주먹 가지고 와 ! 얼른”하고 다급하게 쫓는다.

“강 선생님, 이거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아마도 디스토마가 심해져서 피를 토한 모양인데 금방 괜찮아 질 거예요”하면서 강 선생님이 걱정을 하는 것을 안심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잠시 후 영길이가 굵은 소금을 한 주발쯤 가지고 달려 왔다.
“야 ! 이거 누가 김장 하니? 이렇게 많이 가져와?”

담임선생님도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서는데, 정 선생님은 혜경이에게로 가서 입을 벌리게 하고선 소금을 잔뜩 집어넣어 주고선 “입 꼭 다물고 있어. 잠시면 멎을 테니깐”하고 일어서면서 “강 선생님, 걱정하지 말아요. 저 아이 이 고장 사람들 대부분이 앓고 있는 디스토마에 걸린 것인데,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에요. 곧 피가 멎고 괜찮아질 테니 아무 염려 말아요.”

담임 강 선생님은 이런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정신없이 헤매고 있다가 선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간신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잠시 어수선한 틈에 어느덧 한 시간 공부시간은 다 끝나 버렸다. 담임선생님은 우선 아이들에게 “얼른 데리고 가서 손과 얼굴을 좀 씻어 주어라”하고 우선 씻도록 해두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에는 벌써 선생님들이 모이셔서 강 선생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만 넋이 나갔더군. 난데없이 공부시간에 아이가 벌겋게 피를 토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
정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고 있을 때, 강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섰다. 정 선생님께서 강 선생님의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많이 놀랐죠? 여기 와서 처음에 그런 이야기는 했지만, 막상 당하고 나면 걱정이 안 될 수 없죠. 그러나 걱정은 말아요. 시작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입안을 깨끗이 씻으라고 하면 금방 끝나는 것이니 아무 염려 말아요”하고 마치 동생이라도 되듯 안정을 시켜주었다.

강 선생님은 이런 정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정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발령 받아서 처음으로 당한 일이라서 어쩔 줄 몰랐는데, 이렇게 곁에서 가르쳐 주시고 친절하게 처리해 주셔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했더니, 정 선생님은 당연한 일을 뭐 그러느냐는 듯이 빙그레 웃으시며 “다른 지방에서 오신 선생님들은 모두들 한번씩은 겪는 일이에요. 이제 한 번 당해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알게 될 것이니 염려 말아요. 여긴 디스토마가 심해서 아이들도 대부분이 감염이 되어 있어요. 선생님들도 조심을 해야 할 거예요. 여기선 찬물만 마셔도 디스토마에 걸린다고들 그래요”하는 말을 듣고 강 선생님은 ‘정말 저렇게 무서운 기생충인 디스토마에 걸리지 않게 조심을 해야지’하고 다짐을 하였다.

물론 이렇게 무서운 기생충인 디스토마는 물로 옮긴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참게나 다슬기, 붕어 등의 중간숙주(기생충이 숨어서 사는 동물)를 익히지 않고 먹거나 잘 익히지 않았을 경우 우리 몸에 들어와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은 기본 상식이었지만, 이 고장은 어찌나 심한지 찬물만 마셔도 걸린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걸리기 쉬운 곳이라는 말이었다.

공부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강 선생님은 걱정이 되어서 얼른 교실로 가서 혜경이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아야겠다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교실에는 혜경이는 없었다.
“얘들아, 혜경이는 어디 갔니?”
“운동장에 나가서 노는데요.”

운동장 쪽으로 가서 창으로 내다보니 혜경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친구들과 함께 팔짝팔짝 뛰면서 팔방놀이(돌차기 : 돌을 차서 일정한 칸에 넣으면 점수를 따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강 선생님은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빙그레 웃음을 띄면서 다음 시간에 공부할 준비를 하였다.

정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가 이 디스토마에 걸려 있다고 해도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니 이 고장에 와서 잠시만 살다가 간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디스토마에 감염이 되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약 1개월쯤이 지난 7월 초순에 도에서 이 고장의 보건환경조사를 위해서 나온 사람들이 이 고장 사람들의 객담검사를 한다고 해서 선생님들도 모두 검사를 받고, 또 직접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달린 일손을 돕기 위해 학창시절에 생물반에서 이런 검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던 강 선생님이 함께 도와주기로 하였다. 1965년 아직도 우리나라의 보건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우선 먹고 살기에도 바쁜 어려운 국민들이 기생충 같은 간단한 질병에도 목숨을 잃기까지 하던 시절이었으니, 이 고장의 풍토병이라고 알려진 디스토마는 이 고장 전체 군민 건강의 적이 되어 있어서 도에서도 가끔씩 이렇게 실태 조사를 하곤 하였다.

“이 마을 분들은 대부분이 디스토마에 감염이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까지도 모두 감염이 된 상태라고 하여서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왔는데, 어제 하루 조사를 해보니 단 한 분도 감염이 안 된 분이 없더군요. 선생님께서 현미경을 사용하여 검사를 해본 경험이 있으시다니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생물반에서 혈액형 검사와 변 검사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아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 선생님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까지 계속 되는 검사를 같이 해본 결과 정말 이 고장의 모든 사람이 디스토마에 감염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디스토마의 위험성을 알게 된 강 선생님은 몹시 신경이 쓰여서 냉수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김칫국물마저도 함부로 먹지 않았다.

냉수만 마셔도 디스토마에 걸린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양칫물까지도 끓인 물을 쓸 만큼 조심에 조심을 하였다. 그러나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3개월마다 보건소에 가서 디스토마 감염검사를 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첫 발령을 받아서 만 1년 근무하는 동안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음식이나 무엇에 의해서 감염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2년 째 되는 여름 방학에 감염 검사에서는 강 선생님도 역시 디스토마에 감염이 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디스토마 구제약품이 생산되지도 않을 때라서 당시까지 아직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본에서 생산되는 약을 구해오느라고 무척 애를 썼다. 이렇게 어렵게 약을 구해 와서 먹기도 하고 치료를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원래 디스토마의 구제가 그리 쉽지 않은 것이어서 겨울방학이 다가오도록 간간이 객담에 피가 섞이곤 하였다.



12월 초에 군대에 입대하게 된 강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섭섭하여 아이들과 함께 사진관까지 가서 사진도 찍고, 오랜 이별을 준비하였다. 첫 발령을 받아서 근무를 한 이 학교와 아이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군대에 간다면 아이들과는 다시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3년 동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이 학교에 다시 발령을 받아 오기도 어렵거니와, 다시 돌아온 다고 하여도 이 아이들은 이미 중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되어 버릴 것이니 만나보기조차 어려울 일이었다. 아이들과의 이별을 하면서 몹시 섭섭하여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던 강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군대에 간다고 떠났던 강 선생님은 3일 만에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입영열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면서 부모님과 서글픈 이별을 하는 광경은 참으로 힘들었다. 당연히 다녀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떠나는 순간에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서도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입영열차에 오르자 이미 군대생활을 시작되었었다. 기간병들이 와서 인솔자가 된 이들은 마치 쥐새끼를 놀리는 사자와 같았다.

모두들 기가 죽어서 시키는 대로 울고 웃고, 노래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논산에 도착이 되었고, 저녁이라는 것을 군대식으로 배식 받아서 먹으면서 ‘이제 정말 군인이 되는구나’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목이 메어서 밥들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더구나 왜 그렇게 독촉을 하는지 밥이 넘어가는지 입에 떠 넣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이튿날 이제 군복을 지급 받고 군인이 되는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쿨룩, 쿨룩, 쾌액.”

강 선생은 심한 기침을 하더니 목구멍에서 커다란 가래가 뭉치로 넘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목구멍으로부터 나오는 가래를 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처음으로 지급 받은 군복들을 입느라고 부산한데, 이 복잡한 속에서 어디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강 선생은 입에 잔뜩 넘어온 가래를 삼켜 보려 했지만, 뭔가가 자꾸만 넘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으윽, 아악.”

강 선생은 그만 비명을 지르며 입안 가득히 고여 있던 것을 토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은 시뻘건 피였다. 옆에서 옷을 갈아입던 친구에게도 튀겨서 옷이 몽땅 핏빛이 되어 버렸다. 강 선생은 무어라 말도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야 ! 임마! 이런 병신 같은 자식아 ! 누가 너 같은 폐병쟁이를 군대에서 받는다고 기어 왔어? 빨리 꺼져 이 자식아. 저기 군의관에게 가봐. 당장 꺼지란 말이야 임마 !”

강 선생은 개돼지처럼 질질 끌려서 밖으로 나오자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버렸다. 피를 토한 얼굴을 씻지도 못한 채 피범벅이 된 얼굴로 땅바닥에 뒹구는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사냥터에서 화살을 맞아 뒹구는 짐승 같았다.

누군가에 의해서 목덜미를 끌린 채 들어선 방에서는 소독 냄새가 났다.
“군의관님, 이 자식 폐병 3기나 되는 건지 옷을 갈아 입으랬더니 왕창 피를 토하고 쓸어져 버렸습니다.”
“그래? 그럼 왜 여길 데려와 데려 오긴. 어서 데리고 가서 즉일 귀향 조치 취해. 여기 도장 찍힌 용지 있으니까 빨랑 데리고 가서 처리해!”
“넷.”

한마디 대답과 함께 강 선생은 다시 끌려서 어느 사무실로 갔고, 달랑 종이 한 장을 들고 찝차에 태워져서 훈련소 정문까지 실려 나오게 되었고, 마치 똥 묻은 걸레라도 된다는 듯이 떠밀려 내려서 정문을 통과하자 얼른 사라지라는 손짓과 함께 훈련소를 등져야만 하였다.

지난 가을 혜경이가 내 뱉었던 것과 같은 뻘건 피를 토한 강 선생은 이제 그 무서운 모습을 자기 자신이 당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펐다. 터덜터덜 걸어 나오다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왔다. 역에서 헌병에게 훈련소에서 준 표를 보이면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더니 들어오라고 하더니 손바닥만한 증명 한 장을 들려주면서, 저녁 늦게 떠나는 열차를 타고 가라고 하였다.

밤차로 고향에 돌아온 강 선생의 얼굴은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창백하고 맥이 없어 보였다. 모든 가족은 정말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을 하였다. 우선 학교에 돌아가서 귀향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입영으로 처리하여 휴직 발령이 난 것을 취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즉일 귀향 증명서를 들고 교육청에 들리니 이미 후임자가 발령을 받아 학교에 부임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불과 3일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12월 방학이 되고 2월에 발령이 나는 달이니까 그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한 반인데 담임이 두 사람이 되었다. 본래 담임이던 강 선생이 담임을 하고, 후임으로 온 분은 강 선생 동창 친구의 아저씨가 되는 분이어서 그냥 쉬시라고 하였다. 곧이어 방학이 되었고, 2월 개학이후 며칠 다니다가 금세 봄방학이 되었다. 이제 강 선생은 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이미 다른 사람이 발령을 받아온 뒤이었기에 두 사람이 한 반을 계속 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머지 두 달을 무사히 보내고 6학년이 된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이 돌아왔다. 이웃 군으로 발령이 나서 떠나는 날 우리 아이들과 강 선생님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학교에서 떠나는 인사를 하고 나서자 아이들이 버스를 타는 곳까지 약 1㎞나 되는 길을 따라 나왔다. 버스가 오고 강 선생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에 아이들은 버스에 매달리고 심지어 몇 몇 아이들은 버스 앞에 팔을 벌리고 막아서기까지 하였다. 버스는 몇 분 동안을 떠나지 못하고 기다렸다. 기사분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바쁜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강 선생은 너무 미안한 생각에 다시 버스에서 내려서 아이들에게 버스가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얘들아, 이제 그만 떠나자. 너희들이 아무리 이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선생님은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자 우리 잊지 말고 편지하기로 하자. 자 안녕!”

이렇게 해서 이 고장을 떠나간 뒤에도 아이들은 편지를 하고 늘 연락을 해주는 고마운 아이들이었다.

그 날 그 피를 토하던 혜경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피를 토하는 일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난 강 선생님은 끝내 군대생활을 하지 못하고 마는 불운한 젊은이였다. 그 고장의 무서운 향토병 디스토마 때문에 스스로도 피를 토했던 강 선생님은 가래만 뭉클 터져 나와도 ‘또 피를 토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는 겁쟁이가 되어 버렸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