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69년도 담임을 맡았던 한 어린이의 가정사에서 일어난 일을 기초로 만들어진 새미다큐형식의 동화입니다. 제 네번째 동화짐의 타이틀이 되기도 한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별나라
숙이는 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오늘 하루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청소 시간에는 내가 먼저 치워 주었어야 할 것을 내가 안 치운다고 트집을 부렸어. 그건 분명히 나의 잘 못 이었어. 나쁜 아이와 상대를 해서 다툰다는 것은 내가 잘 못한 것이겠지. 다음부턴 영수가 하기 싫다면 내가 해주어야지. 착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착한 일을 해야해. 내일부터는 꼭 내가 먼저 해 주어야지. 영수가 싫다고 말하기 전에 해 주어야지.’ 이렇게 생각한 숙이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 갑니다. ‘아, 난 정말 착한 소녀가 되어 가는 것일까? 틀림없이 착한 소녀가 되는 거야.’ 이렇게 혼자 좋아하며 대답합니다. 숙이는 눈알을 반짝이며 캄캄한 방안을 휘익 둘러봅니다. 수 십 개의 무서운 눈들이 숙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눈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위 아래로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눈, 어른들의 눈 모든 눈들이 반짝입니다. 세모난 눈도 잇고, 뱀 같은 눈, 토끼눈과 같은 동그란 눈, 잔뜩 부라린 성난 눈도 있습니다. 숙이는 무서워서 이불자락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들어가 버립니다. “아니야, 숙이는 착한 소녀이니까 무서워 할건 없어. 착한 숙이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어서 나와서 여기를 좀 보아요.” 가느다랗고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여 줍니다. “누구세요? 그렇게 속삭여 주는 사람은?” 숙이가 무서워서 빠끔히 이불자락만 들추고서 물어 봅니다. “숙이의 동무!” “숙이의 동무 ? 내 동무가 누굴까 ?” 숙이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내리고서 가만히 얼굴을 들어 쳐다봅니다. 무서운 눈들이 아직도 숙이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숙이는 다시 무서워졌습니다. 얼른 동무를 찾아야 하는데 나타나 주지를 않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숙이가 고개를 갸웃뚱거리면서 “어디 있을까?” 중얼거리면서 이리저리 둘러 봅니다. “여기야, 여기! 숙이야, 착한 숙이야!” 가느다란 목소리가 또 들려 옵니다. 숙이가 고개를 돌려보니 문구멍으로 가만히 얼굴을 내밀며 방긋이 웃고 있는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데 누구세요? 난 모르겠는데....?” 숙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어 봅니다. “나는 별나라에서 숙이 엄마의 심부름을 온 사람이에요.” 비단 같이 가느다랗고 해금 소리 같이 가냘프면서 엄마의 손길 같이 부드러운 소리가 어찌나 숙이는 저도 모르게 “예? 엄마의 심부름을 왔다구요? 우리 엄마는 어디 계셔요?” 숙이는 너무 반가워서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습니다. “저기, 별나라에 계신답니다.”
숙이는 올해 아홉 살로 서 3학년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숙이가 여섯 살이 나도록 숙이 엄마는 동생을 낳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 식구들은 엄마나 동생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논 다섯 마지기를 지으면서 초가 삼간에서 살망정 아무 걱정이 없이 사는 숙이네 집이건만 가끔가끔 아버지가 취하시면 어머니와 다투는 일이 생겼습니다. 더구나 숙이가 사내가 아니라서 더욱더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있는데 왜 또 동생이 필요할까? 왜 동생을 원할까 ?’ 숙이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도 친구들이 동생의 손을 잡고 아장걸음을 걸리는 것을 보면 “엄마, 엄마는 왜 아니 안나? 얼른 아기 하나 낳아.” 하고 졸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숙이를 꼬옥 껴안고 볼을 부비면서 귀여워 해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숙이는 ‘왜 동생이 필요해!’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숙이가 일곱 살이 되어서 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예쁜 달걀 모양의 얼굴 모습이며, 깔끔한 성격, 깨끗한 살결은 농촌의 아이 같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영리하여 공부까지 잘하니까 모두 귀여워 해주었습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가냘픈 듯한 숙이의 얼굴을 보며 유난히 귀여워하며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2학년에 올라 올 때는 6등이 되어서 5등까지 주는 우등상을 아깝게 놓치고 말아서 약간 시큰둥한 성격이 생겼습니다. 2학년이 되자 숙이는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숙이를 무척 귀여워하셨지만, 조그만 잘못도 엄하게 나무라시는 선생님을 숙이는 가깝게 대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아빠처럼 안겨 보고도 싶고, 엄마처럼 재롱도 부려 보고 싶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근엄하신 모습에 가까이 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럴 무렵에 숙이네 집에는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고대하던 동생이 생긴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숙이가 2학년이 되어 봄꽃이 피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엄마의 배가 불룩해 올수록 숙이는 동생이 생기기를 더욱 기다려졌습니다. 빨리 사내 동생을 하나 낳아 주셨으면 하는 것이 숙이의 소원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남자 동생을 업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기 때문에 어른들 보다 더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숙이의 소원과 다르게 그렇게도 기다리던 숙이의 동생이 태어나기 두 달쯤 전부터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원에도 가보고 약을 지어다 달여 먹어 보기도 하였지만, 큰 효과가 없이 자꾸만 야위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을이 되어서 집안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숙이는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뛰어가서 집안 일을 돌보았습니다. 그 조그만 손으로 할 수 있는 물도 긷고, 청소도 하고, 부엌에 불을 지치는 일도 거들었습니다. 엄마의 일이 걱정이 되어서 곁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웬일인지 엄마가 자꾸만 영영 어디론가 떠나시고 말 것 같아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잡수시는 것과 얼굴 빛을 살피는데 온 신경을 썼습니다. 어느 날 밤늦도록 숙제를 하다가 지쳐 쓰러져 누운 숙이는 잠결에 엄마의 심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에 취한 어린 숙이는 꿈결 속에서 들리는 엄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비명 같은 신음 소리를 지를 때에야 겨우 숙이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엄마는 몹시 아프신지 몸부림을 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도 엄마를 부축하고 등을 쓸어 드렸습니다. 숙이는 어쩔 줄 모르고 엄마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숙이야, 걱정 말아라. 동생이 태어나려고 그러는 것이란다.” 하시며 아버지는 걱정말고 자라고 말씀 하셨지만 숙이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곁에 붙어 앉아서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12월 중순이었습니다. 엄마는 새벽녘에 밝은 빛이 점점 퍼져오는 시간에 아기를 낳으셨습니다. “으앙, 으아앙.”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매우 기쁜 낯으로 어머니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들이다 ! 아가 고생 했다.” 할머니와 아빠는 매우 기뻐하셨고, 집안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숙이도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엄마도 야윈 얼굴로 누우셔서나마 기쁜 미소를 띄우시고 계셨습니다. 곁에 누워있는 어린 동생을 바라보시는 엄마의 눈빛은 한없이 사랑스런 인자함을 담뿍 머금은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병세는 날마다 점점 더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밥도 잡수시지 못하고 자꾸만 피를 흘리시기 때문에 아빠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와서 주사도 맞고 약도 주셨지만, 엄마는 끝내 다시 못 오실 세상으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어린 동생을 낳으신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숙이는 싸늘해진 엄마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무작정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도 없었고, 철부지인 숙이의 마음 속에 무엇인지 모를 불안이 한없이 울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숙이가 애처롭게 우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집안은 싸늘하고 쓸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린 젖먹이 동생 때문에 할머니는 항상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젖 달라고 울 적마다 할머니도 따라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빨리 새 엄마를 구해 들여야지 어떻게 저 어린 아이를 기를 수 있느냐 ?” “날마다 울음으로 보내는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하시면서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숙이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 마저 병이라도 드시면 어쩌려구 ?” 하고 마을 사람들과 집안 어르신들이 야단을 하시자 마지못해 아빠는 새엄마를 맞아들이기로 하셨습니다. 엄마가 돌아 가신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새 엄마가 오셨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그래도 모두 반가워하고 기뻐했지만 한편으로 숙이 엄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숙이 엄마의 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불쌍한 것,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더니만....” 하고 혀를 차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새엄마는 아직 젊고 아이도 없이 남편이 죽은 뒤 혼자서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새엄마는 숙이를 더욱 예쁘게 가꾸어 주셨습니다. 남보다 더 고운 옷을 사다 입히려고 애를 쓰시고, 더욱 곱게 차려 주시며, 머리도 예쁘고 멋지게 빗겨서 예쁜 핀으로 다듬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새엄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참으로 정성껏 숙이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엄마와 살던 때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단정해진 숙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숙이는 엄마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새엄마는 정말 나를 귀여워 해주세요. 그렇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새엄마가 속상해 하실까 봐서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 이렇게 울었습니다. 이럴 때면 아빠가 숙이를 꼭 껴안아 달래 주시곤 하였습니다. “우리 숙이 착하지? 숙이가 아빠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살면 말이지. 엄마가 숙이를 저 멀리 별나라로 데리고 간단다. 숙이 엄마는 저기 별나라에 가서 계신단다.”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시며 숙이를 달래는 아빠의 말씀을 듣던 숙이는 “아빠! 엄마가 계시는 별나라는 어디야 ? 알려 줘........” 하며 눈물을 닦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매달렸습니다. “엄마가 계시는 별나라를 알려 주면 나 안 울고 착한 소녀가 될 테야. 엄마에게 날마다 빌 테야, 착한 소녀가 될 테니 별나라로 데리고 가 달라고....” 숙이가 너무나 야무지고 분명하게 말하자 아빠는 숙이가 너무나 똑똑한데 공연히 불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숙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엄마는 저기 저 별나라에 계신단다.” 하고 은하수 곁에 있는 직녀성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숙이에게 몇 번이고 들려주었던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숙이가 알기 쉽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 뒤로 숙이는 가끔 밤하늘의 직녀성을 쳐다보면서 엄마를 생각하는 듯 두 손을 마주 잡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엄마 ! 저는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어요. 정말 착한 아이가 되겠어요. 나를 엄마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어쩌면 숙이는 이렇게 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숙이는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였습니다. 거짓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는 일은커녕 조금이라도 남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은 하려고 하지 않을 만큼 애를 썼습니다.
별님의 이야기를 들은 숙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님, 저를 엄마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 손을 잡으세요.” 하며 별님은 가느다란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숙이가 별님의 손을 잡자 이상하게도 몸이 공중으로 둥둥 뜨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고무 풍선이라도 되는 듯 무게를 잃은 몸뚱이는 머언 하늘 나라로 날아 올라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찌이이잉.” 하고 귓속이 울리면서 정든 집과 마을이 까마득하게 멀어져갑니다. 까만 밤에 묻힌 마을들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고, 희미한 호롱불빛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 갑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거나 땅을 봐도 어느 곳이 마을이고 땅이고 하늘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불빛이 하나로 모아지며 수많은 마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다가 영영 한 개의 별덩이가 되어 보입니다. 아득한 발아래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이 진주처럼 반짝이며 땅과 바다들이 유리 구슬의 무늬처럼 아롱져 보입니다. 숙이의 몸은 제트기보다도 더 빨라 저 멀리 은하수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잠자리에서 그냥 나와서 잠옷차림인 숙이었지만 밤바람이 도무지 춥지 않습니다. 동쪽으로 얼마나 날아갔는지 모릅니다. 날아가기를 계속하던 숙이는 은하수에 닿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은하수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파아란 가을 하늘처럼 흐르는 것 같지 않은 물소리는 웅장한 교향악을 피아니시모<아주 여리게라는 음악 용어>로 연주하는 것처럼 온 은하 세계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은하수 줄기가 뻗친 곁에 자리잡은 오리온 궁전은 마치 물 속에 서 있는 용왕님의 궁전인냥 찬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궁궐의 군데군데엔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런 장식과 수천 수만 개의 보석으로 장식된 휘황한 등불이 마치 밤늦게 남산에 올라 내려다본 서울 시내의 불빛인양 빠끔한 틈도 없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은하수 소리와 찬란한 오리온 궁전, 그 불빛이 은하수에 비친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면서 숙이는 마치 자신이 옛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공주라도 되어서 꿈의 궁전을 찾아온 듯 황홀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황홀한 오리온 궁전에 눈을 팔면서 얼마쯤 은하수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자, 은하수 언덕의 풀밭에는 커다란 황소가 눈알을 부라리며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아유, 무서워 !” 숙이는 별님에게 꼭 매달렸습니다. “걱정 말아요. 저건 별이랍니다.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 거예요.” 별님이 숙이에게 속삭이었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금빛이 찬란한 마차를 끌고 있는 마차꾼이 나타났습니다.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번쩍이는 모자까지 쓴 마차꾼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 숙이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마차꾼 아저씨 고맙습니다.” 숙이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벌써 마차꾼 아저씨는 아스라이 멀어져 버렸습니다. 기치를 타고 가면 전봇대가 뒤로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 듯 갖가지 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들 있었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들을 자랑하고 있었고, 제각기 갖가지 특징을 지닌 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몇 분쯤 달렸을까 ? 건장한 몸집의 무서운 철퇴를 치켜든 페르우스가 마치 수문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억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오른편으로 저 멀리 작은 곰이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엄마 곰에게 매달려 재롱을 부리는 보송보송하고 귀여운 강아지 새끼마냥 보드랍고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빠가 숙이에게 가르쳐 주었던 북두칠성이 있는 큰곰이 바로 작은 곰 곁에 커다란 몸집으로 무엇을 금방 덮칠 듯 서 있었습니다. 번쩍 번쩍 빛나는 일곱 개의 별이 국자 모양으로 빛나고 있는 별자리입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에는 엄마와 함께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하며 세어 보기도 하였고, 위에서 두 번째 별의 바로 옆에 매달리듯 있는 조그만 별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며 보인다는 숙이의 대답에 “숙아 눈이 아주 밝구나 !” 하며 칭찬을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큰곰을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던 숙이는 깜짝 놀라서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옛날 에디오피아의 왕비였다는 카시오페이아가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 왕관에 보석이 밤하늘의 별처럼 박힌 옷을 입은 채 인자한 웃음을 띄우면서 서 있었습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캐패우스왕과 카시오페이아 왕비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카시오페이아공주가 무서운 괴물에게 붙잡혀 있을 때 용감한 캐패우스 왕자님께 구원을 받던 그 카시오페이아가 늠름하게 보여 숙이는 얼른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별님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해서 왕비곁을 떠나자마자 금방 용감한 캐패우스 왕이 수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궁궐 저 멀리에는 바위틈에 숨어사는 도마뱀이 징그러운 몸체는 바위틈에 숨긴채 뾰족이 내어다 보면서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숙이는 온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습 니다. ‘하늘 나라에는 참으로 별의별 것들이 다 있구나.’ 생각을 하면서 하늘의 한 복판을 달리던 숙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우뚝 멈춰섰습니다. 무서운 독수리가 날개를 펴며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걱정 말아요. 저건 별이라니까요. 갈수록 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을 거예요.” 별님이 속삭여 줍니다. 숙이는 아름다운 별들의 모습에 기쁘면서도 서울 구경을 나선 시골 아이처럼 자꾸만 두리번거려지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얼마쯤 달렸을까 ? 눈앞에는 아름다운 백조가 우아한 보습을 뽐내면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백조로군요.” 숙이는 별님께 속삭이면서 가까이 갔습니다. 백조의 곁을 지나자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가 황홀하게 해줍니다. 숙이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별님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집들은 모두 훌륭한 궁궐 같고 푸른 숲에 사여 절간처럼 조용했습니다. 거문고 마을에서 가장 큰집인 직녀네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직녀의 집에 들어선 숙이는 안내하는 별님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황홀한 꽃들이 가득찬 정원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아직 꽃이 피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일년 내내 아름다운 꽃과 열매 속에 묻혀 사는 천당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숙이는 본 채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숙이 엄마가 하얀 옷을 입고 아름다운 검은머리를 묶어서 늘어뜨린 채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습니다. “엄마 !” 숙이가 반가워서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습니다.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두 볼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미친 듯이 엄마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비비대면서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엄마의 다리를 움켜잡았습니다. 엄마의 가슴에 안길 적마다 콧속에 스며들던 향긋한 엄마의 냄새가 가슴속에 가득 스며들어 옵니다. 가슴이 터질 듯 부풀은 마음에는 더욱더 엄마의 냄새가 퍼져 옵니다. “엄마 ! 아빠가 일러 줬어. 엄마가 여기에 살고 있다고......” 숙이가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으나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숙이를 만난 것이 기쁘지 않으세요? 엄마...?” 숙이는 울었지만 엄마는 아무 대꾸고 없으십니다. 숙이는 엄마가 정말 반갑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물이 그칠 줄 모릅니다. “엄마, 나빠 ! 엄마, 나빠 ! 난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 엄마가 보고 싶어서 얼마나 울었다구.....” 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던 숙이는 흐르는 눈물을 양팔로 닦으면서 원망스런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 향기롭던 냄새로 가득 차 부풀었던 기쁨은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듯 숙이의 가슴은 텅 비어 찬바람이 휑하니 스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무 대답도 없이 엄마는 천천히 숙이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소리도 없이 천사인 양 옷자락만 펄럭이면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 갔습니다. “엄마 ! 어디로 가세요 ? 엄마아 !” 숙이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없었습니다. 캄캄한 방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문구멍 사이로 별님이 살며시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뱁새가 와서 창살에 앉더니 문구멍을 뚫기 시작하였습니다. “코콕, 코콕코코.” 숙이는 약간 화가 났지만 만약 소리라도 치면 뱁새가 놀랄까봐 그냥 가만히 놓아두고 말았습니다. 그 문구멍으로 별님이 미소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쥐고 멀리 서쪽 하늘을 향하여 직녀성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엄마, 숙이는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렵니다. 엄마의 곁으로 갈 때까지 아빠의 말씀대로 착한 아이가 되겠습니다.” 조용히 기도를 마친 숙이는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도 닦지; 않은 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불자락을 들추고 자리에 듭니다. “엄마, 제가 아직 착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못되었습니까? 더욱더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엄마, 이 다음에는 그렇게 모른 척 하지 마시고 한 마디라도 말씀해 주세요. 엄마, 이렇게 진심으로 빌께요.” 문구멍으로 미소를 보내던 별님도 벌써 자리를 옮겨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숙이는 두 손을 모아 잡고 가슴 위에 얹어 놓으면서 조용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를 만났을 때의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을 되새기며, 엄마의 인자하신 모습과 웃음을 띈 모습이 눈앞에 선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