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光化門)은 조선왕조의 상징이다. 통치의 상징물이다.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한 일제는 전각을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었다. 그럼에도 광화문은 여론의 반대가 워낙 거세 헐지 못하고 건춘문 옆으로 옮겨 놓았다. 그것이 6·25전쟁 때 피폭을 당해 현판도 소실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근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복원하고 친필 한글 현판을 단다.
그동안 광화문은 옛 모습이 아니었다. 1990년 복원을 시작했다. 장장 20년 간 이어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은 2010년 8월 15일 광복 65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드디어 조선왕조의 법궁(法宮ㆍ임금이 머물며 정사를 돌보는 궁궐)으로 건립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복원이 완성되었다. 복원 사업에는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현판 제막식이 하이라이트였다. 광화문 현판은 1866년 고종 중건 당시 영건도감(營建都監·조선시대 국가적인 건축공사를 관장하던 임시관청)의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것을 복원했다.
84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다. 경복궁 복원은 단순한 문화재 복원 사업이 아니었다. 일제에 난도질당한 민족 자존심과 민족정기의 회복이자 잃어버린 역사를 재건하는 대역사였다. 정부가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 광복절을 맞이하여 광화문광장에서 경축식을 열면서 현판 제막식을 함께한 것도 우리 역사를 되찾는다는 의미를 둔 것이다.
그러나 8·15 행사에 맞춰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한 탓인지 복원의 꽃인 현판에 금이 갔다. 판재 중 불량 목재가 끼어 있었다. 숱한 전문가들과 장인이 함께 참여했다는데 그런 일이 발생했다. 현판 제작비는 고사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훼손되었다. 복원 석 달 만에 금이 간 광화문 현판을 결국 새로 만들기로 했다.
새로운 현판 제작을 앞두고 글씨를 새로 쓰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광화문 현판은 임태영이 쓴 현판을 디지털로 복원한 것으로 생동감이 없다는 것이다. 광화문 현판은 나라의 얼굴이랄 수 있는데 복사해 확대한 것이라 죽어 있는 글씨다. 실제로 현재의 글씨는 획이 가늘어 힘이 없고, 무엇보다도 육필(肉筆)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다보니, 고졸하고 예스러운 멋도 없다. 그리고 임태영의 글씨 자체가 광화문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차라리 박 대통령의 한글현판이 월등히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앙일보가 원로·중견 서예가 14명을 인터뷰한 결과(2011년 1월 13일자 보도)도 11명이 현판 글씨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글씨를 바꾸자고 한 11명 중 8명은 현대의 서예가가 새로 써야 한다고 답했다. 3명은 새로 쓰거나 추사 등의 글씨에서 집자하자고 답했다.
광화문 현판을 현존 서예가가 다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누가 써야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현존 서예가가 쓰면 복원의 의미도 퇴색되고 역사성도 없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 하자는 주장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김정희가 시대를 초월한 학자라고 볼 때 복원과 역사성이 함께 있어 앞의 방법보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훈민정음을 집자하자고 제안한다. 이번 조사에서 근원(近園) 김양동(68) 선생님도 우리 문화의 주체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훈민정음을 집자를 주장했다. 훈민정음의 집자는 역사성이 있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살려 주는 방법이다. 이 글씨는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우리의 자랑이다. 서예가들은 광화문 현판을 바꾸면서 원래 이름인 한자를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즉 광화문은 과거의 광화문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글을 쓰는 건 잘못이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편협한 사고다. 현판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마당에 새로 제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 현판은 앞으로 수백 년 이상 그곳에 걸려 있게 된다. 앞으로의 역사가 더 중요하다. 더욱 최근 서울시는 세종대로를 한글 상징 거리로 꾸밀 계획이라는 보도다. 국가 상징 거리인 서울 세종대로 주변이 한글과 관련된 마당과 공원 등을 갖춘 한글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새롭게 꾸며진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의 출발점이 되는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문화재청은 현판제작에 대한 자문위원회 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국가적 현안으로 서예가에게만 물을 문제가 아니다. 또 광화문 현판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복원을 꼭 옛날과 똑같이 한다는 좁은 사고도 버려야 한다. 현판 글씨 문제는 세종로 일대의 한글 공원과도 함께 일을 추진하면 답이 명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