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님, 앞으로 S를 담임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많을 거예요. 아버지께서 가끔씩 술이 취해서 학교로 오시거든요. 담임선생님께 어떤 행패를 부릴지 모르니 그런 일이 있으면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얼른 교무실에 연락하셔요.” 동료교사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는 교사경력 5년차에 갓 결혼을 하고 새 학교로 옮겨 6학년 담임을 맡고서였다.
S는 나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3살 정도 많았고 키와 몸집이 큰 편이기는 했으나 말수는 적은 편이었고 급우들에게 힘을 쓰는 일도 없었는데 아이들이 S에게 무엇이든지 양보하고 반장까지 만장일치로 뽑아 주는 것을 보고 더욱 S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는 학교 급식을 하지 않을 때였는데 S는 거의 도시락을 가지고 오지 못하였다. S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지난 학년 때부터 밥이며 반찬을 조금 넉넉하게 싸 주셔서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다. S로 인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점심시간. 어떻게 하면 점심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고민 하던 중 드디어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조용한 점심시간에 갑자기 크게 울먹이는 소리가 난 것이다. 알고 보니 S가 H의 밥을 거의 다 먹어버린 것이었다. 그날따라 S가 배가 너무 고팠던지 밥을 너무 많이 먹어버린 것이 그 이유였다. S는 아무 말 없이 운동장으로 나갔고 H의 자리로 갔을 때는 벌써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괜찮아요”하며 도시락을 정리하고 S를 따라 운동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지금까지 그 일은 가장 마음 아팠던 일로 남아 있다.
S와 생활한지도 두 달이 지났다. 따뜻한 5월이 시작 되어 학급의 분위기도 한층 밝아져 있을 때 웬일인지 S가 하루, 이틀 결석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S가 사는 집을 아는 아이들이 없었다. 동네 어른들께 여쭈어 S가 사는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 마을의 언덕바지, 덩그러니 있는 비닐하우스 안이 S가 사는 집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판넬이 하나 놓여있고 땅바닥에는 솥단지 하나, 그릇과 수저 몇 개, 석유곤로가 전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여기서 어떻게 겨울을 났을까? 솥을 열어보니 감자가 몇 개 떠 있고 물이 솥에 가득 부어져 있었다. 도대체 문을 열어놓고 어디에 간 것일까? 그럼 S의 아버지는….
다음 날 S가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다시 찾았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S를 발견하였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중학교 형들과 어울려 놀고 다녔다고 한다. 아버지는 몸이 아프셔서 친척집에 가 계신다고 하였다. 이불을 한 쪽으로 밀고 S와 앉아서 그동안 수업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며 친구들과 지내는 이야기 등을 함께 나누었다. 말을 잘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 S의 마음상태를 알 수 있었다.
학교에 돌아와서 교장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직원회 시간에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S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보고 하였다. 어린이회를 통하여 모금운동이 전개되고 교사들도 이에 힘을 합하였다. 학교 측에서는 금전을 맡을 가족이 없어 담임이 맡아서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더욱 책임감이 느껴졌다. S의 소심한 성격을 아는 터여서 어떤 도움을 받을 경우 거부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물건이나 반찬 등을 편지를 간단하게 써서 비닐하우스 앞에 놓아두었다.
그 후로 S에게 많은 관심이 갔던 것은 사실이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S는 6학년이지만 중 3정도의 나이이다. 사춘기를 힘겹게 겪고 있을 S의 마음을 그 누가 알랴. 다행히 운동을 상당히 좋아하는 S에게 작은 학교의 운동장은 너무나 좁았다. 운동장을 바라보며 S가 뛰고 있으면 그저 안심이 되었다. 운동을 할 때면 아버지께서 아픈 것과 애틋한 가족이 없는 것도 잠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2학기 때부터 도교육청에서 시범으로 운영하는 급식 학교가 되었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성적도 점점 향상되었다. 졸업을 할 때가 다가오자 S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짐을 느꼈다. 졸업에 대한 불안감이라고나 할까. 주변의 도움으로 입학금 및 교복 등 S가 중학교에 갈 모든 외적준비가 다 되어 있었으나 내적 마음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드디어 졸업식! 어떻게 된 일인지 S가 졸업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날 예행연습에서 상장 받는 연습도 잘 마쳤는데. 졸업식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늦게라도 오겠지’하는 마음으로 계속 두리번거리며 기다렸다. 혹시 사람들 틈 사이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동료 교사에게 부탁하여 S의 모습이 보이면 연락해 달라고 하였다. 졸업식이 끝난 후, 졸업장을 만지면서 “선생님!” 하고 S가 들어설 것 같은 느낌에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졸업장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S가 나타나기만을 계속 기다렸다. 결국 S는 나타나지 않았고 ‘어떻게 S가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원망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S가 잊혀지는 듯 했다.
3년이 지난 후, 전화가 왔다. 틀림없는 S의 목소리였다. 약속장소로 뛰어 나가는데 가슴이 마구 뛰었다. S에게서 초등학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한 청년 S가 되어 우뚝 서 있었다. “왜 그랬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니?”라는 물음에 찾아 온 용기가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 터인데 그냥 묵묵부답이다. 결국 이유를 듣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1년 전에 돌아가셨고 지금 기숙냉동설비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 너는 뛰어난 기술자가 될 거야. 아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잘 택하였구나! 그래도 학업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니 기회가 오면 꼭 꿈을 이루어 보도록 하렴.” 둘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 시간이 두 시간을 넘기고 있었지만 늘 말이 없는 S와 대화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갈 거리가 멀다고 일어서서 저녁 식사비를 계산하려는데, “선생님, 다음에는 제가 꼭 사 드리겠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기특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나도 모르게 하하 웃으며 다 큰 청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싸늘한 날씨에 얇은 점퍼를 입은 S가 한없이 측은하여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갔다. “또 연락할거지?”하니, “네”라고 말해 놓고 20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 종무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