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비늘이 반짝인다. 하오의 햇살을 받은 잔잔한 수면은,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영롱한 유리파편을 흩뿌려놓은 듯 반짝인다. 하늘과 구름과 전각이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연못에 잠기어 있다. 사람들이 거꾸로 선 채 경내를 거닌다. 자칫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곳이 선계이거나, 아니면 심판을 받기 위해 옥황상제 앞에 불려온 명경대쯤으로 착각할 듯싶다.
눈이 부시다. 부신 눈을 들어 원경을 훑는다. 그때 오래되어 퇴색한 낡은 나무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佛·影·寺!
전설에 의하면 법당 뒷산에 있는 미륵상 바위가 이곳 연못에 비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불영사의 연못은 아름다운 여인의 손거울처럼 저 혼자서도 맑고 투명하다. 빽빽하게 둘러친 울창한 숲과 그 안에 보물처럼 숨겨진 호수와 전각들은 8월의 찌는 듯한 더위를 무색케 한다. 마침 점심때가 지나 8월의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건만, 불영사의 경내는 오히려 서늘하다. 군데군데 심겨진 정원수와 전각의 단청들이 컴퓨터 그래픽을 보는 듯 신비롭다.
나는 잠시 연못 근처에 기립해 있는 전각에 오른다. 난간마다 섬세하게 조각된 불사의 문양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아름드리 배흘림기둥에는 천년의 세월을 인내한 흔적이 역력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원을 마음에 담고 쓰다듬었을 기둥에는 그들의 손때가 묻어 윤기가 흐른다. 마침 중년의 사내 셋이서 전각에 걸려 있는 편액을 바라보고 있다. 고색창연한 편액의 그윽한 색깔과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어 냈음직한 사내들의 뒷모습이 불영사의 풍경과 어울려 하나가 된다.
먼저 대웅보전을 알현하기 위해 5층 돌계단을 오른다. 대웅보전 댓돌 아래 좌우에는 커다란 거북이가 귀두만 내놓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방문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참으로 신기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몸통은 대웅전 바닥에 묻혀있어 마치 거북이가 절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불영사는 사방팔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늘 화재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불이 자주 났다고 한다. 예부터 거북이는 수신(水神)을 의미하므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기원의 의미로 묻어놓은 듯하다. 실제로 목조건축물 상량문에는 반드시 '용(龍)'자와 '귀(龜)'자를 새겨 넣는데 그 이유도 실상은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새삼 조상님들의 삶의 지혜와 철학에 고개가 끄떡여지는 순간이다.
대웅전 꽃살문이 활짝 열려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대리석 댓돌 위에 올라 부처님께 합장한다. 영상회상도를 배경으로 세 분의 부처님께서는 인자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숙한 얼굴로 방문객을 맞는다. 문득 법당 안으로 한 줄기 바람이 인다. 냄새가 난다. 송진냄새 같기도 하고 알싸한 향내음 같기도 하다. 피어오르는 향내 너머로 보물 제1272호인 영상회상도가 보인다. 석가모니께서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석가여래께서는 붉은 옷을 입으시고 오른쪽 어깨를 훤히 드러낸 채 근엄한 자세로 앉아 계신다. 손가락은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으로 이 땅의 모든 마귀와 악업과 번뇌를 멸하는 모습이다. 석가여래의 주변으로는 10대 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열되어 있다. 276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구도와 채색이 선명하여 조선 영조 때의 작품이란 것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자꾸만 세 분의 부처님과 영상회상도 속의 석가모니를 우러른다. 저분들은 어떻게 해서 수많은 번뇌와 삶의 미망들을 끊어낼 수 있었을까. 저분들에게도 분명 잡고 싶고 곁에 두고 싶은 간절한 그 무엇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모든 번뇌를 극복하고 진리와 소통을 이루고자 달려가신 형극의 길.
아, 나는 새삼 머리를 숙인다. 진리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작금의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고 하지만, 내 눈엔 도무지 암흑이다. 아마도 내 마음이 너무 어둡고 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유에 눈이 멀고 자극적인 메시지에만 귀를 기울이다보니 정작 참 진리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비우면 비울수록 밝음이 더하고 버리면 버릴수록 청정해 진다는 부처님 말씀을 믿고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그렇게 털어 내 버리리라 스스로 다짐해본다. 부처님께 다시 한번 재배하고 대웅보전을 나선다.
불영사의 햇살은 이제 석양으로 기운다. 해질 무렵의 불영사 연못은 다시 황금빛 파편으로 출렁인다. 달밤에 소리 죽여 흐느끼는 은어떼처럼 석양은 그렇게 불영사 연못에 어린다.
저 멀리로 비구니 한 분이 석양을 등에 진 채 경내를 거닌다. 석양에 을비친 회색빛 가사자락에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풍긴다. 고결한 자태 이면에는 범인들은 알 수 없는 굴곡진 삶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파르라니 빛나는 삭발처럼 슬픈 그 이름 비구니! 사바세계에서 불심을 찾아 수만 갈래의 길을 떠도는 고독한 이름 비구니! 문득 '비구니 아닌 비구니'란 시가 생각난다.
허상을 향한 손짓이
배회하는 무상무념의 길은 무겁다
길을 걷다가도 열리는 눈물샘은
비울 수 없는 마음속에 잡념을 채우고
내려앉은 어둠이 휘청거리는 골목길에서
풀어진 신발 끈처럼
또 다른 마음을 파헤치고 있다
얼마쯤 걸어야 끝이 보일까
목젖 아래 타 들어가지만
깊이를 알 수가 없는 우물과 같아
목마름을 더하고 있을 뿐
거머쥔 손안에 들려진
나뭇가지가
나를 채찍 해야 할 부질없음이여.
마루마다 반질반질한 절실함이 흐르고 마당에는 빗자루가 쓸고 간 흔적이 정갈하다. 한 방향으로 늘어선 빗살무늬의 땅바닥을 보면서 비구니들은 비질 한번을 해도 경지가 있구나 생각되어 새삼 경외감마저 든다. 저 슬프도록 아름다운 비질자국을 보며 나그네는 어느새 불심에 빨려들고 있었다.
경내에서 마주치는 비구니 스님들 모두가 한 송이의 연꽃 같다. 아담한 키에 갸름한 얼굴 사슴처럼 긴 목과 선한 눈망울. 어느 곳 하나 맺힌 곳 없이 시원하게 흘러내린 아름다운 콧날!
나는 잠시 무엄하게도 회색빛 가사자락에 가려진 여승들의 자태를 탐닉하고 말았다. 그때 두두둥∼! 북이 울린다. 불영사의 석양과 비구니 사이에서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삼라만상을 깨우는 법고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성불하소서, 성불하소서! 세상 풍파에 얻은 상처 부처님 앞에 공양하오니 씻은 듯 치유되고 비운 마음으로 눈을 뜨니 법당 뒤 병풍처럼 서 있는 절벽으로부터 세 분의 부처님이 나를 보고 미소짓네."
나는 전심법요의 한 구절을 암송하며 천축산 불영사를 내려오고 있었다. 멀어지는 나그네의 등뒤로 부처님의 성문(聲門)이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인생은 하늘에 부는 한 줄기 바람과도 같은 것. 아, 부질없도다. 부질없도다. 세상 욕심 참으로 부질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