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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현자들의 평생공부법


중국의 현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공부했을까?

-배우지 않는 것은 태어나지 않으니만 못하다. 왜냐하면 무식은 불행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플라톤

『현자들의 평생 공부법』은 공자에서 모택동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특별하지만 아주 평범한 공부법을 소개하고, 공부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마천의 <사기> 속 인물 (공자. 맹자. 사마천. 제갈량. 한유. 주희. 고염무. 정섭. 노신. 모택동)과 중국 역대 명인들 10명의 공부법을 소개한 이 책은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공부했으며, 그들의 삶에 공부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한 책이다.

또한 독서 관련 어록과 고사성어를 통해 죽은 지식이 아니라 현실에서 유용하게 쓰일 실질적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현자들의 공부와 그들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생각해 보며 복습하는 의미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저자 김영수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중국 전문가로, 지난 20년 동안 중국을 100여 차례 다니며 중국사의 현장과 연구를 접목해서 집필한 책이다.

성공한 리더는 모두 독서가

세계적인 기업가인 빌 게이츠는 매년 독서 주간을 정해 놓고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칩거 생활에 들어간다고 한다. 독서 목록을 정해 놓고 몰입해서 읽고 휴식을 취하며 사업 구상을 새롭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인생을 재점검하기 위해서다.

정규 교육과정은 6개월도 되지 않은 링컨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된 것은 독학으로 일군 공부의 바탕이 된 독서력이다. 그는 매년 읽어야 할 책을 자기 키만큼 쌓아놓고 읽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정약용을 비롯해 훌륭한 석학들도 모두 공부와 독서의 달인들이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있는 동안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공부를 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세상을 움직인 리더들은 하나같이 독서가였음을  역사가 증명하지 않은가.

교육강국 한국, 독서력은?

올해는 정부가 출판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국민독서율 제고를 위해 제정한 책의 해이다. 2011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0명 중 3.5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으며 오히려 2007년 수준보다 낮다고 하니 큰일이다. 살기가 힘들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지 모르지만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바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일부터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성인이나 학생들의 독서 수준이나 책값에 들이는 문화비는 부끄러운 수준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책을 직접 사서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 시설이 지역마다 들어서 있고 학교에도 기본 시설은 다 갖추어져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으니 주머니 사정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은 마음과 의지의 문제다. 국가에서는 학생들의 독서력 향상을 위해 독서이력을 성적에 반영하고 독서종합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매년 학교 예산의 4% 이상을 도서 구입비로 책정하도록 의무조항까지 두고 있다.

여기에 지역 교육청마다 독서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조사되는 독서 관련 통계 조사를 보면 그 성과가 크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인다. 결국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분위기에서 자란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독서 태도가 은연중에 습관이 되어서 책을 좋아하는 경우를 학교 현장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공부법과 독서 태도를 모두 소개하지는 못하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요약하는 방법이나 쓰는 방법은 독서나 공부 방법 중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모택동의 충고를 실천하고자 읽는 동안 메모를 함께 한 것이다.

장량의공부, 수양 병행법 (66~68쪽)

장량은 신비한 노인을 만나 몇 차례 시험을 거친 끝에 <태공병법>을 전수받았다. 이 과정은 세상사가 한순간의 의기만으로는 풀리지 않으니 큰일을 위해서는 먼저 정신적 수양을 통해 일시적 울분과 치욕을 참고 드러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 계기였다. 여기에 <태공볍법>을 깊이 있게 공부함으로써 자신의 사상과 영혼을 개조해 차원이 다른 책략의 대가로 거듭나는 한편,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사용해 문제를 볼 줄 아는 철학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장량은 말 그대로 한 왕조의 '설계자'로 한나라 개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역대 왕조의 수많은 개국공신과 달리 공신 숙청이라는 불행과 비극을 피했다. 여기에는 장량의 공부와 수양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의 현명한 은퇴는 두고두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천하를 구하는 실질적 공부와 정신 수양을 병행한 장량의 공부법에 새삼 주목하는 것도 출세해 남을 돕고 나아가 세상을 구제하기는커녕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인간이 판을 치는 지금 현실과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공부가 깊어지면 수양의 단계로 진화하고 또 진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장량을 통해 배우고 깨닫게 된다. 그는 입버릇처럼 "부귀와 명예를 다 얻고 누려으니 세속의 일일랑 떨쳐버리고 적송자(전설 속 신선) 를 따라 고고히 노닐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정말 그 말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은퇴했다. 그의 사당에 남아 있는 '지지知止'(멈출 때를 안다)와 '성공불거成功不居'(성공한 곳에는 머무르지 않는다)같은 글자를 새긴 기념물은 장량의 이런 정신적 경지를 대변한다.

편작의 '과학적 통합 공부'(81~82쪽)

편작은 제나라 환후(환공)의 안색만 보고도 그가 얼마 뒤 사망할 것을 예견했는데, 당시 환후는 편작의 진단을 무시하다 일을 당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편작은 불치병 여섯 가지를 언급하며 병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를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병의 징후를 미리 알아 좋은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병은 얼마든지 낫는다. 사람들은 병이 많은 것을 걱정하고, 의사는 병을 치료할 방법이 적은 것을 걱정한다. 불치병 여섯 가지가 있다. 교만방자하여 병의 본질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불치병이다. 몸은 가볍게 여기면서 재무리 아까워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불치병이다. 입고 먹는 것을 적당히 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 불치병이다. 음양이 함께 있어 오장의 기가 불안정한 것이 네 번째 불치병이다.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약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다섯 번째 불치병이다. 무당의 말만 듣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 불치병이다.

이 가운데 하나만 보여도 치료하기 매우 어렵다. 편작은 진단의학을 주로 하여 인간의 질병에 관한 한 모든 의료 분야를 섭렵한, 말 그대로 명의 중의 명의였다. 배우고 익힌 의술을 특정 지역, 특정인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고루 베푼 봉사 정신이 투철하 훌륭한 의사이기도 했다. 여관 관리인에서 명의를 거쳐 신의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떤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의료 행위를 보면 공부의 정도와 갚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본분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언제 어디든, 누구에게즌 달려가 자신의 의술을 서비스했다. 그런 편작은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의술을 시기한 진나라 태의령 이혜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자신의 죽음만은 편작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일까?

공자의 공부법, 독서법

『논어』「계시편」에서 공자가 "나면서 도를 아는 사람이 최상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요, 벽에 부딪혀 배우는 사람이 그다음이다. 벽에 부딪혀서도 배우지 않는 자는 최하라 한다" 했다. 그는 또 『논어』「위정편」에서는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고 했으며 자신의 공부 경험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며 "내가 일찍이 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 자지도 않고 생각에 빠져보았으나 이익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하다. (『논어』「위령공편」) 이는 공부와 생각의 균형과 조화를 지적한 고백이다.

『논어』를 중심으로 공자의 공부법을 좀 더 소개해보면,

첫째, 좋아하고 즐겨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표현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면 '앎'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둘째, 넓게 배워서 요점으로 돌아와라 '넓게 배워 많이 안다'는 깊이 있는 공부나 학문을 위한 기초가 된다. 크고 높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터를 넓고 깊게 다져야 하는 이치와 같다.

"지식인이 고전을 두루 배우고 예로써 요약한다면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논어』「옹야편」) 요즘 공부나 독서는 지식 습득이 문제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지식을 말 그대로 원 없이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문제는 이 지식의 요점과 핵심을 파악하는 요령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공자의 공부법을 시사점이 크다.

셋째, 배우고 수시로 복습하라 공자는 학문을 위해 독서해야 한다며 독서만을 위해 독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배운 것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시경』300편을 다 외워도 정치를 맡기면 처리하지 못하고, 사방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논어』「자로편」) 복습해서 응용력을 기르라는 말이다.

넷째, 공부와 생각을 결합하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공부는 대단히 위험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공부와 생각은 자동차와 브레이크의 관계와 같다. 지식 만능주의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깊은 생각이 함께하는 참 지식은 남을 돕지만, 생각 없는 지식은 자기를 과시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남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 없는 얄팍한 지식과 한때의 경험에 집착해 변화하는 세상과 인심의 흐름을 무시하는 꽉 막힌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지금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다섯째, 공부와 실천을 결합하라 공부의 종착점은 행동이자 실천이다. 배우고 생각한 것을 자신의 삶에서, 나아가 세상 속에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으로 배움은 끝난다.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노력할 때, 인간의 고귀함이 빛나고 세상은 좀 더 밝고 따뜻하게 변화할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독서다. 공자는 "덕을 닦지 않는 것, 열심히 배우지 않는 것, 옳은 것을 듣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 좋지 않은 언행을 고치지 않는 것, 이런 것이 나의 근심거리다"라고 고백했다. (『논어』「술이편」)

여섯째, 신구 지식을 연계하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대변되는 공자의 신구 지식을 연계하는 공부법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다.

하나를 알면 셋을 응용하라 공부와 독서의 유용성은 그 응용력에 있다. 무언가를 알고도 실제에 적용하거나 응용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다. 하나의 지식을 습득한 다음 그 지식에 근거해서 서로 연관되거나 비슷한 더 많은 지식을 유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공부나 독서의 주된 목적이다. 공자는 독서의 응용 문제와 관련해 "배우려고 분발하지 않으면 깨우치지 못하며, 깨달은 이치를 표현하기를 애쓰지 않으면 입이 트이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들어 보여 나머지 세 귀퉁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종합해 보면, 많이 듣고 많이 보라. 이는 요즈음 말로 하면 현장체험학습이나 여행, 실기실습의 중요성이라고 보여진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진실하게 물으면 그 물음에 성의껏 답해준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중에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 착한 이를 본받고, 착하지 않은 이를 통해서는 나의 좋지 못한 면을 고친다.'많은 것에 귀를 기울이되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가만 두어라. 두루 배우되 뜻을 도타이 하라. 절실히 묻되 나 자신에 견주어 생각하라.

탁월한 교육자의 모습을 지닌 공자

교육자로서 공자는 누구를 가르칠 때 차별을 두지 않았다. 이를 '유교무류有敎無類'라 하는데, 가르침에 부류가 없다는 뜻이다. 공자의 문하에는 다양한 계층의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공자는 그들에게 공부의 근본적 목적이 자신의 몸을 닦아 남에게 봉사하는 데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공부해서 타인과 세상을 위해 봉사하라는 정신은 오늘날에도 시들지 않는 시대적 의의와 문화적 경지를 갖추고 있다.

묵자의 공부법

"지식인은 배웠다 하더라도 실천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옛날 학자들은 좋은 말을 들으면 자신의 몸으로 실천했다. 지금 학자들은 좋은 말을 들으면 그걸로 남을 설득하는 데 힘을 쓰니 말이 지나치고 실천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묵자』「일문편」) 묵자는 지식과 논리 같은 문제에 관해 탐구해 진리를 인식하는 세 가지 준칙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이를 '삼표三表'라 한다. 묵자가 내세운 삼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위로는 옛 성인의 일을 본으로 삼는다.
둘째, 아래로는 백성의 눈과 귀가 어떤지 살핀다.
셋째, 안으로는 나라와 백성의 이익을 꾀한다.

묵자의 사상은 정치와 윤리 중심의 공부를 강조하는 유가와 달리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 교육과 함께 대단히 진보적인 평등 교육을 내세웠다. 묵자의 이런 교육관은 유가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학벌을 중시하고 비실용적인 공부가 대부분인 오늘날 우리 교육 현실과 공부법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맹자의 공부법(기원전 372~기원전 289년)

맹자는 '민이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는 구호를 공개적으로 제겧며 군주와 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을 호소했다.
"군자가 바른 도리로 깊이 탐구하는 것은 스스로 그것을 얻고자 함이다. 스스로 얻으면 삶이 편안해지고, 삶이 편안해지면 자질이 깊어지고, 자질이 깊어지면 죄우에서 취하여 그 근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를 공뷰나 교육에 연관 지어보면, 스승이 학생을 보다 깊이 있는 공부로 이끄는 방법은 학생의 내적 동기를 유발해 스스로 얻게 하는 것이다.

"학문의 길을 다른 것이 없다. 자기가 드러낸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 이는 이런저런 잡념과 딴마음으로 독서하는 태도를 맹자는 단호히 배격했다. 공부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총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한마음으로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머리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라는 것이다. 맹자는 공부하는 자세와 태도를 우물을 파는 일에 비유하며 " 뭔가 한다는 것은 비유컨대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파고도 물이 안 나온다고 우물을 버리는 것이다. "라며 공부나 독서를 견지하지 못하면 끝내 헛공부가 된다고 지적했다.

『맹자』「진심하편」에서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나아가지 못한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두어도 글을 이루지 못하면 다다를 수 없다."고 하였다. 물은 밤낮없이 흘러 웅덩이를 채워야만 다시 흘러 바다에까지 이를 수 있다. 맹자는 공부를 물에 비유해 점저 축적되는 지식, 순서에 따라 꾸준히 나아가는 공부법이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 공부법은 꾸준히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꾸준히 한마음'이 큰 테두리에서 공부의 태도와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방법은 좀 더 구체적이다. 그런 자세를 견지하면서 순서를 밟아 단계적으로 공부하면 지식은 축적되고 지혜는 깊어져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학업에 힘쓰던 맹자가 한번은 공부하다 말고 밖에 나가 논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맹모는 아들을 불러놓고 그 앞에서 한동안 열심히 짜놓은 베틀을 칼로 서슴없이 잘라버렸다. 맹자가 깜짝 놀라 이유를 묻자 맹모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들을 훈계했다. "베는 실 한 올 한 올이 연결되어야 한다. 학문도 마찬가지로 한방울 한 방울 쌓여야 한다. 네가 공부하다 말고 나가 논 것은 잘려나간 이 베와 마찬가지로 쓸모없어진다는 것이니라." 이 일화에서 '베틀을 끊어 가르친다'는 '단기지교斷機之敎' 또는 '단직교자斷織敎子'라는 고사가 탄생했고 여기서 '결단'이란 단어가 파생되었다. 인생의 참 지혜는 그 사람의 생활 속에서 나온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고 살아온 인생,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하루하루 보고 느끼며 철이 든 인성에 사악한 기운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현자들의 공부법과 흥미로운 숫자 3

동한 말년 학자 동우는 세 가지 남는 시간을 '삼여三餘'라 부르며, 이 여유로운 시간에 독서를 했다고 한다. 즉 "겨울날은 한 해의 나머지이며, 밤은 하루의 나머지이며, 흐리고 비오는 날은 시간의 나머지"이니 이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으라고 권했다. 송나라 때 주희는 독서는 마음이 이르고(심도心到), 눈이 이르고 (안도眼到), 입이 이르는(구도口到) '삼도三到'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깨쳐야 하는 것이 독서라는 의미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문예비평가 유협은 『문심조룡文心雕龍』이라는 문학비평서에서 작문이란 '먼저 세 가지 표준'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① 사상과 감정에 근거해 체제를 정하고, ② 체제에 근거해 사례를 고르고, ③ 문장을 다듬어 중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노신魯迅은 평생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독서란 ① 목적이 있어야 하고, ② 살아 넘쳐야 하며, ③ 폭넓어야 한다고 했다. 역사학자 전백찬은 경전을 배우는 방법으로 ①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읽는 법, ② 중점을 골라 읽는 법, ③ 표시를 해가며 읽는 법을 들었다. 진경윤은 수학을 배우려면 '삼심三心', 즉 신심信心 · 결심決心 · 항심恒心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보청 교수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공부법이 따라야 한다며, 엄숙 · 겸허 ·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들었다.

작가 왕문석의 독서법 3편을 보면, ① 예술적 향기를 한껏 누려야 하며, ② 총을 분해하고 조립하듯 모든 사물의 성능 · 제작 방법 · 상호 관계 등을 자세히 살펴야 하며, ③ 다시 한번 훑어보고 완전한 인상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독서와 관련해 안타까운 점 세 가지 '삼석三惜'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다. 명나라 때의 하인은 ① 자기 삶을 통해 배우지 않는 것, ②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는 것, ③ 자기 한 몸을 망치는 것을 안타까운 점으로 들었다.

청나라 때의 어떤 이는 ① 책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보기란 어렵고, ② 책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읽기란 어려우며, ③ 책을 읽기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실제로 쓰기란 어렵다며 어려운 것 세 자지 '삼난三難'을 말했다. 공자도 『논어』「계씨편」에서 세 종류의 친구 '삼우三友'를 말했는데, "이로운 친구가 셋 있고, 해로운 친구가 셋 있다. 곧고 마음이 넓고 많이 보고 들은 친구는 이로우며, 편견이 있고 우유부단하며 말만 잘하는 친구는 해롭다"고 했다. 이 중 많이 보고 들은 친구란 책을 많이 읽어 견문이 넓은 친구를 말한다.

사마천의 공부법

내가 존경하는 인물, 사마천(기원전 145~약 기원전 90년)은 서한시대의 역사학자로 태사령이란 벼슬에 있던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마천은 어려서부터 고전을 공부했고, 스무 살 무렵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견문을 넓히고 역사가로서 자질을 기르기 위해 전국을 답사했다. 3년 간 이어진 여행은 제국의 전역을 포괄하는 3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남북한을 합친 면적이 약 20만 제곱킬로미터) 이 과정에서 목슴을 위협받은 상황도 있었다. 역사에 유형, 무형의 흔적을 남긴 수많은 사람의 족적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 결과 『사기』의 현장성과 실사성은 그 어떤 역사서보다 높아졌다.사마천은 사관 집안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아버지가 죽기 전 남긴 유언, 즉 역사서 완성을 필생의 사명으로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천문과 역학은 물론 도가까지 두루 섭렵한 뛰어난 학자였다.현지답사와 문헌기록을 변증법적으로 소화해낸『사기』의 실증적 정신은 오늘날 역사가들이 본받아야 할 큰 장점이다.

사마천의 역사서 저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당한 수치스러운 궁형이다. 그는 이를 극복하고『사기』를 완성했는데, 이를 '발분저술發憤箸述정신' 이라 부른다. 고난에 직면했을 때 울분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훌륭한 공부법이 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가장 소극적이면서 가장 적극적인 저항 방법이기도 하다. 40대에 접어든 사마천은 조정의 일과 『사기』저술이라는 두 가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태사령에 임명된 지 10년 째 되는 기원전 99년, 마흔일곱 살이 된 사마천의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이릉 변호 사건'의 참화로 살아남기 위해 궁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궁형을 당하는 수치보다 자결을 생각했지만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욕적인 형벌을 자청했다.

사마천은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고백했다. "모진 치욕을 당하기로는 궁형보다 더한 것이 없소이다. …… 내가 화를 누르고 울분을 삼키며 옥에 갇힌 까닭은 차마 다하지 못한 말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였소."
사마천은 인간으로 태어나 공부하는 목적은 대체로 세 가지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를 '삼립三立'이라 하는데, '입신立身'·입언立言·입덕立德이 그것이다. 즉 입신으로 시작해 입언의 단계를 거쳐 입덕의 단계에 이르는 길은 공부의 심화 단계와 같다. 입신은 취업, 출세, 명예, 부귀, 권력, 등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부 단계다. 입언은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 학문적 성과를 글(책)로 정리해 세상을 바른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동반하는 공부 단계다.
 
마지막 입덕은 공부의 최고 단계이자 최선의 경지로 이 단계에 오른 사람이라야 정치와 통치를 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사마천은 입덕의 경지는 언감생신이라 생각하고 입언, 즉 『사기』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그렇게 하는 것이 시대가 자신에게 부여한 책무이자 사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기꺼이 그 책무를 받아들였고, 그 사명을 완수했다.

입덕의 경지에 올라야 다른 사람을 이끌고 정치와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사마천의 말은 이 책을 읽고 마지막까지 생각난 최고의 문장이었다. 우리는 덕이 없다는 말을 많이 쓰고 듣는다. 결코 입에 발린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엄중한 말이다. 무책임하게 자주 써서도 안 될 말이다. 덕이 없는 부모, 덕이 없는 리더, 덕이 없는 수장은 그 자체로 엄청난 폐햬를 가져 오기도 하고 직장이나 조직을, 한 나라를 수렁에 빠뜨려서 힘들게 하지 않는가.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자신에게 덕이 있는지 날마다 성찰하고 반성할 일이다. 덕이 없다면 아예 나서지 말 일이다.

고염무(1613~1682, 청나라)의 독서명언

'독서만권讀書萬券 행만리로行萬里路'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라' 책을 통한 지식과 여행을 통한 실제 경험을 병행할 때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책에 파묻혀 죽은 지식을 파는 지식인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 공부의 단계에 오를 수 있는 지식인을 갈망한 고염무는 그 자신이 그런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전부 베껴 쓰도록 스스로 감독했다는 고염무는 30년 이상 독서 일기(찰기札記)를 써서 『일지록』32권을 남겼다. 고염무는 평생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두 마리의 노새와 두 마리의 말에 책을 싣고 천하를 주유하며 실지를 고찰해 책과 서로 대조하고 고증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경영하는 데 쓸모 있는 공부로서 '경세치용'을 제창했고, "육경이 모두 역사다"라고 외쳤다.

나처럼 도서관이나 서재에 파묻혀서 책을 읽기만 좋아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에는 무관심한 사람에게 가하는 일침에 많이 아팠다. 방안에 앉아서도 천리 밖을 보는 재주가 없으니 앞으로는 독서와 여행을 병행하며 좀 더 폭 넓은 지혜를 구하도록 해야겠다. 역시 위대한 현자들의 말씀은 설득력이 큰가 보다.

사람과 책의 정감을 묘사한 작가 동교董橋는 「장서가의 마음」이라는 글에서 사람과 책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책에 대한 사람의 감정은 정말 정감 넘칠 수 있다. 마치 남녀 관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전류의 참고서는 아내와 같다. 늘 곁에 있어 편하지만 평생 들춰봐도 난숙해진다고 할 수는 없는 그런 관계다. 시와 소설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러브 스토리와 같다.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달콤한 그런 관계다. 깊이 있고 긴 학술 저작은 중년의 여인과 같다. 정신적 성숙이 부족하면 제대로 이해핳 수 없다. 물론 이따금 고상한 운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뒤에 딸린 끝없을 것 같은 주석이란! 정치 평론이나 시사 잡문은 등은 그 자리에서 사고파는 것이라 술집 아가씨에 비유할 수 있다. 한 번 보면 그만이다. 내일 다시 보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다. 여성들이 책을 볼 때도 아마 이런 정감상의 구분이 있지 않을까."

노신의 공부법

중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노신魯迅(1881~1936년)의 독서 태도는, '꿀벌 같아야 한다. 많은 꽃에서 채집해야 달콤한 꿀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한 곳에서만 빨면 얻는 것에 한계가 있고 시들어버린다.' 꿀도 원래 잡꿀이 진짜 꿀이고 맛도 있다는 말처럼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 벌이 꿀을 모으듯 진정한 지식을 습득하라는 의미다. 두루 많이 읽고 딱딱한 책은 머리를 묻고 이래가 될 때까지 파라, 깊이 있게 읽고 자신의,눈으로 세상이라는 살아 있는 독서를 하라.

모택동처럼 독서하기

모택동은 부지런히 배우길 좋아하고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아동기에는 물론 노년기에도, 전쟁 중에도, 평화기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일찍이 모택동은 "내가 평생 가장 좋아한 것은 독서다"라고 술회하며 "밥은 하루 안 먹어도 괜찮고 잠은 하루 안 자도 되지만 책은 단 하루도 안 읽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청년기 독서법은 '사다四多'습관으로 유명한데,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고 많이 물으라는 뜻이다. 그중 많이 쓰라는 것이 독서에서 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다. 쓰기 방법으로는 요점 정리, 책을 읽을 때마다 중요한 부분에 표기하기, 각주 달기, 독서 일기, 잘못된 부분 바로 잡아 고치기 등이다.

모택동은 정치가이자 혁명가였다. 인민과 함께 공산혁명을 이끈 투사였다. 그는 인민을 바른 길로 계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의식을 철저히 개혁해야 하고, 그 바탕은 독서와 공부라고 확신했다. 어린 시절부터 거르지 않고 이어진 그의 독서 습관은 이런 자각으로 더욱 굳어져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장장 70여 년에 걸친 그의 독서 편력은 자연스럽게 철저한 독서법과 공부법으로 나타났다. 천재도, 혁명가도 끊임없는 공부와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택동의 공부법에서 새삼 확인하게 된다.

진정한 공부는 사람다운 덕을 쌓는 일

이 책은 360쪽이 넘는 다소 방대한 분량이라 읽다가 지치기 쉽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심산유곡에 들어야 산삼을 만날 수 있듯, 곳곳에 숨겨둔 산삼들이 독자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을 준다. 나는 살기 위해 공부를 했었다. 공부라고 할 것 까지도 없는 검정고시라는 공부를 하고 주경야독하느라 교실에서 학우들과 공부하는 멋지거나 힘든 학창 시절이 아예 없다. 공부란 그저 책으로만 하는 줄 알고 살아 왔기에 좋은 책을 만나면 마냥 행복하다. 학습연구년 특별연수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점이 바로 독서하며 공부하는 일이다.
 
이제야 비로소 링컨처럼 보고 싶은 책을 쌓아놓고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돋보기 너머로 들여다보는 활자들의 손짓을 따라가다 보니 오늘도 해가 저문다. 봄꽃들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막고 보낸 4월이 한자락만 남았다. 연일 터지는 아픈 소식들을 보고 들으며 학교 현장에서 함께 아픔을 나누지 못하고 책과 열애하는 내 모습이 미안해진다. 그래도 희망을 품자! 지금은 열량을 비축하고 교실에 뿌릴 꽃씨들을 품는 중이니. 중국의 현자들의 공부법을 다시 복습하며 꽃대를 올리는 중이니 사랑하는 아이들아, 조금만 기다려주렴! 진정한 공부, 진정한 독서로 자기 자신 마음을 돌보고 닦아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덕을 쌓는 일을 같이 배우며 행복한 교실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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