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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처음부터 문제아는 없었다

매년 5월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졸업한 제자들로부터 안부 전화를 자주 받는다. 교직 경력 20년이 지났지만 내가 담임을 한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끔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지나간 졸업 앨범과 교무 수첩을 뒤적이며 얼굴과 이름을 확인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학창시절 유난히 말썽을 많이 부렸던 아이들의 경우, 수년이 지난 뒤에도 그 이름과 얼굴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졸업 후,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창시절 말썽을 부려 학생부 출입을 자주했던 일명 문제아들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들 또한 그런 제자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건,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퇴근 무렵. 주머니에 있던 휴대 전화의 벨이 울렸다. 발신 전화번호가 낯설었다. 전화를 받자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울러 나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몇 OO회 졸업생 OOO입니다. 기억나세요?"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그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맞다. 너구나.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래, 잘 지냈니?"
그제야 제자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되었는지 말을 계속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제야 전화를 드려서 말입니다. 건강하시죠? 저 때문에 병이라도 나 지 않았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원, 별 소리를 다 하는 구나. 그래, 요즘 뭐 하고 있니?"
"예, 서울에서 자그마한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 네가 성공했구나."
"선생님, 조만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사물함 깊숙이 묻어 둔 10년 전의 교무 수첩을 꺼내 보았다. 누렇게 퇴색된 종이 위에 제자의 흑백사진과 반성문이 눈에 들어왔다. 제자가 쓴 빛바랜 반성문을 읽다보니 문득 옛 생각이 떠올려졌다. 교사로서 노하우가 없었던 초임 시절 오직 왕성한 혈기만 가지고 아이들을 다루었다. 유난히 문제가 많았던 우리 반은 모든 선생님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리고 하루라도 사건이 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온갖 방법으로 아이들을 다루어 보았지만 달라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말을 듣지 않은 아이가 이 녀석이었다. 녀석은 복학생으로 지각과 결석이 잦았으며 심심하면 후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하였다. 특히 수업시간 교과 선생님에게 대들고 반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특히 야단을 치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담임인 내게 반항까지 서슴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 모습에 화가 극도로 달해 교사로서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한 적이 있었다.

"네가 졸업하여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녀석이 사고를 칠 때마다 상담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상담을 할 때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금방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달라질 듯싶었다. 그러나 상담을 하고 돌아서면 마치 아무런 일이 없듯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녀석의 이런 행동은 마치 담임인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비쳤다. 그래서 내심 녀석이 학교를 그만두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담임으로서 제자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문제아로 된 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과 중, 대부분의 생각이 녀석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토마스 고든(Thomas Gorden)이 분류한 '12가지의 의사소통 걸림돌'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교사의 언어 양식 7가지 유형을 접하게 되었다.

<학생에게 반감을 사는 교사의 언어 양식 7가지>
① 위협
"너 한번만 더 지각하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는다." "다음번에 한번 만 더 걸리면 너 죽을 줄 알아." "너 당장 가서 부모님 모시고 와."
위협은 교사의 요구가 즉각적으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 그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사용하는데, 이것은 학생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교사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한다.

② 모욕
"머리가 그게 뭐야? 너 술집 접대부야?" "너 같은 놈은 가르칠 가치가 없어. 당장 집으로 꺼져."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 못해 앞에 끌려나온 이놈들처럼 인생 낙오자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
학생들은 어리지만 엄연한 인격체이다.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런 모욕적인 말을 선생님에게서 들으면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③ 조롱
"그럼 그렇지. 너 같은 놈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겠니? 내 그럴 줄 알았다." "너 같은 자식을 둔 너희 부모가 불쌍하다. 너 같은 놈도 자식이라고 너를 낳고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 먹었겠지." "너희 부모가 밖에서 교육자면 뭐하냐? 제 딸년 하나도 제대로 못 가르치면서."
이와 같이 부모까지 들먹이는 조롱은 학생들이 가장 모욕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교사에 대한 강한 증오와 반발심을 갖게 된다.

④ 저주
"네가 대학에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가 장담하는데, 너 같은 놈은 결국 깡통 차게 돼 있어."
아무리 화가 났다고는 하지만 교사가 제자에게 이런 저주를 퍼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저주를 들은 학생은 성인이 되어서도 일이 뜻대로 안 될 때는 다시 그 저주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이다.

⑤ 비교
"우리 반은 왜 ○반만 못 한 거냐? 우리 반에는 똥대가리들만 모였냐? 다음번 시험에서 또 지면 그땐 각오해라." "○○아, ○○이를 봐라. 너는 왜 쟤처럼 못하니? 너는 자존심도 없냐?"
이런 말은 학생을 분발시키기는커녕 비교 대상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여 친구 간의 우애를 크게 손상시킬 뿐이다.

⑥ 훈계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차비가 없어서 맨날 걸어 다녔다. 그러면서도 공부는 열심히 했지.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 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너희들만 할 때는 더 힘들었어. 하지만 꾹 참고 살았지." "산다는 것이 원래 다 그렇게 힘든 거야."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을 명심하도록 해"
너무나 뻔한 이런 상투적인 조언은 단지 잔소리로 취급되며,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와의 대화를 피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한다.

⑦ 심리 분석
"표정을 보니 야단을 맞고도 전혀 반성을 안 하는 듯한데.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지. 너 지금 반항하는 거냐?" "너, ○○이가 예쁘면서 공부도 잘 하니까 질투하는 거지?" "너는 왜 여자애들 앞에만 가면 그렇게 똥 폼을 잡니?"
이런 말은 학생을 당황하게 하여 마음에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더욱 굳게 닫도록 만든다.

7가지 유형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으며 아이들을 꾸중할 때 교사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그간 녀석이 잘못을 할 때마다 난 이런 식으로 야단치지 않았는가. 한편 나의 막말에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입었을 거라는 생각에 괜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거친 언행이 녀석에게 반성의 기회보다 오히려 선생님에 대한 반감만 더 갖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녀석을 대하는 내 언행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어색한 말씨에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녀석은 웃기만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녀석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였으며 교과 선생님과의 마찰도 줄어들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 주려고 한 선생님은 단 한 분도 없었으며 모두가 체벌과 야단으로 자신을 대했다며 선생님에 대한 좋지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그것이 녀석에게 반항심을 갖게 한 이유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한편 담임으로서 녀석이 문제아라는 선입견을 갖고 대한 것을 후회하였다. 화가나 학생에게 말을 할 때는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학생 입장이 되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교감하기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녀석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결과, 늘 현실에 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인상을 쓰고 다니던 녀석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달라진 녀석의 행동에 선생님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으며 학급 분위기 또한 좋아져 그해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녀석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다소 섭섭하기는 했으나 담임으로서 녀석이 잘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녀석을 지도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내뱉은 "네가 졸업하여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마지막 막말은 졸업한 후에도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사실 그 말을 하고난 뒤, 행여 제자의 인생이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를 많이 하였다. 아무튼 그날 성공했다며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녀석이 그렇게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게 보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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